한국의 수능학벌 체제는 이것을 노린다

등록 2007.10.29 10:20수정 2007.10.2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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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수능 때문에 아이들이 목숨을 버리고 있다.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수능에 연관된, 즉 평소의 학업성적 비관으로 목숨을 버리는 아이들은 부지기수다. 고등학생의 5%가 자살을 시도해본 적이 있다고 하니 가히 지옥의 살풍경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죽는 건 보도되지 않는다. 입시변별력이나 난이도 등 시험관리의 문제만 신문지상에 도배될 뿐이다.

 

생명이 소중하나, 시험이 소중하나? 왜 어린 아이들이 시험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이 황당한 사태에는 신경을 끊으면서 시험관리의 엄격함에는 그렇게 심혈을 기울일까?

 

95년 김영삼 정권의 교육개혁과 자유화, 공교육 붕괴 등 일련의 수순을 거치면서 학생의 수능성적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의 상관관계는 날로 밀접해져가고 있다.  입시는 부모의 돈과 일류대의 서열기득권이 부킹하는 욕망의 장이다. 아이들 목숨보다 시험관리가 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부킹의례가 한국사회 지배체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애들 목숨은 부차적인 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변별력'이다. 입시 '변별력'을 우려하는 칼럼이나 사설은 하도 많이 봐서 눈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2008년 입시안 파동의 중심에도 변별력이 있었다. 정부 주장의 핵심은 2008년 입시안이 변별력이 있다는 것이고, 서울대는 변별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양쪽 다에게 변별력은 신성불가침의 것이다.

 

수능시험은 바로 그 '변별'중의 '변별', 대한민국의 아이들을 1등부터 차례차례 줄을 세워 그에 대응하는 서열의 대학 학벌에 편입시키는 절대 '변별'의 장이다. 수능시험의 공신력이 추락하면 수능에 의해 '변별'된 아이들의 등급이 흔들린다. 그래서 수능시험의 엄정한 관리는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다.

 

그럴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국가경쟁력 하락? 교육붕괴? 천만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입시관리상의 실수로 서울상위 대학 입학생들과 지방대 입학생들의 데이터가 바뀌었다고 해도 한국사회는 흘러오던 대로 흘러간다.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그럼 어떤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신분체제가 붕괴한다. 수능의 엄정성 신화가 무너지면 아이들의 절대 등급이 무너지고, 아이들의 등급이 무너지면 신분체제가 무너지고 귀족체제도 무너진다.

 

18살의 어느 날 치르는 시험성적을 기준으로 국민의 신분을 매기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그 시험성적에 '노력'과 '능력', '정직' 등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렇게 해서 그 시험성적이 높은 아이는 성실하고 우수한 아이므로 상위 학벌에 편입시켜 국가지배자로 만든다는 정당성이 형성된다.

 

그 다음 '노력', '능력', '성실' 등의 가치의 자리를 '부모의 돈'으로 치환한다. 성적경쟁체제 자체가 이렇게 작동하거니와 그것마저 성에 안 찬 부자들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앞세워 점더 친부자적인 교육제도를 만들었다.

 

자사고·특목고를 만들고, 공교육을 붕괴시켜 사교육 위주의 교육시장을 만들고, '비싼' 입시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풀 수 있도록 시험 문제를 날로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 수능성적이 부모의 재산에 정확히 대응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부모의 계급이 수능과 학벌을 통해 아이들에게 세습되는 신분제가 형성된다. 사실상의 봉건적 신분제지만 드러내놓고 신분제를 하자고 할 수는 없으므로 그들은 끊임없이 대학서열과 입시경쟁체제를 강화하려고 한다. 이런 구조다. 

 

1. 수능에 최대한의 권위를 부여해 그것에 의해 변별된 등급에 절대성을 부여한다.
2. 수능 점수를 어떻게 해서든 아이의 능력과 상관없이 부모의 재력이 결정하게 한다.
3. 대학서열체제를 공고히 하여 수능에 의해 매겨진 서열이 곧 평생의 서열이 되도록 한다.

 

그 결과는 공화국 붕괴다. 시험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귀족의 적이었다. 귀족은 부모에게 그 부귀를 상속받는 것이지 본인의 능력으로 쟁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험은 항상 귀족체제를 위협해왔다. 본인의 능력으로 돈 벌고, 시험 잘 본 사람들이 귀족체제를 뒤엎은 것이 서양의 시민혁명이다.

 

한국 수능+학벌 체제의 아이러니는 바로 그런 시험을 이용해 귀족체제를 만든다는 데 있다. 이 얼마나 얄궂은 일인가. 이 음모가 성공하려면 수능은 최대한 어려워야 하고, 최대한 공정해야 하고, 최대한 엄격해야 한다. 그래야 수능의 등급에 감히 누구도 의문을 갖지 못하게 된다.

 

수능날 겨울 강물에 목숨을 놓은 어린 학생에겐 무심했던 언론 등 여론주도층들이 유독 수능부정이나 학력위조엔 난리법석을 떠는 이유는 결국 이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선'이니 '정직'이니 하는 가치들을 잘도 주워섬긴다. 이 나라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2007.10.29 10:20 ⓒ 2007 OhmyNews
#학벌 #대학서열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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