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백일앨범에선 아가 냄새가 난다

딸래미 고단수에 넘어간 외할아버지, 아기 사진사로 나서다

등록 2007.10.30 13:43수정 2007.10.3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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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사진을 찍으려면 아기는 물론 주위 사람들도 무척 고생한다. 시선을 고정시키기 위해 한쪽에선 딸랑이를 흔들고 그 앞에선 찍고. ⓒ 이덕은


스튜디오에서 찍는 백일사진은 너무 비싸서 엄두가 안 나길래
친정 아버지를 강요 반, 협박 반으로 마구 마구 꼬심
울 아버지 결국 딸래미한테 항복!!
성현이 백일사진은 친정 아버지가 찍어주실 예정 아싸-!!
성현아…. 그 때까지 신체발달만  하지 말고 운동발달을 열심히 해야 해!!
기대된다. 외할아버지표 백일사진!!ㅅ__ㅅ
우리 아들 태어난지 벌써 73일



- 딸의 싸이 미니홈피에 올라있는 글

딸내미에게 항복... 직접 백일사진 찍다

세상 참 좋아졌다. 백일사진이나 돌사진이라는 것이 사진관에서 엄숙하게 ‘폼’을 잡고 찍는 것인 줄 알았는데 스스로 만들길 맘먹었다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사실 웬만한 젊은이 소지품에서 디지털 카메라 하나 나오는 것은 문제도 아닐 정도로 카메라가 보급되어 사진이 없어 앨범을 못 만들겠다는 말은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온라인에는 사진만 있으면 앨범을 만들어 준다는 곳도 많이 있어서 편집을 할 줄 몰라도 프로그램에 사진만 넣으면 자동으로 편집이 된다. 취향이 그리 까탈스럽지만 않다면 그럴 듯한 앨범 하나 손에 넣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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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스튜디오에서 소풍처럼 사진찍는 일은 가족행사다. 막간을 이용해서 셀카를 찍으며 즐거워하는 딸 부부.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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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연출사진. 멋있는 사진이긴 한데 뭔가 빠진 것처럼 심심하다. 딸도 동의를 했지만 이런 사진은 몇장 넣고 일상사진으로 채우기로 했다. ⓒ 이덕은


그런데 왜 아직도 망설여지는 것일까? ‘그래도 백일기념인데 다른 사람들처럼 스튜디오에서 번듯하게 찍은 사진 몇 장은 들어 있어야지.’ 그렇다. 남들 앨범은 가족이 찍었든 전문적인 사진사가 찍었든 꼭 들어가는 연출 사진들이 들어 있어 기를 죽인다.


그러나 그런 사진들은 마치 어린 시절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이 '이름만 다르고 이하동문'하며 주시던 상장 같은 기분이 든다. 상장은 상장인데 왠지 인쇄물 같은 기분, 기념앨범이 맞긴 한데 구멍 뚫린 그림판에 얼굴을 내밀고 찍은 느낌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런 사진을 철저히 외면할 수도 없으니 이런 때는 '셀프 스튜디오'를 이용해 본다. 자기 카메라를 가져가든 그곳 카메라를 빌리든 대관료를 내면 두어 시간 주인의 조력을 받으며 찍을 수 있다.

이때는 어차피 '남들'에 뒤처지지 않는 '사람만 다르고 이하동상(以下同像)'인 사진을 얻으려는 것이므로 남달라 보이느라 골치썩이지 말고 다른 사람의 앨범 사진을 보고 그대로 흉내내는 것이 속편하다.

엄마가 찍은 사진 반, 외할아버지가 찍은 사진 반

외할아버지표 앨범을 만들기 위해 카메라를 끼고 살며 무수히 찍어대고 잘된 사진을 추려서 나열해 보지만 무언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커다랗게 확대된 사진이 심심해서 딸의 홈피에 들어가서 몇마디 따서 붙이지만 사진 따로 글 따로 논다.

아기와 엄마 간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찐한 사진은 사진의 기본 요건에 충실한 사진이 아니라, 엄마가 일상에 찍어 두었던 초점이 안 맞은 사진에서 살 냄새와 사랑이 듬뿍 묻어나온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다.

내가 만들어 준다고 하였지만, 앨범 사진의 반은 엄마에게서 나오고, '비싸서 스튜디오에서 못 찍는' 백일 앨범은 엄마의 고단수에 넘어간 외할아버지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만든다. 어쨌거나 그래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은 앨범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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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을 처음 들기 시작한 날. 딸의 홈피에 실린 사진과 글을 따오니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사진이 된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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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작은 앨범. 엄마가 찍은 사진이 반이고 엄마의 고단수에 넘어가 비용은 외할아버지 주머니에서 나오고… 그러나 이런 일로 많은 시간을 손자와 딸과 할머니와 함께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앨범이 이세상 어디에 있을까? ⓒ 이덕은


#백일앨범 #셀프스튜디오 #외할아버지 #앨범만들기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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