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등, 한국사회에 얼마나 점수를 줄 수 있을까?

<한국사를 보는 눈>을 읽고

등록 2007.11.10 13:32수정 2007.11.1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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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보는 눈> 겉그림 ⓒ 문학과 지성사

▲ <한국사를 보는 눈> 겉그림 ⓒ 문학과 지성사

대륙과 해양 사이를 잇는 국가로서 한국은 늘 태풍 중심에 자리잡은 고요한 공간처럼 실제로 고요한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묘한 곳입니다. 그런 한국을 둘러싸고 바깥에서는 물론이고 요즘은 안에서도 격한 싸움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안에서조차 언제 갑자기 사분오열하여 싸움터를 만들어낼지 모를 땅, 여전히 이념전쟁이 버젓이 살아숨쉬는 땅, 이 곳 한국에서 한국적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통일된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책을 모처럼 다시 집어 들었습니다.

 

‘한국정치를 보는 눈’이라고 했으면 요즘 들어 좀 더 관심을 받을 듯한데, ‘한국사를 보는 눈’으로 제목을 달고 나온 터라 이 글을 쓰는 저부터 무거운 마음을 안고 출발합니다. 구체적인 사건을 펼쳐 놓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역사를 보는 시각 자체를 물고 늘어지려니 당연히 말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이 책은 그래도 마냥 거부할 수 없는 한마디를 던져줍니다, 요즘처럼 시끄러운 때에 필요한 것 차분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2007 한국사회에 필요한 조언은 무엇?


역사적으로 보아 큰 흐름 그러니까 큰 변화가 발생한 증거를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97년 외환위기를 전후로 우리 사회는 양극화라는 말로 대변되는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사회 구성원이라는 소속감, 안정감을 상실했지요. 새로운 세기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한국사회는 사회적 유대감에 큰 타격을 입은 바 있고 군사독재시절보다 더한 사회적 무력감과 상실감에 사실상 온 나라가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같은 정신적 피로감을 무엇으로 달래고 무엇으로 다시 희망을 심어줄 수 있을까요? 말하자면, 우리가 다시 함께 나눌 수 있는 사회통합적 가치는 무엇일까요?

 

"모든 민족 구성원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가 이루어야 할 민족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또한 사회적 정의가 실현된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할 수가 있다."(15-16쪽)

 

민족의 이상? 그런 말은 좀 거창해서 부담스럽다하더라도, 어쨌거나 지금 우리는 조각난 한국을 잘 엮어 줄 그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서로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사회적 유대감을 회복케 해 줄 정신적 지지대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자유와 평등’이라는 말이 보이는군요. 지금 우리 한국사회에서 자유는 어느 정도일까요? 지금 우리 한국사회에서 평등은 어느 수준일까요? 한국인은 정말 자유와 평등을 흡족하게 느끼고 있을까요?

 

군사독재시절보다 더 의사표현에 제한받는 것 같다고 그게 그저 근거없는 일방적인 주장은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이 꽤 있을 정도인데 마냥 자유를 말할 수 없는 상황이고, 어린이도 다 알정도로 양극화 문제가 널리 퍼진 상황인데 평등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바로 외환위기 10주년을 맞이한 2007년 한국사회 상황입니다.

 

이 책은 ‘한국’이라는 구체적 세계를 다루면서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철학적입니다. 그래서 말투가 좀 어렵죠. 쉽게 말해, 구체적인 사건을 파고드는 방식이 아닌 한국사회 자체를 큰 덩어리로 보고 그 의미를 살펴보는 매우 ‘조용한’ 책입니다. 안 그래도 조용한 이 책은  저자가 이전에 했던 강의 원고들을 모아 네 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엮은 책이어서 그런지 그 고요함에 더욱 짙은 안개를 덮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고요한 책에서 뜨거운 한국사회를 보는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문득 감기는 눈을 뜨게 됩니다.

 

"근자에 ‘민족의 이상’이라는 것을 살펴봐야겠다는 의욕을 강하게 갖게 된 것은, 현재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어서 정치적․사상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국면도 있고, 우리 남한만 하더라도 갖가지 이기주의적인 주장이 분출되어 혼란된 양상을 띄고 있는데..."(17쪽)

 

2007년 한국사회를 향해 던진 말은 아닌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 우리 사회를 묘사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하긴 2007년을 넘어가는 문턱에 선 한국사회가 시끄럽긴 하지요. 어쨌거나 “갖가지 이기주의적인 주장이 분출되어 혼란된 양상을 띄고” 사분오열되는 듯한 한국을 치유할 다음 지도자는 누구일지 그런 사람이 나오기나 할지 걱정스럽습니다. 정치와는 무관한 이런 책을 읽으며 한국정치와 사회를 떠올릴수 있다니 의외였고 역시나 2007한국사회가 뜨겁긴 뜨겁다 싶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말 주변도 별로 없는 사람이며 그저 학자로서 살아갈 뿐이라고 말하는데, 제가 보기에 저자는 그런 겸손함을 오히려 방패삼고 사회를 향해 ‘이런 것이 바른 역사요’하고 말하는 듯합니다. 사회를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날리는 지식인들에게 그리고 지식인을 자처하여 그 비판에 동참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런 메아리가 제 귓가를 때립니다.

 

“권력과 재부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 정치가나 기업가들은 그렇다고 치자. 적어도 학자들은 그 같은 풍조에 대해 비판을 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그런데 비록 비판을 하는 경우에라도, 그들이 디디고 선 입장은 근본적으로 비판받는 자와 별로 다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현실적인 입장에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이다. 보다 높은 견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비판이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150쪽)

 

한국사회는 무거운 현실을 이겨낼 높은 뜻을 품고 있는가!

대선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2007년 11월 초겨울 문턱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에 잠기려 할 때 문득 이 책을 잠시 펼쳐 보았습니다. 정치며 사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한 마디씩 던지는 제가 일관되고 분명한 처지를 밝히고 말하고 있는지, 제 삶은 잘 챙겨가며 남 일 거들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만일 이 책을 여러분이 보신다면 이런 면에서 이 책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철학책보다 더 ‘조용한’ 책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참고로, 1부(한국사의 전개와 민족의 이상)와 4부(진리에 대한 믿음)을 통해 사회적 통찰을 얻으시길 바라고, 2부와 3부는 한국역사에 관한 학문적 의견을 참고하려 할 때 보시기 바랍니다.)

 

자유와 평등을 최고가치로 삼고 이것을 높은 뜻으로 삼는다면, 1997년 외환위기보다 더 힘들다고 호소하고 자유를 찾아 헤매던 전투현장 같은 시절보다 더 갑갑한 올무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에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줄 수 있으리라 봅니다. 나아가 통일 문제에도 말이죠.

 

“만일 민족의 이상을 자유와 평등의 실현에 둔다면, 그 둘이 결합되면 결국 그것은 사회정의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중략)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든 이루어지는데, 그 통일이 무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바람직스러운 방향에서 평화롭게 되려면, 그 민족의 이상을 남과 북에서 서로 똑같이 실행해서 나아갈 때 아무런 장애 없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34-5쪽)

덧붙이는 글 | <한국사를 보는 눈> 이기백 씀. 서울: 문학과 지성, 1996.

2007.11.10 13:32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한국사를 보는 눈> 이기백 씀. 서울: 문학과 지성, 1996.

한국사를 보는 눈 - 우리시대의지성 5-001

이기백 지음,
문학과지성사, 1996


#한국사를 보는 눈 #이기백 #문학과 지성 #자유와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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