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세력의 그늘, 노무현식 리더십의 한계

[서평]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의 <굿바이노풍>

등록 2007.11.11 10:29수정 2007.11.11 14:34
0
원고료로 응원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민주화시대의 막바지에 펼쳐지는 정치적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이 적잖이 착잡하다. 이를 무엇이라 해야 하나. 12월 대선을 앞둔 우리 정치 지형이 마치 1986년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1987년이 '시민사회의 부활'이 이뤄진 해였다면, 2007년은 결국 이렇게 보수주의가 부활한 해로 기록될 것인가.

 

객관적인 사실을 하나 먼저 지적하면, 보수 세력의 위력은 대선 후보의 지지율로 파악해 볼 수 있다. 지난 며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과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합하면 어느 조사이건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이 지지율이 다소 변화될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이런 조사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보수 세력이 중도 세력을 헤게모니적으로 접합해내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낳았는가. 여기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하는 구조적 강제, 우리 민주화의 경로의존성, 그리고 민주화 세력의 집합적 선택 등 여러 요인들이 결합돼 있을 것이다. 그만큼 현재의 정치 지형을 독해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예를 들어 세계화가 가져오는 사회 양극화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 성장을 강제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정치 세력의 집합 행위의 범위를 축소시킨다.

 

a

유창선 박사가 펴낸 <굿바이노풍>.

유창선 박사가 펴낸 <굿바이노풍>.

문제는 민주화 세력의 위기가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지속적으로 경고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 왔다는 점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단적인 사례다.

 

연초 탈당 러시에서 시작한 일련의 흐름은 결국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대통합민주신당을 새롭게 만들었지만, 과거로부터 변신을 하는데 적어도 현재까지는 성공하지 못한 듯하다. 이런 우울한 상황 속에서 내가 읽어보게 된 것은 유창선 박사의 <굿바이 노풍 - 노무현식 리더십과 한국 민주주의>(아르케, 2007)다.

 

이 에세이집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나아가 민주화 세력의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정치 세력이 선택하는 집합 행위의 중핵을 이룬다. 그것은 또한 대중의 자발적 동의를 뜻하는 헤게모니 창출의 지반을 제공한다. 민주화 세력이 위기에 처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민주화 세력이 갖고 있는 리더십이 더 이상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리더십은 민주화 세력의 리더십을 상징한다. 유창선 박사에 따르면, 그것은 오만하고 독선적인 리더십, '자신이 옳다고 믿는 문제에 대해서는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판단을 밀어붙이는' 리더십이다. 재신임과 대연정, 그리고 올해 개헌 제안은 대표적인 사례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연정과 개헌 제안은 우리 정치 현실을 지켜 볼 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제안으로 볼 수도 있다. 정작 국민 다수가 동의하지 않은 것은 그 스타일과 방식이다.

 

유창선 박사의 표현대로 '느닷없이' 제안하고 '누가 옳은지 끝까지 겨뤄보자는 식'으로는 국민 다수의 공감대와 정당성을 창출할 수 없다. 사회학적으로 권위란 정당성을 갖춘 권력을 말한다. 정당성은 설득력에서 나오며, 설득력은 진정성과 포용성에서 나온다. 노대통령 자신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그가 보여준 탈권위주의 리더십이 국민 다수의 시선에는 결과적으로 진정성과 포용성을 담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노 대통령의 리더십이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 온 일련의 정책이 갖는 의미를 희석해 왔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노무현 정부의 최대 업적은 장기주의적 관점에서 정책을 선택하고 추진해 왔다는 데 있다고 본다. 5년 단임제 정부에서 쉽게 빠질 수 있는 유혹은 정책의 장기적 결과보다는 대중의 인기를 먼저 고려하는 단기주의적 정책의 선택이다. 이점에서 노대통령이 고민하고 정책으로 추진해 온 정치개혁, 균형발전, 동북아 시대 등을 포함한 일련의 국가적 의제들은 퇴임 이후에 새롭게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굿바이 노풍>이 노 대통령의 리더십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창선 박사는 한나라당의 한계, 열린우리당의 좌절, 우리 민주주의의 현주소, 그리고 보수와 진보정치의 구도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치사회의 거의 모든 쟁점들을 종횡무진 분석하고 있다. 그는 과도하리만치 균형잡힌 태도를 고수하면서도 때로는 진보․개혁 세력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이 책에 실린 유창선 박사의 글들을 읽어가다 보면 2002년의 '환희'에서부터 2007년의 '혼돈'에 이르는 노무현 시대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하게 하고 또 성찰하게 한다.

 

민주화 20년, 다가오는 대선에서 우리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아이러니는, 민주화 시대가 마감하고 있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과제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현재 전개되는 양상은 낡은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누가 더 부패하고 누가 더 무능한가에 대한 비생산적인 비난의 정치에 머물러 있다.

 

1987년이 그러했고, 2002년이 그러했듯이 정치가 우리 사회의 희망이었던 적이 있다. 우리 민주화 세력은 한 번은 좌절을, 다른 한 번은 환희를 경험했다. 희망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그것은 지나온 시간에 대한 냉정한 성찰과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모색할 때 나타나는 법이다. 아직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혼돈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고자 하는, 노무현 시대를 차분하게 평가하고 미래 전략을 진지하게 고투(苦鬪)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호기 기자는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입니다.

2007.11.11 10:29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호기 기자는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입니다.
#유창선 #굿바이노풍 #노무현 #김호기 #대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이 기자의 최신기사 오케이 대통령

AD

AD

AD

인기기사

  1. 1 구순 넘긴 시아버지와 외식... 이게 신기한 일인가요?
  2. 2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 대전 유흥주점 간 정준호 집행위원장
  3. 3 주목할 만한 재벌 총수 발언... 윤석열 정부, 또 우스워졌다
  4. 4 '윤석열 대통령 태도가...' KBS와 MBC의 엇갈린 평가
  5. 5 청보리와 작약꽃을 한번에, 여기로 가세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