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여,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짱돌을 들자

<88만원 세대>를 읽고

등록 2007.11.19 09:19수정 2007.11.1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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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 레디앙

대학을 이제 갓 졸업했다. 함께 공부한 친구, 후배들이 정신없이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다니는 모습을 본다. 더 공부하기 때문에 취업 전선에서 아직 자유로운 내게, 친구들의 모습은 조금 안쓰러워 보인다. 좋은 명문대 간판에 영어점수, 한문 자격증, 컴퓨터 자격증, 어학연수, 각종 인턴 경험 등 몇 년 전 선배들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흔히 말하는 잘나가는 기업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 20대인 이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 현실의 중압감을 일찍 경험하고 그에 대한 싸움을 벌여 나간다. 하지만 그 싸움은 우리 세대를 정확히 진단하고 우리를 포획하는 외부의 구조적인 압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성찰하지 않은 채, 단순히 모호하고 안개 가득히 낀 흐릿한 미래에 대해 각개각진 하는 형식이다. 수많은 '이력'들로 이미 포장되어진 우리 자신을 얼마나 더 포장하려는 걸까? 그리고 그 포장은 무엇을 위한 포장인가?

 

<88만원 세대>의 표지에는 고개 숙인 한 청년이 있다. 그리고 그 청년의 등엔 빨간 태엽이 꽂혀 있다. 누군가 그 태엽을 돌려주면 그 청년은 풀이 죽어 있는 고개를 들고 또다시 현실의 그 질퍽한 길을 투벅투벅 걸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 고개는 다시 떨구어 지겠지….

  

우리 세대에 붙인 이름, 88만원 세대

 

유신 세대, 386세대, X세대…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사회적 정황 속에 놓여진 사람들에게 붙여진 각각의 이름들이 있다. 세대에 붙여진 이름은 그 시대를 살아간 개인의 개별적 특성과 관계없이, 그 세대가 속한 시대의 특이점을 포착하여 이름붙여진 것이다. 우리 세대의 이름… 애석하게도 저자는 우리에게 '88만원'이란 딱지를 붙여줬다. 97년 IMF를 전후하여부터 20살을 맞이한 세대에게 붙여진 애석한 이름.

 

<88만원 세대>의 저자들은 20대가 놓인 답답한 상황을 재미나게 풀어나간다. 왜 그렇게 20대는 부모에게 독립할 수 없는지? 동거할 수 없는지? 혼인의 시기는 왜 그리도 늦어지는 것인지? 그것은 단순히 도덕적 측면에서 제약된 정서 차원을 떠나 사회 안전망의 부재와 아르바이트 혹은 여타의 직업 형태로 주어진 기형적인 착취로 말미암은 것이다.

 

철저한 승자독식 경쟁이 횡횡하는 한국 사회. 이 승자독식의 무차별적인 공간은 세대 내 경쟁 사회에서 세대 간 경쟁이 횡횡하는 사회로 변했다. 20대는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간 경쟁으로 마땅히 그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미 생활 전선에서 지혜와 경력을 쌓아온 윗세대와 치고 올라오는 밑 세대에 샌드위치된 20대는 사회에서 훈련받고 성숙할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을 얻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애석한 것은 현실에 대해 불평은 하지만 그 현실을 바꾸어 나가며 부딪칠 힘과 용기를 지닌 이들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대학교의 등록금은 가히 천문학적 액수다. 누구나 다 비싼 등록금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등록금 투쟁에 참여하는 이들은 몇몇 소수 학생들이다.

 

KTX 여승무원, 이랜드 사태… 함께 이 땅에서 호흡하고 있지만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진정 자신의 실존적 문제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없고, 오로지 관심은 저러한 비정규직이 되지 않는 승자가 되는 것에 있다.

 

88만원 세대의 슬픈 현실은 88만원 밖에 벌지 못하게 하는 사회 제도적인 막과 함께 그 막에서 상상력과 감수성을 잃어버린 채 88만원 세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애처로움에 있다.

 

감수성의 부재, 상상력의 부재

 

얼마 전 김명준 감독이 후카이도의 조선민족학교에서 3년을 함께 하며 찍은 다큐멘터리가 큰 화제가 되었다. 일제 강점 이후,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강제 징용당해 삶의 터전을 일본에 잡게 되었고 조선인이란 이유로 멸시와 받지만 그 속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더불어 살아가는 학교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다큐멘터리 속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묘미는 초중고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다. '하나', '분계선 코스모스' 등 우리 민족의 슬픔을 아파하고 통일을 갈망하며, 어려움 속에 있지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곡조와 가사를 담아내는 노래가 그들에게 있었다. 아이들은 그 노래를 가슴에 새기고 그 노래를 함께 읊조리고, 울고 웃으며 그 노래를 함께 부른다.

 

우리 아이들에겐 그리고 우리에겐 이런 노래가 없다. 정말 우리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우리의 현실을 포괄할 수 있는 노래가 온데간데 없고 우리에겐 오직 자본의 논리로 만들어진 노래들이 우리와 아이들의 입에서 흥얼거려진다. 우리의 노래를 잃어버렸다는 것. 아이들에게 우리의 동요가 자연스레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것.

 

아이들에게 산과 들이나 흙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온통 시멘트 바닥과 학원의 중압감만이 있는 현실에서 감수성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우습지 않은가… 이런 감수성의 부재는 상상력의 부재와 맞닿아 있다. 정형화되고 고착화된 생활의 틀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현실은 덧셈 뺄셈의 분절화되고 분화된 지식조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삶을 살아가고, 우리의 삶을 개척하고 도전하며 새로움을 향해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감수성과 상상력.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겐 이런 것이 소실되어 버렸다.

 

대학의 현장. 자본의 포획. 그러나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라

 

내가 다니는 대학에서도 언제부턴가 거세게 밀려오는 자본의 힘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부서지는 건물과 삐까 번쩍하게 새롭게 세워지는 건물에서 생기는 차이는 비단 첨단 장비가 들어섬만은 아니다. 경계가 삼엄해지고 접근할 수 있는 장벽이 더 높아졌다. 또한, 재미있는 사실은 대학마다 똑같은 이름을 가진 건물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관, LG관, 포스코관… 대기업에서 지원해주는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대학 건물들…

 

새롭게 들어선 건물 속에는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우리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우리 고유의 특징을 포착해 낼 수 있는 가게들이 들어서고 그곳에서 또 다른 우리 문화가 만들어진다면 그나마 이리 삐딱하게 보지는 않겠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서는 모든 상점은 '프랜차이저 가맹점들'이었다. 스타벅스, 미니스탑, 파파이스, 프로방스, 한스 비빔밥 등…

 

대학내에도 점점 '자본의 여백'은 사라져간다. 학생들은 자신이 '자치'할 수 있는 공간을 따내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지만 자본이 그 공간을 차지하기란 '식은 죽 먹기'다.

 

학교 생협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생협'을 학교 내에 만들고 싶어 좋은 공간을 요구하지만 학교 측은 콧방귀도 뀌지 않고 그 공간을 다른 프랜차이즈 회사에 넘겨 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잃어버린 꿈을 꾸자

 

한국 경제는 선진국의 문턱에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한다. 이 기로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88만원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생활 양식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직업의 소득이 높아지고 직업안정성이 높아지는 방식으로 노동과 사회를 재구성하는 것이라 한다.

 

이 기로에서 국가적/제도적 수준에서 논의되어야 할 분명한 미래 전망이 필요하고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층위에선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꿈을 새롭게 꾸어야 하지 않을까?

 

학교에서 학생들의 공간에 자치 목소리를 내고 생활, 먹거리  운동을 펼쳐나가는 학생들을 보며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다.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서 자본이 아닌 무한 경쟁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냄새가 풍기는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 내야 한다.

 

자신들의 소규모 공동체 아래, 물질을 공유해 핍절한 사람이 없게 하려는 1주일간의 재미난 실험을 한 그룹을 보았다. 자신의 용돈을 공유해 함께 생활하고 절약하며 나눔의 정신을 실현하려는 단체! 이들의 '순수함'과 '정겨움' 속에 희망을 발견한다.

 

학교에서 출교당한 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학교와 처절히 싸워나가며 자신의 교육권리를 되찾으려는 몇몇의 무리들을 보며, 지속적으로 당당하게 학교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와 '깡다구'를 보며 우리 시대의 희망을 발견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없는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무서운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없을 거란 패배의식과 체념이다.

 

20대들이여!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자. 갇힌 우리의 상상력을 풀어헤치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예민한 감수성의 촉수를 바짝 치켜든 채, 새롭게 꿈을 꾸고 새롭게 우리 문화와 생활 양식을 만들어 가자. 그리고 당당히 사회 곳곳에,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우리들의 권리를 크게 크게 외치자!

2007.11.19 09:19 ⓒ 2007 OhmyNews

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박권일 지음,
레디앙, 2007


#88만원 세대 #상상력, 감수성 #짱돌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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