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이별수, 좋아해야 하나 겁먹어야 하나

점집에 가다

등록 2007.11.19 15:41수정 2007.11.1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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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공양 바라는 바와 생년월일을 한지에 적어 불사른다. 소지를 올린다고 한다. ⓒ 최백순


며칠 전 점을 보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친구가 무슨 무슨 사에 간다길래 조그마한 암자인줄 알고 따라 나섰다가 당한 일이다. 산중턱을 오르다 보니 조그만 골짜기에 산신각과 대웅전이 있고 초라한 요사채가 있었다. 속된말로 무당집이라고 안들어간다 하기도 그렇고 해서 대웅전을 들러 산신각까지 참배를 하고 건물 안에 들어섰다.


여느 살림집과 다르지 않은 거실을 지나 신을 모신 방에는 하얀 고깔 모자를 쓴 삼신과 동자를 거느린 산신이 그려진 탱화가 있고, 과자와 화려한 빛깔의 조화,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입는 옷이 걸려 있었다. 이런 풍경이 낮설지 만은 않다. 사찰의 산신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찰의 그것과 다르다면 어린아이들의 장난감과 인형 옷가지 등이 있는 정도다.

무당들은 동자 동녀신을 부리기에 이들이 좋아하는 과자 인형 옷가지 등을 제단 위에 놓아둔다. 점을 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남의 영업장(?)에 들어섰으니 아이쇼핑만 할 수도 없는 일, 3만원의 복채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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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하는 무녀 학산 성황당에서 굿을 하고 있다. 단오 전날 범일 굿사의 탄생지 학산 성황당에서 제를 올린다. ⓒ 최백순



무녀는 목에 염주를 걸치고 가늘고 길게 휘파람을 분다. 엽전을 손에 쥐었다 놓고 콩을 고르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뒤집어 보고 여자아이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삼촌은 개고기 먹으면 안돼, 큰 산의 기운을 받아 태어났어. 집안에 누가 치성을 많이 드렸는데”


휘이익 다시 한번 휘바람을 불고 엽전을 뒤집는다.

“토끼처럼 천지 사방 뛰어 다니는 직업을 가져야 해, 아니면 차와 관련된 사업을 하던가. 올해 문서를 한번 뒤집겠어.”

이 대목에서 마음이 뜨끔해 진다. 나 스스로 풀어본 사주에도 가만히 있는 직업이 아니라 글을 쓰고 나다니는 일이 천직이라고 나왔었다. 더욱이 법원에 개명신청을 해 놓은 터라 이달말에 판결이 난다. 이 무당은 뭐를 좀 아나 호기심이 발동했다.

다시 휘파람 소리가 나고 엽전이 뒤집어진다.

“장가는 갔어, 올해 부부 이별 수야. 떨어져서 지내는 것이 좋아. 절대 다투지도 말고 말썽이 생겨도 못 본 체 해. 참지 못하면 헤어지고 말아”

점점 관심이 끌린다. 최근에 다툼이 잦았다. 마음에 안 드는 구석도 많고, 커다란 벽이 느껴져 얼굴을 외면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내 전화기에 남겨진 문자를 보고 한밤중에 큰 싸움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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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굿 무녀 무녀가 악사들의 장단에 맞춰 단오굿을 하고 있다. ⓒ 최백순



"아이가 몇이야?"
"딸만 둘인데요"
"큰 아이가 보통이 넘어 똑똑하다는 소리 듣지, 그런데 성격이 너무 강해 잘 다루어야 해, 둘째는 몇 살이야?"
"네살 인데요."
"잔병치레를 많이 하겠는데 엄마랑 안 맞아 떨어져서 지내야 해."

사실 그랬다. 집사람은 둘째에게 정을 안 준다. 이제 두 돌이 지났지만 우리 나이로 네 살이 되도록 할머니와 지낸다. 직장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주말에 집에 왔다가는 월요일 아침에 데려다 준다. 아파트에서는 두드러기가 돋고 몸에 열이 심해 시골집에 데려다 놓으면 잘먹고 잘잔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이 놈이 가끔 방바닥을 딩굴다가는 “엄마는 나를 안 좋아해, 인화 언니만 좋아하고 엄마 미워” 이런단다. 아이 엄마도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둘째를 임신하고서부터 몸이 너무 괴롭다고, 지금까지 힘들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 점쾌도 맞은 건가?

내 나이 마흔 셋에 관운이 있단다. 그 시작은 내년 4월 일신상에 큰 변화가 있을 테니 지금은 다른 생각 말고 가만히 있으란다. 머리 속에 12간 집도 지었다 부수기를 수없이 하니 마음을 가라 앉히고 기도를 좀더 해야겠단다. 묵묵히 뒷바라지 하는 어머니 덕이 크고, 아버지와는 이별수라 고인이 되었으니 천도재를 올려야 한다고 말을 맺는다.

엽전이 제자리에 놓이고 염주가 목에서 내려 놓으니 여자 아이의 목소리는 간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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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단오무녀 강릉단오굿을 주관하는 무녀들 ⓒ 최백순



같이 갔던 친구는 이사 날을 받느라 손없는 날을 따지고, 내 입장에서는 재미난 상담 시간을 보낸 셈이다. 나는 무속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하는 부류에 속한다. 한때 출가해 도를 이루겠다고 밤샘으로 서너 달을 넘긴 적도 있다. 또 절에서 이런 저런 소임을 맡아 15년 가까이 스님들과 정진하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삶과 대화가 친근하고, 때로 굿을 지낸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 인생을 물어보진 않았다. 더욱이 굿을 하거나 부적을 지니는 일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에서 누군가가 ‘요즘 왜 이리 되는 일이 없어 점이나 볼까’ 하면 말리지는 않는다. 하루 저녁의 소주 값으로 자기 인생의 문제를 상담하고 이야기하는 도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답을 찾기 때문이다.

흔히 아홉수를 말한다. 19, 29, 39, 49, 59.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홉을 채우고 나면 스물이든, 서른이든 한층 더 달라진 차원의 삶을 사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또 10이라는 숫자를 채워가는 마지막 아홉에서 갈무리를 잘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올해 부부 이별수라니 이걸 좋아해야 하나 겁을 내야 하나.
#점 #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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