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에서는 소수민족 띄워주기 열풍

등록 2007.11.22 10:07수정 2007.11.2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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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지식인들의 글에서 나타나는 일관된 특징 중 하나는 ‘소수민족 띄워주기’라고 할 수 있다. 소수민족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한족과의 유대를 강조하는 글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덕분에, 한때 중원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장악하고 한족을 괴롭혔던 거란족·여진족·만주족 등의 역사가 최근에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자신들을 ‘식민지배’한 적이 있는 외래 침략자들의 역사에 대해 한족 지식인들은 관대하고 우호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 중 하나가 거란족(요나라)의 정부체제에 대한 중국 학자들의 평가다. 1980년대 이래로 최근까지 나온, 거란족의 정부체제에 대한 중국 학계의 논문들을 보면 하나 같이 요나라의 이원적 정부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중원의 연·운 16주를 차지한 936년 이후 요나라 태종은 정부조직 개편에 착수했다. 종래의 정부조직으로는 중원의 농경민족을 지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른 바 이원적 정부체제였다.

이원적 체제 하에서 요나라의 정부조직은 크게 북면관(北面官)과 남면관(南面官)으로 나뉘었다. 북면관은 거란족 같은 유목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관료조직이고, 남면관은 한족 같은 농경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관료조직이었다. 그리고 북면관은 종래의 거란족 통치체제를 계승한 것이고, 남면관은 당나라의 체제를 계승한 것이었다.

요나라에서는 이처럼 정부조직을 이원화하다 보니, 동일한 관직이 북면관·남면관 양쪽에 똑같이 설치되는 일이 생겼다. 예컨대, 재상은 북면관과 남면관 양쪽에 모두 설치되었다. 또 북면관에도 일종의 국방부인 북추밀원이 있었고, 남면관에도 상서성 밑에 병부가 있었다. 하나의 황제를 중심으로 북면관과 남면관이라는 2개의 정부가 존재한 셈이다.

이러한 이원적 정부체제에 대해 리우슈요우 같은 학자는 <이론도간> 2005년 9월호에 쓴 논문에서 “중국 역사상 최초의 일국양제(一國兩制, One State Two Systems)”였다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거란족은 ‘우리나라’ 고대의 북방 초원민족”이었다고 전제한 뒤에, 이 초원민족이 통합적인 통치체제의 구축을 위해 일국양제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물론 거란족이 한족을 멸절시키기보다는 포용하려는 쪽으로 정책을 수립한 것은 현실적인 선택인 동시에 바람직한 선택인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족 학자들의 긍정적 평가도 타당한 측면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족 학자들이 거란족의 정부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심도 있는 학문적 연구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정치적 고려 위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엄연한 객관적 사실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배제하는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위의 리우슈요우는 북면관·남면관 체제를 ‘중국 최초의 일국양제 시스템’라고 치켜세웠지만, 일국양제 유형의 통치 시스템은 이미 오래 전에도 실시된 적이 있었다.

요나라가 건국되기 6백 년 전인 5호 16국 시대(4~5세기)에 남흉노족 계열의 전조(前趙)에서는 이른 바 호한분치정책(胡漢分治政策)이 실시되었다. 호한분치정책이란 호(戶)를 단위로 하는 한족은 좌우사예의 통제 하에 두고, 락(落)을 단위로 하는 호족(胡族)은 선우좌우보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었다. 북방 출신의 호족과 남방 출신의 한족을 별도의 시스템으로 통치한 것이다.

중국이 거란족을 띄우는 이유

그러므로 원조를 따지자면, 일국양제의 원형은 이미 5호 16국 시대부터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남흉노족이 일국양제의 원형을 최초로 도입했고 남흉노족도 소수민족이었는데, 왜 남흉노족 대신 엉뚱한 거란족을 띄워주는 것일까?

그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고 할 수 있다. 남흉노족은 띄워줄 필요가 없는 반면에 거란족은 띄워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거란족이 발흥한 지역이 내몽골 지방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족 지식인들이 왜 거란족을 띄워주려고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중국이 내몽골을 지배하고 있고 또 그 너머에는 몽골이라는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 훗날의 역사분쟁에 대비해서라도 흉노족을 띄워주는 것보다는 가급적 거란족을 띄워주는 편이 중국 입장에서는 여러 모로 득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거란족의 요나라는 실제로는 일국양제를 실시한 최초의 국가라고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현실적 필요에 따라 남흉노족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떠안고 있다.

그런데 사안을 곰곰이 따져보면, 일국양제 시스템을 채택한 것이 그리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역설적으로 말하면 통치역량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란족의 요나라가 200년 가까이 중원의 일부를 지배했으면서도 거란족과 한족을 별도로 통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요나라의 통합능력이 부족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족을 위한 맞춤형 정부조직을 설치한 것도 바람직한 일일 수 있겠지만, 거란족과 한족을 끝내 하나의 정부 시스템 속에 통합하지 못했다는 것은 역량의 부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일국양제보다는 ‘일국일제’를 채택한 나라가 보다 더 능력 있는 정부가 아닐까?

그러므로 요나라의 이원적 정부조직인 북면관·남면관 체제는 해석에 따라서는 거란족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인데도, 중국 학자들은 이 체제를 극찬하면서 ‘우리나라 거란족’을 부르짖고 있다. 학문이 정치를 위해 봉사하는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중국 학계의 ‘소수민족 띄워주기’ 작업이 충분한 학문적 토대 위에서 전개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위기가 중국 학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또 그것이 별다른 사회적 견제를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나 일본 같으면 양심적 지식인 혹은 국제파 지식인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을 만한 일인데도, 중국에서는 이에 대한 특별한 내부적 제지가 나오지 않고 있다. 좋게 해석하면, 그것은 소수민족 통합에 관한 한족 나름의 오랜 노하우라고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부적으로 성장하는 국가는 언젠가는 외부적으로도 팽창하는 법이다. 그런 점을 생각할 때에, 한편으로는 경제성장에 주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소수민족 단속에 나서고 있는 중국정부 및 학계의 동향에 대해 지속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사공정 #역사분쟁 #거란족 #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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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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