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줌의 재가 되는 게 인생인 걸…

[현장] 전남 장흥 보림사 현광스님 다비식

등록 2007.11.26 08:47수정 2007.11.2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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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역시 허무하고 매정한 것인가 보다. ⓒ 임윤수

인생은 역시 허무하고 매정한 것인가 보다. ⓒ 임윤수


현광스님의 입적으로 찾아가게 된 보림사

 

안개가 자욱하다. 세상이 보기 싫다는 건지, 보기 싫은 세상을 보지 말라는 건지 자욱한 안개가 눈앞을 가린다. 두 눈이 뻑뻑해지도록 부릅떠 보지만 겨우겨우 나갈 길만 보일 뿐 사방이 자욱하다. 밤이기도 하지만 안개가 자욱하다 보니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도 제 구실을 못한다. 속도를 줄이고 조심 또 조심하며 더듬거리듯 찾아간 보림사, 아침 6시에 도착한 보림사는 조용하기만 하다.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보림사와의 인연은 현광스님의 입적소식으로 이어지나 보다. 이름난 절들을 숱하게 찾아다녔다고 하면서 정작 보림사는 초행길이다. 마음에 없었던 것도 아니고 시도를 안 해봤던 것도 아니다. 보림사를 가 볼 거라고 시도했던 게 서너 번쯤은 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그때 일이 생겨 다녀올 수가 없었다. 장흥에 들렸으면서도 보림사에는 들르지 못했으니 연이 닿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 가보고 싶었지만 가보지 못했던 보림사에서 입적하신 현광스님의 다비식이 있다는 연락이 있어 자욱한 안개 길을 달려 아침 6시에 도착하였다. 깜깜한 밤, 자욱한 안개 속에서도 무서리만큼은 서슬 퍼렇게 빛난다. 풀잎 가지에 서린 무서리는 하얗다 못해 날카롭기까지 하다.

 

남도여서 그런지 보림사가 있는 가지산은 아직 가을빛이다. 저만치 산꼭대기에 있는 나무들은 앙상하게 가지만 보이는데 경내에 있는 나무들은 농후한 단풍 빛이다. 단풍나무에는 빨갛고 노란 단풍잎이 빼곡하고, 이파리 떨어진 감나무에는 목탁을 닮은 감들이 빼곡하게 달려있으니 소설을 지난 한겨울이건만 보림사 경내는 만추의 풍경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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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가지에 서린 무서리는 하얗다 못해 날카롭기까지 하다. ⓒ 임윤수

풀잎 가지에 서린 무서리는 하얗다 못해 날카롭기까지 하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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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광스님의 다비가 있어 찾아간 장흥 보림사는 조용하기만 했다. ⓒ 임윤수

현광스님의 다비가 있어 찾아간 장흥 보림사는 조용하기만 했다. ⓒ 임윤수


경내는 조용하기만 하다. 다비식이 있어 찾아갔던 여느 큰절들처럼 사람들이 북적대지도 않고 번잡하지도 않다. 산문에 걸린 현수막, 경내로 들어서는 일주문에 걸린 현수막이 없으면 그저 새벽산사를 찾은 그런 기분일 듯하다.

 

8시가 다 되어서야 제단에 제물을 올리느라 분주해진다. 제물을 차리는 데도 격식이 있고 의미가 있으니 격식을 따라야 하지만 평생에 걸쳐 한두 번 경험할까 말까 하는 일이니 법납이 오래 되지 않은 젊은 스님이나 제물을 진설하고 있는 보살들 모두 우왕좌왕이다. 한바탕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진설쯤은 줄줄이 꿰차고 있을 법한 스님 한 분이 오셔서 과일종류는 앞줄에, 떡은 윗줄에 놓으라며 자리를 정해주니 일사천리로 정돈된다.

 

조문객들보다 먼저 찾아 온 미물들

 

몇몇 사람들이 분주하게 제단을 마련하고 있지만 조문객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조문객들보다 먼저 영결식장을 찾아온 건 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까치와 산새들이었다. 미타전 뒤쪽, 목탁을 닮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감나무에 수십 마리의 새가 날아들었다. 콕콕 입질을 하며 감을 쪼아 먹기도 하지만 염불이라도 하듯 재잘거린다. 아직은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은 한적한 시간이라 먹을 것을 찾아든 새들인가 했더니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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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보다 먼저 찾아 온 새들이 스님이 남겨 좋고 간 감을 먹고 있었다. ⓒ 임윤수

사람들 보다 먼저 찾아 온 새들이 스님이 남겨 좋고 간 감을 먹고 있었다. ⓒ 임윤수


영결식이 시작되는 오전 10시, 500여명이 자리를 하였고 영결식을 진행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앰프소리로 올리기 시작하니 멀찌감치 감나무에 앉아 있던 새들이 영결식단 뒤에 있는 은행나무, 스님의 법구가 모셔져 있던 조사전 마당에 있는 은행나무로 날아와 빼곡하게 앉는다. 한두 마리가 아닌, 쏟아 부은 듯 소복하게 떼를 지어 날아와 앉았다.

 

쩌렁쩌렁한 앰프소리,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움직임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앉아 있더니 삼귀의를 하고 법어를 할 때쯤에서야 자리를 뜬다. 조문객들에게 조문을 받으려 제단 뒤쪽나무에 앉았던 것도 같고, 인간들과는 함께 자리 할 수 없으니 제단 뒤쪽에서 떼를 지어 조문을 하고 떠난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 정도로 오묘한 광경이었다.

 

사람들이 스님을 이야기 한다. 불사월력이 대단했던 스님, 외롭고 어려울 때, 화가나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울 때 찾아가면 승속을 구분하지 않고 곡차 한잔을 권해주며 마음을 달래주던 스님, 무주구천을 떠돌고 있을 무명의 원혼들, 일본에 끌려가 주검이 되었으나 그 사실,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아 역사에도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은 서러운 원혼들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하셨던 스님이라고 추모한다.

 

함께 공부하고 같이 구도의 길을 걸으셨던 도반 스님들은 스님의 법력을 이야기하고, 스님에게 마음의 법문을 들었던 사람들은 스님의 낮은 자세, 호불호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곡차 한잔씩을 건네주시며 마음을 달래주시던 자애함을 이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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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을 시작하니 사람들 보다 새들이 먼저 영결식장 뒤 은행나무에 자리를 잡았다. ⓒ 임윤수

영결식을 시작하니 사람들 보다 새들이 먼저 영결식장 뒤 은행나무에 자리를 잡았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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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에 소복하게 앉은 새들은 삼귀의를 끝내고 법어를 할 때까지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 ⓒ 임윤수

은행나무에 소복하게 앉은 새들은 삼귀의를 끝내고 법어를 할 때까지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 ⓒ 임윤수


영결식이 끝나니 70여 년 동안 모습으로 보였던 스님의 법구를 다비장으로 이운한다. 그 흔한 꽃상여조차 마련하지 알관, 법구를 모신 나무 관에 붉은 색 명정을 씌웠고 그 명정 위에 조화(弔花) 한 다발이 얹어진 게 전부인 알관을 여덟 분의 학승 스님들이 양쪽으로 네 명씩 서서 이운한다.

 

만장이 파란 하늘에 펄럭거리니 빨간색으로 남아 있던 단풍,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던 단풍잎들도 만장이 되어 팔랑거린다. 다른 곳에 있는 단풍나무들이 일찌감치 이파리 떨어트린 초겨울, 첫눈까지 내린 지금껏 보림사 단풍나무들이 이파리를 매달고 있었던 것은 심어주고 보살펴 준 스님이 가시는 길에 이렇듯 만장 한 조각이 되어 펄럭펄럭 고마움 펼쳐 보이려고 차마 떨어지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오방번이 앞장서고 만장과 영정, 스님의 법구에 이어 이래저래 연을 맺은 스님들이나 세속인들이 기다랗게 늘인 반연의 줄, 흰색 천을 잡고 다비장으로 가는 길을 걷는다. 펄럭이는 만장, 길게 늘어선 반연의 줄, 그 반연의 줄처럼 이어지는 나무아미타불 소리와 함께 스님의 법구가 연화대 위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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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장에는 500여명의 조문객이 자리를 하였다. ⓒ 임윤수

영결식장에는 500여명의 조문객이 자리를 하였다. ⓒ 임윤수


집집마다 가풍이 다르듯, 제례를 가가례(家家禮)라고 할 정도로 비슷한 듯 보이나 집집마다 제사지내는 방법이 다르니 승가 또한 마찬가지다. 스님들에게도 문중이 있으니 문중마다 세속인들의 장례라 할 다비 방식이 다르다. 보림사는 송광사 문중(말사)이니 송광사 다비방식이라고 하였다.

 

영결식이 시작되기 전에 찾아간 다비장은 일찌감치 연하대 터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파여 있었는데, 이 정도 공간으로는 부족하니 다시 더 팔 것이라고 하더니 다시 찾아갔을 때는 이미 다시 판 구덩이에 숯과 장작을 넣어 땅과 편평하도록 하였고 굵직한 통나무를 가로로 놓아 관을 올려놓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준비된 연화대에 이운된 스님의 법구를 모시고, 조화를 걷어내고 명정을 벗겨내고서 장작을 쌓는다. 빙 둘러 서 있는 사람들이 장작 쌓는 사람들을 조용하게 바라본다. 어떤 사람은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였고, 어떤 사람은 108염주를 돌리며 뭔가를 염하고 있다. 나무 관에 가렸을지언정 생전에 스님을 보아왔던 사람들이 스님의 실체를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다.

 

어느새 장작더미가 수북하게 쌓이고 그 위로 물 먹인 짚더미가 올려지니 스님의 법구를 흙과 물로 돌리거나 한줌의 재로 남게 할 연화대가 마련되었다. 연화대가 마련되니 불을 붙이는 거화가 된다. 훨훨 타고 있는 솜방망이를 가져다 대니 바짝 마른 장작에 후루룩 불이 붙는다.

 

허망하고도 매정한 게 인생

 

참 허망하고도 매정하다. 산더미 같은 장작더미일지언정 한 두 시간만 지나면 한줌의 재가 될 터니 재가 될 장작더미가 허망하고, 그 장작더미와 함께 잘 하면 몇 과의 사리로 남게 될 인간의 육신, 스님이 가는 그 마지막 길조차 함께 지켜봐주지 않고 연화대에 불이 붙으며 모르는 듯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매정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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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그렇게 존경했던 스님, 평소에 그렇게 뵙고 싶었던 스님이라면 비록 형식적인 일이라 치부 할지라도 나무아미타불이라도 염하며 반나절만이라도 스님의 흔적을 기리지 연화대에 불을 붙이자마자 외면하듯 자리들을 뜨니 죽는다는 건 역시 허망하고 매정한 일인가 보다.

 

불붙은 연화대는 그냥 장작더미다. 행여 산불이라도 날까봐 출동한 소방관과, 장작더미를 쌓던 몇몇 인부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돌아가신 스님의 제자스님들도 보이지 않는다. 일찌감치 가사 장삼을 벗어버리고 편한 복장을 한 채 지나가듯 이따금 들러볼 뿐 예전 다비장에서 보았던 그런 모습은 당초부터 상상하였던 게 잘못이었다.

 

세속의 장례식에서만 점차 곡소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님들의 다비식에서도 입적한 스님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며 올리는 나무아미타불 소리조차 점차 들리지 않는다. 몇 년 전 어느 스님의 다비식에서 대수롭지 않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며 보았던 그 모습, 산더미 같았던 연화대가 다 사그라지도록, 목이 쉬도록 나무아미타불을 염하고 있던 스님들의 모습이 더 없이 귀하게 기억된다.

 

쓸쓸하다 못해 슬퍼보이기까지 하는 연화대, 훨훨 불타고 있지만 왠지 모자랄 것 같은 연화대를 잠시 떠나 보림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지산 전망대로 올랐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보림사는 한적하기만 하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인적조차 드무니 연화대에 오른 스님의 모습, 훨훨 타고 있는 연화대 앞에 놓여 있는 영정 속 스님의 모습은 이미 지나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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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전망대를 오를 때까지만 하여도 들리던 염불소리, 비록 테이프를 튼 앰프소리일지언정 염불소리가 들렸는데 전망대에 앉아 잠시 보림사를 전망하고 있노라니 들리지 않는다. 목탁을 치며 목이 쉬어라 직접 하던 나무아미타불 소리가 사라지더니, 그나마 앰프소리로라도 들려주던 염불소리까지 거둬들이니 야박함마저 느껴진다.

  

허망함에 매정함, 쓸쓸함과 야박함마저 느껴지니 ‘효는 대물림이라 했거늘’이란 말이 고드름처럼 입에 달린다. 전망대를 내려와 다시 찾아간 연화대는 거화를 한 지 두 시간 남짓 한 시간이건만 이미 사그라진 잿더미다. 아직 불길이 이글거리는 숯덩이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미 사그라진 잿더미일 뿐이다.

 

차라리 화장을 하는 게 좋을 듯

 

아! 이를 어찌할 일인가? 일찌감치 염려하였던 대로 타다 남은 스님의 법구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연화대가 마련되고 있을 때, 이미 여러 곳에서 치러지던 다비를 목견한 바 있는 필자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화력이 부족할거라는 걸 얘기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야 장적더미가 수북하니 오랫동안 화력을 뿜어내 스님의 법구쯤 어렵지 않게 다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인간의 육신이라는 게 그리 쉽게 사그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간과했나보다. 아름드리도 아니지만 통나무가 아닌 팬 장작, 바짝 마른 장작이니 처음엔 불길이 좋을지 모르지만 쉽게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간과했고, 여느 연화대처럼 속불로 지피지 않고 겉불로 불을 붙였으니 어쩜 당연한 일이다.

 

이쯤 되니 덧불을 때듯 장작을 다시 넣고 보이는 유골, 지글지글 타고 있는 육신을 감추기 위해 기다란 막대기로 쿡쿡 쑤셔 넣는다. 이런 다비라면 차라리 화장시설을 이용하는 게 훨씬 좋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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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떠난 보림사는 한적하기만 하다. ⓒ 임윤수

사람들이 떠난 보림사는 한적하기만 하다. ⓒ 임윤수


힘들게 준비한 영결식, 어렵게 치르는 다비에 결례일 줄 모르나 다음을 위해 할 말 좀 해야겠다. 다비에 관한 한 모르면 배워서 하고, 능력이 안 되면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세속인을 화장할 때도 그렇게는 하지 않을 거니 스님을 위하는 다비가 자칫 스님의 법구를 욕보이는 치욕의 장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비장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의 잘못도 아니다. 모르면서 묻지 않았고, 알면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서 온 스님들의 자업자득이며 세속인의 눈으로 봐도 해야 할 도리조차 하지 않음에서 거둔 자작자수다.

   

만장처럼 펄럭이는 단풍잎, 바람소리를 빌려 목탁소리라도 낼 것 같은 분홍빛 감나무 아래서 뒤돌아 본 연화대엔 다시금 장작이 던져지고, 던져지는 장작개비는 허망하고도 매정한 삶의 덩어리였다.

덧붙이는 글 | 장흥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동욱 기자님이 소식을 주어 다녀왔습니다.

2007.11.26 08:4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장흥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동욱 기자님이 소식을 주어 다녀왔습니다.
#보림사 #다비 #연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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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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