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에서 굴목이재를 넘다

아내와 함께 하는 국토여행

등록 2007.11.30 14:54수정 2007.11.3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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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열차를 타고

초등학교 시절 한강변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고 행주산성으로 소풍을 간 적이 있다. 아마 부모님이 아닌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첫 번째 기차여행이었을 것이다. 조바심을 치며 기다린  끝에 마침내 기차가 역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할 때의 설레임과 흥분은 당시로서는 다른 무엇으로도 경험할 수 없었던 짜릿한 감정이었다.

 

기차여행은 50대 초반인 아내와 나의 세대가 지닌 여행의 어떤 원형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때문인지 아내와 오래간만에 남도여행을 위해 순천행 열차에 오르면서 “그래 역시 여행은 기차로 해야지!” 라고 말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새마을호에 이어 기차 서열(?) 2위를 지키다 이제는 고속철도라는 첨단의 기종에 또 한 계단 더 밀려났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무궁화호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 좀더 가까워진 모습으로 역구내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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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무궁화 열차 어린 시절 기차는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의 상징물이었다. ⓒ 정상택

▲ 야간 무궁화 열차 어린 시절 기차는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의 상징물이었다. ⓒ 정상택


퇴색해가는 유년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아쉬우면서도 따사롭다. 지나간 시절을 추억하는 것은 세월의 무게에 눌린 나약함이 아니라 덧없이 잊혀져가는 것들에 생명을 부여하는 적극적인 행위라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종종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보다, 현실을 이겨내는 끈끈한 힘과 지혜가 스민 메아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E.H. CARR가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했다면 개인에 있어 저마다의 추억도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곽재구의 시, 「사평역(沙平驛)에서」중에서-


자정이 넘은 시각, 아내와 나도 그 ‘단풍잎’ 같은 차창에 기대어 힘들었거나 행복했던 지난 어느 시절을 이제는 다 ‘설원’처럼 포근해 보이는 한 가지 색감으로 회상하며 남쪽으로 흘러갔다.

 

선암사의 아침


이른 새벽 순천역 개찰구를 빠져나와 택시를 대절하여 또 얼마쯤을 달려 선암사 입구에 도착하였는데도 어둠은 아직 물러갈 기세가 아니었다. 봄이지만 아직 새벽의 기온은 냉랭하여 추운 정도가 마치 한 겨울을 방불케 했다. 아내는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발걸음을 옮겼다.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 아내의 모습에 나는 불이 켜져 있는 한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다. 새벽밥을 짓던 주인 아낙네가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어 내다보았다.

 

나는 장사집에 이른 아침에 하는 부탁으론 다소 뻔뻔스럽다고 느끼면서도 잠시 몸 좀 녹이다 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아낙은 귀찮은 내색 없이 선선히 그러라고 하며 청하지도 않은 커피까지 타다 주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하자 야간열차에 시달린 찌뿌듯한 기운과 으슬으슬한 추위가 한결 나아졌다. 커피값을 지불하려 하니 한사코 받지 않았다. 선암사를 둘러보고 다시 이리로 내려올 것이 아니라 굴목이재를 넘어 송광사로 갈 참이라 호의를 갚을 길이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커피 한 잔이 뭐라고 돈을 받는 답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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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들머리 아직 짙은 어둠 속에 바람소리와 계곡의 물소리만 들려왔다. ⓒ 정상택

▲ 선암사 들머리 아직 짙은 어둠 속에 바람소리와 계곡의 물소리만 들려왔다. ⓒ 정상택

 
늘 넉넉한 모습으로 거기 그렇게 있는 지리산이나 무등산 같은 남도의 산천이 남도 사람들
을 닮은 것인지 남도 사람들이 남도의 산천을 닮은 것이지는 모르겠지만, 도시적 계산법에
익숙한 아내와 내게 이른 새벽에 만난 남도의 인심은 고향처럼 훈훈한 것이었다.
 

아직 문이 잠긴 매표소 앞의 가로등을 지나 어둠 속으로 들어가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둠에 눈이 익으면서 길은 달빛에 하얗게 드러났다. 그 위로 수묵화 같은 나무 그림자들이 길을 가로 막고 누워 있었다. 숲 속에서 계곡물 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왔다. 가끔씩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갔다. 아내와 나는 발걸음을 최대한 아껴가며 걸었다. 산사로 들어서는 길이라서인지 새벽 예불을 드리러 가는 수도승처럼 정신이 맑아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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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일주문 일주문에 도착하자 새벽이 푸른 빛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정상택

▲ 선암사 일주문 일주문에 도착하자 새벽이 푸른 빛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정상택

 

선암사에 도착하자 어둠은 짙푸른 색으로 변해 있었다. 동쪽 하늘로 점차 동이 터오면서 고여 있던 어둠은 서서히 엷어져 갔다. 그러자 선암사의 경내는 절마당을 쓰는 스님들의 빗자루질 소리가 가득했다. 아내와 나는 절간 처마 아래 서서 그 소리를 들었다. 싸락 싸락 싸락. 경쾌한 소리를 내며 스님들이 쓸고 지나간 자리마다 참빗으로 빗어 내린 어머니의 머릿결처럼 정갈한 빗자루 자국이 길게 생겨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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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의 아침 스님들의 빗자루질 소리가 정갈하게 들여왔다. ⓒ 정상택

▲ 선암사의 아침 스님들의 빗자루질 소리가 정갈하게 들여왔다. ⓒ 정상택


아침이 밝아오는 선암사의 경내는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일주문과 종각을 지나면 대웅전과 설선당, 심검당과 만세루가 절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고 그 뒤로 한 단이 높여진 축대 위에는 불조전, 팔상전, 원통전, 장경각 등이 있으며 그 밖에 응진전, 달마전, 진영당, 미타전, 산신각 등 20여동의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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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건물과 건물 사이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길이 마냥 오붓해 보인다. ⓒ 정상택

▲ 선암사 건물과 건물 사이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길이 마냥 오붓해 보인다. ⓒ 정상택

그러나 각각의 건물들의 내력과 건축양식의 특징 등의 각론으로 선암사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암사의 아름다움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어주는 축대와 화단 그리고 담장 밖의 차밭과 전나무 숲 등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총론적인 아름다움에 있다. 인공적인 건물이고 인공적인 축대와 화단이지만 세월의 손길은 마치 그것들이 태고적 부터 거기에 있는 양 다듬어 놓아 어울림이 자연스럽다. 그 자연스러움이야 말로 선암사의 아름다움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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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의 차밭 절 뒤쪽으로 사철 푸른 차밭이 풍성하게 펼쳐저있다 ⓒ 정상택

▲ 선암사의 차밭 절 뒤쪽으로 사철 푸른 차밭이 풍성하게 펼쳐저있다 ⓒ 정상택


선암사는 또한 봄에 피어나는 곳곳의 다채로운 꽃들로 유명한데, 아내와 내가 들렸을 때는 그 절정을 지난 듯 대부분의 꽃들이 지고 여기저기 툭툭 떨어져 있는 동백꽃이나 연못 위를 하얗게 뒤덮인 벚꽃만이 끝물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아내와 나에겐 감동스런 아름다움이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예정 시간을 훨씬 넘기면서도 절의 안팎을 몇 바퀴나 맴돌며 선암사를 쉬이 떠나지 못했다.

 

자연을 꿈꾸는 뒷간


선암사를 돌아보면서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바로 해우소, 바로 화장실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절집 화장실로 꼽힌다고 한다. 이른바 ‘자유낙하식’ 형태의 재래식 뒷간이지만 깔끔하고 냄새도 없어 그 앞을 지나치면서도 주의하지 않으면 여느 절 건물인 줄로 알기 십상이다.

 

이 선암사 해우소는 남자칸과 여자칸이 좌우로 나누어져 있고 중앙에 통로가 있는 내부
구조를 갖고 있다. 안쪽 벽면은 환기를 위해  살창의 면적을 크게 하였다. 인분을 한 곳
으로 모아 솔잎이나 나뭇잎 등을 분료 위에 뿌려 숙성 시킨 뒤 일년에 한번씩 거름으로
쓰는 것이다. 선암사에서 경작하는 20여 마지기의 논밭은 바로 이곳에서 나오는 퇴비로
충분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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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해우소 마치 여느 절건물처럼 단정한 모습이다. ⓒ 정상택

▲ 선암사 해우소 마치 여느 절건물처럼 단정한 모습이다. ⓒ 정상택


16세기까지 런던이나 파리 등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배설물의 처리는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 유일한 방법은 요강에 볼일을 보고 그대로 창밖으로 쏟아버리는 것이었다. 당시에 배설물 처리는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여서 각종 규제와 처벌을 강조하는 법률이 만들어졌음에도 도로와 강물에 오물이 흘러넘쳤다고 한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감소 시켰다는 중세의 대재앙인 흑사병도 그런 불결한 위생환경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화장실 형태인 수세식 화장실이다. 매우 위생적이고 깔끔해 보이는 수세식 화장실은 그러나 배설물 처리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이라기보다는 ‘회피’의 측면이 강한 방식이다. 때문에 비록 이전과는 정도가 다르다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배설물의 하천 투척이라는 점에서는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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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의 내부 자연통풍으로 뒤깐 내부에는 배설물의 냄새가 전혀 고여있지 않았다. ⓒ 정상택

▲ 해우소의 내부 자연통풍으로 뒤깐 내부에는 배설물의 냄새가 전혀 고여있지 않았다. ⓒ 정상택


이에 비해 우리의 선조들은 배설물을  음식→똥→거름→음식이라는 생태적 고리의 하나로

인식했던 것 같다. 똥(糞)은 쌀(米)의 또 다른(異) 형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버리거나 포기할 없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사람이 제 똥 먹지 않으면 삼년을 버틸 수 없다”는 옛말이나 “흙이 똥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오곡이 풍성하게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수운 최제우 선생은 말에는 우리 선조들이 자연과 세상을 대하는 겸손한 자세와 뛰어난 지혜가 깔려 있는 것이다.

 

도시적인 삶의 형태가 보편화된 요즈음, 전통적인 방식의 기계적인 적용은 무리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소한도 선암사의 해우소가 실천하고 있는 자연친화적인 의미를 생각하면서 우리 시대의 삶의 형태가 지닌 걱정거리(憂)를 돌아보고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보는(解) 계기로 삼을 필요는 있을 것이다. 
 
    고향에 가면 신기하게 설사가 멎는다
    귀성길 꽉 막힌 도로가 뚫리듯 속이 개운해진다
    장에 있던 신경세포가 진화해서
    뇌가 되었다는 가설을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내 장세포들이 정말 귀향한 걸 알고 있을까
    온갖 염증에 시달리는 장세포들이 고향의 기억을 갖고 있을까
    외양간 옆 땅속에 파묻은 항아리 위에
    널빤지 두 장 달랑 걸쳐놓은 변소간에 앉아 있으려면
    외양간의 소들이 여물 씹는 소리
    송아지들이 어미의 젖을 쪽, 쪽, 달디달게 빨고 있는 소리
    뒤란에서 시원하게 엉덩이를 닦아주고 가는 댓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처마끝으로 굵은 별똥들이 뚝뚝 떨어져내리면
    땅속에 파묻어논 항아리처럼 별똥을 받아먹는 저 산과 들판
    사람이 제 똥 먹지 않고 삼년을 살면 병들어 죽기 십상이다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상할머니 말씀
    일년에 한두번 기를 쓰고 고향에 가는 건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장 없인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낯선 나를 경계하던 누렁이나 때까우가 다가와선
    마침 저들과 같은 일을 치르고 있는 나를 보고
    적이 안심하는 눈길로 바라보는 때도 바로 이때다 
                             - 손택수의 시, 「腸으로 생각한다」-

 

굴목이재를 넘으며


선암사에서 너무 시간을 보낸 탓에 굴목이재를 오르는 고개길은 다소 걸음을 재촉해야 했지만 아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후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서 산길엔 봄기운이 완연했다. 추위 때문에 입었던 두툼한 파커를 벗어도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휴식을 취하는 바위 옆 언덕엔 보랏빛 얼레지가 쫑긋이 고개를 들어 보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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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지 아침 햇살에 보랏빛 꽃잎을 활짝 연 굴목이재로 오르는 길의 얼레지 ⓒ 정상택

▲ 얼레지 아침 햇살에 보랏빛 꽃잎을 활짝 연 굴목이재로 오르는 길의 얼레지 ⓒ 정상택

 

옛길을 걸으면 늘 겸손이란 단어를 생각하게 된다. 굴목이재로 오르는 길도 피할 것을 피하고 돌아가야 할 것을 돌아가며 작고 가늘게 이어지는 향수어린 옛길이었다. 길은 몸을 돌린 수줍은 새악시처럼 예쁘게 또아리를 틀며 고개를 향하고 있었다. 어쩌면 먼 옛날에는 신혼길의 가마가 이 고개를 넘어왔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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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목이재의 보리밥 싱싱한 봄기운이 가득 배인 야채가 함께 나왔다. ⓒ 정상택

▲ 굴목이재의 보리밥 싱싱한 봄기운이 가득 배인 야채가 함께 나왔다. ⓒ 정상택


굴목이재는 조계산 동쪽의 선암사와 서쪽의 송광사를 잇는 해발 650미터의 나지막한 고개를 말한다. 고개 정산부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올라오는 방향에 따라 선암굴목이재와 송광굴목이재로 불리기도 한다. 그 정상부에 보리밥으로 유명한 굴목이재 식당이 있다.

 

원래 옛날에는 주막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된장국 그리고 젓갈과 야채와 더불어 나오는 보리밥상은 푸짐했다. 거기에 아내와 동동주로 낮술까지 곁들이니 일어서기도 힘들 만큼 배가 부풀어 올랐다. 우리는 배부름을 핑계삼아 식당의 평상에 누워 또 해찰을 부리며 빈둥거렸다. 서울로 되돌아 가는 기차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머물고 싶었다.

 

산허리 진달래 밭 위로 봄 햇살은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정말 환장하게 좋은 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1. 이 기사는 아쿠아(www.aq.co.kr)의 "아내와 함께 하는 국토여행"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자연을 꿈꾸는 뒷간'이란 소제목은 이동범의 동일한 제목의 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장돌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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