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찾아나선 쉰살의 여대생들

늦깍이로 대학 간 '작은 거인', 06학번 김연자·신순애씨

등록 2007.12.06 20:41수정 2007.12.1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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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 작은 두 거인 김연자(왼쪽)씨와 신순애씨 ⓒ 천주희


성공회대학교 2학년 김연자(50·사회복지학과)씨와 신순애(54·사회과학부)씨는 1950년대에 태어났다. 두 사람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김연자씨는 담장 너머로 학교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울곤 했다. 1973년 서울로 올라와 가발공장에 취직하지만 폭력이 심해 1년 만에 봉제공장으로 옮겼다. 신순애씨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 학업을 그만 뒀다. 12살 때 가족들은 남원에서 서울로 이사했고 1966년 청계평화시장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낮에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노동조합에서 하는 야학을 다녔다. 김연자씨는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 당시 신순애씨는 결핵을 앓고 있었다.

당시 조영래 변호사가 신씨에게 더 공부해볼 생각 없냐고 제안했으나, 그녀는 거절했다. "그 땐 내가 너무 어렸었죠. 노동조합 활동에 미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때가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입니다."

학교가는 친구들 보며 울던 소녀... 낮엔 공장으로 밤엔 야학으로

1981년 전두환 정권은 노동조합 해산 명령을 내리고 우연치 않게 두 사람이 있던 노동조합이 해산되는 운명을 겪는다.

그 후 김연자씨는 결혼을 결심했다. "현실 도피라고나 할까? 그래서 빨리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했어요."


하지만 결혼하기 전 조건을 걸었다. 1순위는 가장 열악한 환경, 2순위는 순한 사람이었다. 그는 "남편은 내 일을 가로막은 적이 없어요, 존중해주고 잘해주죠, 하지만 주희씨(기자)는 결혼할 때 서두르지 말고 냉정하게 결정하세요"라며 웃었다.

1986년 '문송면 수은중독 사망 사건'이 일어났다. 구로에 산재병원이 생겼고, 그 곳에서 6년을 일했다. 산재병원에서 사무장을 지낸 경력으로 2004년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이사장 직위를 맡았다. 3년 임기 동안 부채도 갚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 열심히 일했다.

김연자씨는 퇴임 후 공부를 시작했다. 1년 동안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06학번으로 합격했다.

그 당시 둘째 아들 정준기씨가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김씨는 가계 부담으로 아들에게 군대 갈 것을 권하지만 준기씨는 계속 학교생활을 했다. 정준기씨는 "당시엔 서운했지만 어머니가 학교도 열심히 다니시고, 오히려 그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든다"며 "요즘은 같은 대학생으로 동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편, 신순애씨는 3년간 도망다녔다. 친구가 있었던 고물상에 숨어 들어가, 봉투를 붙이고 종이를 고르면서 살았다. 그 때 지금 남편 박재상씨도 함께 있었다.

"연애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요.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마음 졸이면서 살았죠. 무엇보다 형사들이 매일 집에 찾아와서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요."

외환위기 이후, 신순애씨는 작은딸 박희용씨에게서 여성센터를 소개받았다. 그 때부터 10년동안 자원봉사를 하면서 소년원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과 만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사회는 희망은 안 주고 길만 빼앗아요. 비학생은 인간 취급도 안 하잖아요. 그런 아이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고 싶었어요. 비학생출신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2004년 3월 초등학교 시험부터 시작했다. 그녀는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실과 과목이 새삼 어렵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내가 평생 청계천에서 바느질을 했는데 정작 시침·호침 이런 말들을 보니 모르겠더라고요. 이거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이론과 실전이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죠."

신순애씨는 2005년 고등학교 시험을 통과하고 그해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했다 고배를 마셨다. 그녀는 다시 도전했고, 결국 2006년 사회과학부에 합격했다.

"주민으로 오해받아 도서관에서 쫓겨날 뻔"

두 사람은 2006년 성공회대학교에서 평생교육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 만났다. 월요일 오후 2시 50분, 수업 시작 10분 전이다.

김연자씨가 들어오고 곧이어 신순애씨도 들어와서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강의실에 들어오는 학생들과 인사를 한다. 물을 떠오기도 하고, 책을 들춰보기도 한다.

한 학생이 "어머니 과제 하셨어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며 하소연한다. 신순애씨와 김연자씨도 어울려 과제 이야기를 하며 하소연한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과제에 대한 압박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러다 교수가 들어오면 그녀들의 눈빛은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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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자씨가 수업하기 전 강의 노트를 보고있다. ⓒ 천주희


‐ 대학생이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었나요?
김연자(이하 김) "진리를 찾고 싶었어요. 내가 경험한 사회는 정체성도 혼란스러웠던 시대라서요. 대학에 진리가 있지 않을까요?"
신순애(이하 신) "학과 소모임이나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체력이 안 따라주네요. (웃음) 그리고 가정이 나에게 이만큼 배려하니까 나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집안에 신경쓰려고 노력해요." 

‐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저는 영어에서 주어 동사를 못 찾지만 한글에서도 주어와 동사를 잘 못 찾아요. 머리에서 생각하는 것 따로, 글 써지는 것 따로예요. 리포트 쓸 때 젊은 친구들은 몇 시간 안에 끝내는데, 저는 일주일 전부터 준비해요." 
 "사회복지사 시험을 보려면 암기하는 것도 많고 힘들어요. 하지만 그 안에서 배우는 것이 많아요."

‐ 2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무엇인가요?
 "근현대사 수업이요. 신주백 교수님이 한홍구 교수님 책(<대한민국사>)으로 강의하셨거든요.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내가 살아온 내용을 다루니까요. 우리사회가 특정시기에 미화도 많이 됐잖아요. 그런데 수업을 통해 그런 역사들을 재조명하니까, 내가 회복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잠재되어 있던 억울함들이 해소되는 느낌이었어요."
"고병헌 교수님의 교육학 수업이요.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든요. 다양한 친구들의 경험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그걸 들으면서 우리(기성세대)가 모르는 아픔들을 친구들이 갖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교수님이 수업에 임하시는 태도와 정신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 대학생활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데 관장아저씨가 주민인 줄 알고 나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세 번 정도 그랬을 거예요. 처음에는 화가 났는데 나중에는 나를 확실히 각인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저씨만 보면 인사했죠. 며칠 전에는 책 연체료를 내려고 갔는데  아저씨가 웃으면서 '연체료 있네요'라고 하셨어요."
"처음에 강의실을 잘못 들어갔었어요. 출석을 부르는데 내 이름은 안 부르는 거예요. 쉬는 시간 되면 말해야지 하고 앉아 있었죠. 그런데 수업내용이 이상해서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까 아니었던 거예요. 요즘도 가끔 강의실을 잘못 찾아요. 나이 때문에 그런지(웃음) 기억력이 안따라주네요."

‐ 대학교 술자리·엠티에도 참석하시나요?
"처음에는 몇 번 갔는데 술자리에 가면 불편해 할까봐 선뜻 나서기가 꺼려져요."
"엠티를 간 적이 있는데 학생들 어머니 나이다보니 지나치게 대접해줘요. 제가 일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쉬라고 하고, 그렇다고 계속 앉아만 있기도 그렇고. 그래서 요즘은 한 학기 끝나면 몇몇 친구들이랑 밥 먹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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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애씨가 창가에 앉아 수업내용을 예습하고 있다. ⓒ 천주희


- 06학번 동기들이 바라보는 김연자·신순애씨는?
이장미(사회복지학과) "연자 이모님이 컴퓨터를 잘 못하세요. 채팅으로 조별모임을 하는데 우리들 타자를 못 따라오셔서 한참 후에 말씀하세요(웃음). 저희한테 자주 물어보시고 배우려고 하세요. 또 한번은 집단 사례연구를 하는데 직접 느껴야 한다고 현장에 함께 나갔어요. 이모님은 사회운동에 관심도 많은 실천가라고 할까요?"
정은주(사회과학부) "왕언니는 아이들을 잘 챙겨주세요. 밥 먹었냐고 물어보고, 밥도 자주 사주시고요. 늦게 공부를 시작하셔서 공부에 대한 욕구가 커요. 부족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나 사회문제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하세요. 학기가 끝날 때에는 쫑파티하자고 먼저 말하시고요."

‐ 늦게 대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어차피 늦은 것이라면 여유를 갖고 하면 좋겠어요. 제가 검정고시 준비할 때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유있게 있다가 이제 와서 급하게 준비하냐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여유 있게 시작하면 좋겠어요."
 "저도 20년을 머뭇거렸어요. 하지만 그 생각이 들 때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아마 내가 20년 전에 시작했다면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하고 삶이 풍요로웠겠죠. 그러니 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하세요."

두 '대학생'의 꿈 그리고 열정

두 사람은 꿈을 위한 발판으로 대학에 왔다.

신순애씨 꿈은 청소년 관련된 일을 계속 하는 것이다.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계속 만나면서 청계노동조합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연자씨의 꿈은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을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에 아이들에게 멘토링을 하고있다.

평생교육공부, 사회활동, 인문학 수업 등 그녀들은 꿈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났을 때 땅거미가 내려 앉아 있었다. 저녁 일정에 대해 물어보니 두 사람은 "도서관 가려고요"라며 웃었다.
#만학 #김연자 #신순애 #성공회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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