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불출마 선언? 될 만한 놈이 해야 멋있지"

[박형숙의 대선진맥 28] '칼날 위' 이인영 의원 호소 "단일화는 마지막 도리"

등록 2007.12.07 02:21수정 2007.12.0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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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주가조작 및 횡령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김홍일 3차장 검사가 5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6층 브리핑실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이제 '께임'은 다 끝난 건가요?"

한동안 연락 없이 지냈던 지인이 불현듯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BBK 이명박 무혐의로 검찰 수사 발표가 나온 이튿날이다. 그는 정동영-문국현 사이에서 지지 결심을 하지 못한 이른바 '생활인 386'이다. 관련해 기사를 하나 쓸 생각이라고 회신하니, 한 번 더 문자가 날아왔다. "이명박이 되면 진보운동 살아날 거라는 낭만적 허무주의 좀 어떻게 해달라." 간절한 육성이 느껴졌다.

오죽하면, 네티즌들 사이에서 "투표방법으로 'ㅇ'가 아닌 'x'를 추가하자"는 제안이 나올까. 한 명이 정말 아닌 경우의 선택지라도 달라는 호소다.

운동장은 만들어졌는데, 선수 입장이 안되고 있으니

범여권이 바라던 대선 지형은 얼추 구성이 되었다. 이명박의 치명적 약점들이 드러났고, 이회창의 등장으로 보수가 분열했다. 남은 건 내적 요인이다. 여권 지지자들은 아직 대진표가 나오지 않았다고 여긴다.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운동장에 들어섰는데 응원할 팀이 입장하지 않고 있는, 난감하고도 불안한 상황이다. 경기 시작 시간은 째깍째깍 다가오는데….   

백낙청 교수는 얼마 전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스타플레이어의 현란한 개인기도 재미지만 그건 덤이고, 팀이 일치단결해서 이겨야겠다고 혼신의 힘을 쏟는 것이 감동"이라고.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BBK 검찰 수사가 이상야릇하게 이명박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나버리자 반(反)이명박 진영은 죄다 거리로 쏟아졌다. 5일 밤 광화문, 종로, 명동으로 이어지는 '거리의 연대'였다. 정동영 후보는 광화문에서, 권영길 후보는 종각에서, 문국현 후보는 명동에서 각각 "이명박은 안돼"를 외쳤다. 앗,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선 이회창, 박근혜 지지자들도 목소리를 보탰다. '대한민국 박사모' 명의로 "제2의 6·10 항쟁이 시작되어야 할 때이다"라는 플래카드도 보였다. 잠시 난감해졌다.


정동영-문국현 후보는 공동 집회를 타진했었다. 정 캠프는 당연히 적극적이었고, 문국현 캠프 내 일부 인사도 동조했지만 성사되진 않았다. '정'쪽에선 "같은 장소가 정 부담스러우면 제일은행 앞은 어떠냐"고 구슬렀다. 정 후보의 유세장소인 광화문 동화 면세점에서 조계사 인근의 제일은행은 서로 보면 볼 수 있고, 서로의 함성을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문 후보는 더 멀어졌다. 결국 명동으로 갔다. 정동영의 세력에, 문국현의 메시지가 묻힌다는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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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가 5일 광화문에서 열린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의 무혐의 검찰수사 발표에 대한 규탄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유성호


통합신당 의원들은 '투사'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유세장이 아니라 집회였다. '임을 향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김근태는 "유신시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고 투쟁했는데 역사가 이렇게 반복될 수 있는가"라고 개탄했다. 이해찬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부세력을 몰아내고 50년만에 이룬 민주주의를 이명박이 5년만에 무너뜨리려 한다"고 소리쳤다. 손학규는 "대선은 단지 정동영이냐 이명박이냐의 싸움이 아니"라며 "민주주의를 사수하기 위한 투쟁에 우리를 던지자"고 호소했다. 사회는 '전대협 스타' 임종석 의원이 봤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을 살펴봤다. 의원, 보좌관, 당직자, 선거운동원 외에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조금씩 보였다. 하루에 회의만 열두 번도 더하는 민병두 의원(전략기획본부장)도 현장에 나와 분위기 파악에 열중인 것 같았다.

민 의원은 "허탈, 낙심, 분노의 단계로 들어섰다"며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그래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로 이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은 건 이 과정을 '조직'하고 '전파'하는 것의 문제다. 통합신당은 BBK 검찰 발표를 통해 지지층 결속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허탈→낙심→분노의 단계로...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인영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하지만 고비다. 6일 백낙청 교수가 주도하는 단일화 중재 협상이 잠정 중단됐다. 단일화 방법, 시기의 이견차가 너무 크다. 또 선관위에선 '양자 방송토론' 불가 판정을 내렸다. 유권자의 시선을 잡기 어려워졌다. 단일화에 적색등이 켜졌다.

이인영 의원을 만났다. 그는 김근태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당내 경선을 관리하고 단일화를 촉구하는 등 '중립지대'에 있어 왔다. 정동영-문국현 누구 한쪽을 위한 선거운동에 나서지 않았다. 통합신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자당 후보를 위해 뛰지 않는 부담을 감수했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말한다. "선거가 종반으로 가고 있는데 지역구(서울 구로갑)에는 선거운동 시켜놓고 나는 안할 수 없는 것 아닌가"라며 답답해했다.

이 의원은 지난 달 25일 후보 등록 전, 28명의 중립지대 의원들과 함께 "연합정부로 단일화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정책 연합과 공동 내각으로 가치 연정을 하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불발됐다. "그 때 잠금장치라도 했어야 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공식선거일이 시작된 지금은 대놓고 연합정부를 협약할 수 없다. 후보 간 담합행위로 선거법 위반 시비에 걸릴 수 있다. 이심전심으로 조용히 추진하면 모를까.  

사실 이번 인터뷰 질문은 한 가지였다.

"후보 단일화, 왜 꼭 해야 하나. 하면 이길 수 있나. 대통합은 당위라면서 열린우리당 깨고 통합신당 만들어서 손학규까지 데려다 경선 치렀지만 지지율은 그대로 아닌가. 그런데 또 후보 통합을 하자고? 이명박은 그렇다 치자. 이번 대선을 관통하는 정권심판론에 가까운 '반노반여' 정서에 대해 응답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140명 의원들, 불출마 선언이든 석고대죄든 책임지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 4년 국회에서 이인영 의원을 지켜봤다. 참 무거운 사람이다. 언론에 장난질 안한다. 점잖고 반듯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나씩 풀어가 보자.

그는 "후보단일화는 절대가치"라고 말한다. "될 것 같으니까 하는 것 보다 옳으니까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확신하고 있었다. "단일화는 국민에 대한 민주개혁세력의 기본 도리이자, 최소한의 예의"란다.

"정권을 잃고 나면 생각보다 굉장히 추운 시절이 올 것 같다. 그런 생각하면…. 우리야 잘못했으니 고생해도 좋다고 치자. 죄 없는 백성이 왜 그 고생을 해야 하나. 나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대처처럼 하고, 이명박이 되면 레이건처럼 할 거라고 봤다. 둘 다 노동자, 서민의 희생을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밀어붙일 것이다. 노조 깔아 뭉개! 법대로 집행해! 때려 잡아! 우리를 심판한 대가가 저쪽(이명박)이라면 너무 불행해지는 것 아닌가."

때문에 그는 '단일화 하면 이기나'라는 사고가 "공학적이다"라고 판단한다. 또 그는 "분열은 그 자체로 우리 행위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민주개혁세력의 길이 옳다는 역사적 확신과 정당성을 심어내는 게" 단일화 과정이라고 여긴다.

- 이명박이 문제 있다는 것은 보수도 안다. 여론의 핵심은 정권심판론 아닌가.
"물론 그게 크다. 나는 마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국민이 (정권심판론이라는) 자기장에 갇혀 있다. 문국현이 신당에 들어왔어도 갇혔을 것이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강금실을 봐서 알지 않나."

- 정권심판론이 '실체'가 아니라 '허상'이라는 얘기인가.
"난 그렇게 본다. 그게 이른바 '싸가지론'으로 표현되는 것 아닌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방향'은 옳았다. 몇 가지 정책이 실패했다. 아니, 전부 정책이 실패했다 해도 나는 방향이 옳다는 게 더 크다고 본다."

- 옳았던 방향의 핵심은?
"평화와 복지의 확대다. 그리고 민주주의 통치."

- 양극화 해법을 정책 방향에 놓고 주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건 잘못 아닌가.
"2005년 대연정 제안으로 4, 5개월이 갔다. 국회의 양극화 논의가 가속도가 붙던 시기였다. 양극화를 위한 대연정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건 우리의 잘못이다. 노 대통령은 정치제도의 변화를 굉장히 크게 생각했다. 그 때 2를 가지고 틀어막을 걸 지금 10을 가지고 틀어막고 있다."

-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단일화 과정이 중요하다. '단일화도 못하는 놈들이 뭘 하려고 하냐'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은 지지층 결속이 우선이다. '분열되어 있는데 하나마나 아닌가'라는 생각부터 바꿔내야 한다."

"우리를 심판하면 심판받겠다. 근데 죄없는 국민은 어쩌냐"

- 140명 의원들의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주관적 감동 프로젝트다. 감동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드라마 작가가 대본 쓰듯이 되는 게 아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이 얘기는 안하려고 했는데" 하면서 입을 뗐다. 착잡한 표정이다.

"불출마 선언은 다음에 뭔가 가능성이 있을 때 하는 것 아닌가. 될만한 놈이 기득권을 포기해야 멋있지. 지금 이 상태에서 다 떨어질 거라 생각하는데 무슨…."

- 배지 없는 4년을 각오하고 있나.
"나는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갈 수 있다. 어려운 시절 운동했다. 칼끝이었다. 월례행사처럼 사무실이 털렸다. 내 40대가 5년 남았다. 공부하고 여행하고 운동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대다. 50 넘으면 몸 써가면서 땀 흘릴 수 있겠나. 내 자식이 중1이다. 사춘기가 시작된다. 좋은 아빠 노릇하고 싶다. 뭐 4년 의원 안하면 어때? 당선될 만한데 불출마 하면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지만 떨어질게 뻔한데 그러면 또 하나의 도피다. 친구들하고 술 먹다가 그런 얘기했다. 당선될 것 같으면 출마 안한다고."

그러면서 또 얘기 끝자락에 "그런데 국민이 무슨 죄냐"고 덧붙인다. "한번 다시 생각해보라고 호소하고 싶다"고 말한다.

- 정동영은 의장을 두 번 지냈고, 당의 대주주였다. 이명박의 치명적 흠결이 한둘이 아닌데도 지지자들이 넘어오질 않는다. 사실상 여론의 심판을 받은 것 아닌가.
"정동영은 후보 선출의 절차와 과정을 통과한 사람이다. 정통성이 있는 후보다. 그걸 간과한 채 한계만 보면 논란만 계속된다. 정통성을 대체하려면 납득할만한 절차가 있어야 한다. 단일화가 그런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문국현은 절차의 대표성이 떨어진다. 반면 가치가 부여된 후보다. 양자의 장점이 합쳐질 수 있다. 굴복이나 배척이 아니라 융합을 해야 한다."

시종일관 차분하게 얘기를 이어가던 이 의원은 순간 욱했다. 격앙된 목소리였다.

"여유를 가지고 한가하게 얘기할 때가 아니다. 지금부터 이주일 뒤에 이 나라가 대반동의 시대로 갈 것인지, 지난 10년 구부러진 것을 펴온 방향으로 전진할 것인지 결판이 난다. 이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데, 칼날 위에 서 있는 상황이라니까? 너무 절망이 짙어서 사람들이 침묵하는 것이지 분노가 없어서 그런 것 아니다. 그런데 대안이 안나오니까 절망과 탄식으로 나오지…. 그 불씨를 하나하나 살려나가자는 것이다. 그게 단일화다."

끝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전대협 1기 의장으로 87년 항쟁을 이끌었다. 20년이 흘러 40대 중반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 40대가 이명박을 떠받치는 주요 세대라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는 힘주어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한다. 30대 후반에서 40대, 80년대 대중을 진짜 믿는다. 생활인 386이라고 표현하자. (정치인 386인) 우리에 대한 분노가 막연하지 않다. 가장이 되고 애들을 키우다 보니 존재의 안정을 추구하게 돼서 생기는 외침이 아니다. '나이 들어 보니 먹고 사는게 중요하더라' 하면서 신념을 포기한 게 아니다. 새로운 사회경제적 대안에 대한 갈증이다.

정말 언제까지 주택, 의료, 노후, 육아의 문제를 가장이 다 감당하고 가야 되냐, 왜 국가와 사회가 나눠지지 못하냐, 국가와 사회가 우리 주변에 소외되고 약하고 일자리 잃은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시대관을 가지고 분노하는 것이다. 80년대 정의감 그대로 가지고 있다.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에 대한 구체적인 분노다. 문국현 후보가 그런 면에서 어필하고 있는 것 아닌가.


단일화가 되면 문국현의 솔루션은 정동영의 것이 된다. 역으로 정동영이 가진 평화통일 솔루션은 문국현의 것이 된다. 후보 간 맞교대가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갈망하는 대중들의 힘에 의해 선택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번 단일화는 2002년 노무현-정몽준 보다 훨씬  가치 있게 진행될 것이다. 단일화의 시너지가 2002년만큼은 아니어도, 가치의 폭발은 시작된다고 본다. 극단적으로 정권을 놓친다 해도 선명한 야당의 길이 뭐겠나. 이번 단일화를 통해 배태되는 가치는 대선 이후에도 계속된다."

"왜 이게 가치가 없다고 하는가?" 그는 내가 준비해간 질문에 되레 물음표를 던졌다.

이인영 의원은 인터뷰가 있던 다음날 6일 명동 유세장에서 사회를 봤다. 더는 정동영-문국현만 쳐다볼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리에서 외쳤다.

"반역의 시대를 물리치자. 87년 이후 20년간 민주화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최후의 투쟁을 선포해야 한다."
#후보 단일화 #이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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