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한자말 털기(10) 잔殘

우리 말 ‘남은 밥’과 군대말 ‘잔반’ 사이에서

등록 2007.12.11 11:23수정 2007.12.1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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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반과 쌀뜨물로 가득한 구정물통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  <박경화-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북센스,2006) 158쪽

 

군대에서 겪은 일은 제 삶에 참으로 크나큰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독수리보다도 굵고 억센 발톱으로 북북 긁고 갈기갈기 찢어낸 발자국입니다. 그래서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를 벗어난 뒤 열 해 동안은 강원도 쪽을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예전 회사에서 어쩔 수 없이 출장을 가면서 아홉 해 만에 강원도 땅을 밟기도 했어요. 한 해만 더 있었으면 열 해를 채웠을 텐데.

 

이 군대에서 늘 겪는 일 가운데 하나는 ‘잔반 처리’. 요사이는 나아졌다고 하지만(늘 나아진다고 하지만), 군인들(사병)이 먹는 밥은 개밥만도 못한 형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한 군인들 밥을 개밥보다 낫게 할 마음이란 이 나라 정부에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요. 군인들이란 총알받이일 뿐이거든요. 남과 북이 평화가 아닌 전쟁대립으로 갈라서 있게 해 놓는 뜨내기인걸요. 그런 판에 군인 대접을 해야 할 까닭은 없어요.

 

인권이나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며 사병 월급을 올린다느니 무엇을 한다느니 말이 있습니다만, 이런 몇 가지 일들로는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문제를 풀자면 딱 하나, ‘군대를 없애야’ 합니다. 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을 배워야 하며, 이웃을 적으로 삼아야 하나요. 그 피끓는 젊은 날, 왜 우리 마음을 가장 더럽히는 짓을 몸에 익히며 살아야 하나요.

 

 ┌ 잔(殘) = 나머지
 ├ 잔반(殘飯)
 │  (1) 먹고 남은 밥. ‘남은 밥’, ‘음식 찌꺼기’로 순화
 │  (2) 먹고 남은 음식. ‘음식 찌꺼기’로 순화
 │   - 식당에서 나오는 잔반을 돼지 사료로 이용했다
 │
 ├ 잔반과 쌀뜨물로 가득한 구정물통
 │→ 남은 밥과 쌀뜨물로 가득한 구정물통
 │→ (음식) 찌꺼기와 쌀뜨물로 가득한 구정물통
 └ …

 

 ‘잔반’이라는 낱말을 들으면 아직도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 으, 이런 몹쓸 ‘군대말!’ 하면서. 일제강점기 천황 군대 계급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대한민국 군대입니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이 고이고이 남아 있는 대한민국 군대이고요.

 

우리네 회사 조직도 군대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리하여 군대에서 쓰는 말은 회사에서 쓰는 말과 잇닿았고, 회사에서 쓰는 말과 학교에서 쓰는 말도 잇닿습니다. 학교에서 쓰는 말은 동네에서, 집에서 쓰는 말과 잇닿고, 동네와 집에서 쓰는 말은 동무들 사이에 쓰는 말하고도 잇닿습니다.

 

 어쩌면 저한테는 군대살이 스물여섯 달이 우리 사회를 구석구석 헤아리고 살피도록 해 준 고마운(?) 선물이었는지 몰라요. 군대를 안 나왔으면 우리네 사회 얼거리나 틀거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못 느꼈을 테니까요.

 

어쩔 수 없이 군대를 가야 하는 젊은 사내들, 사내들처럼 군대를 안 가지만 군대와 똑같은 조직 틀거리(회사)에서 젊은 날을 바쳐야 하는 가시나들. 이들 사내와 가시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자기 마음을 가꾸거나 북돋울 수 있을까요. 자기가 쓰는 말을 어떤 모습으로 추스르거나 가다듬을 수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2007.12.11 11:23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외마디 한자말 #우리말 #우리 말 #잔반 #잔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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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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