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착각에 4년 공부 도로아미타불될 뻔

평소에 안하던 아빠노릇하려다 큰 실수할 뻔

등록 2007.12.21 14:33수정 2007.12.2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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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착각으로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딸아이의 공든탑을 도로아미타불 만들 번한 경험은 떨리는 추억이다. ⓒ 임윤수

순간의 착각으로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딸아이의 공든탑을 도로아미타불 만들 번한 경험은 떨리는 추억이다. ⓒ 임윤수

어느덧 20여일이 지난 일이건만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줄기가 뜨끔해질 만큼 ‘아차!’ 싶다. 사범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큰딸이 지난 2일 전국적으로 실시된 ‘2008학년도 공립중등학교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 시험’에 응시했다.

 

아빠가 엉뚱한 시험장소로 데려다 주는 순간적인 착각으로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한 큰딸아이가 자칫 시험을 치르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으니 이야말로 딸아이가 쌓은 4년간의 공든탑이 무너질 수도 있었던 절박한 순간이었다.

 

아빠노릇 좀 하려고 동창회 유혹까지 뿌리친 한밤중 귀가

 

매년 12월 첫째 주 토요일은 초등학교 동창들이 만나는 동창회 날이다. 올해는 12월이 시작되는 첫날, 1일이 첫째 토요일이니 공교롭게도 딸아이가 시험을 치르는 날과 겹친다. 시험은 일요일(2일)이고 동창회는 토요일 저녁부터니 토요일 자정쯤 집으로 돌아올 거라는 생각으로 동창회엘 참석하러 고향엘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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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큰딸이 지난 2일 임용고시를 봤다. ⓒ 임윤수

사범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큰딸이 지난 2일 임용고시를 봤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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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보는 선배들을 위해 이른 시간부터 응원을 하고 있는 후배들의 모습이 대견하다. ⓒ 임윤수

시험을 보는 선배들을 위해 이른 시간부터 응원을 하고 있는 후배들의 모습이 대견하다. ⓒ 임윤수


초등학교 동창들은 언제 만나도 좋다. 새까맣던 머리카락들이 희끗희끗하게 쇠어 있고, 탱탱했던 피부에 주름은 생겼을지언정 그냥 푸근하다. 소위 출세한 놈, 그럭저럭 살아가는 친구할 것 없이 이날만 되면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두루뭉술하게 초등학생 수준이 돼 잴 것도 없고 뽐낼 것도 없으니 편하다.

 

가장으로서 짊어져야 했던 중압감, 사회인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고단함쯤 잠시나마 잊고, 딱지치기 하던 동심, 알나리깔나리 하며 서로의 마음을 감추던 연정의 시간들이니 즐겁다. 하룻밤일지언정 그런 동창들과 어울려 하룻밤을 새울 수 있다는 건 폐교가 되었거나 폐교의 위기에 놓인 시골초등학교 졸업생들만이 가질 수 있는 남다른 자산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동창회 날이건만 올 동창회에서만큼은 중간쯤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두 딸아이가 다 크도록 병원에 한 번 데리고 간 적이 없고, 입학식에 한 번 가본 적이 없으니 필자는 그렇고 그런 아빠, 두 딸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무심하고도 매정한 아빠였고 아빠다.

 

지금껏은 그렇게 했을지라도 딸아이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순간이기에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생각으로 딸아이를 시험장까지 데려다 주기로 약속을 했으니 이번 동창회만큼은 끝까지 함께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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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를 둘러보던 중 시험장을 잘못 찾아 온 것을 알게 되었다. ⓒ 임윤수

교내를 둘러보던 중 시험장을 잘못 찾아 온 것을 알게 되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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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의 학교건물이 갑자기 까마득해 보였다. ⓒ 임윤수

붉은 벽돌의 학교건물이 갑자기 까마득해 보였다. ⓒ 임윤수


몇몇은 도란도란, 몇몇은 횡설수설하며 초등학교 시절을 추억하고 있는 친구들을 뒤로하며 빠져나오려니 발길마다 미련이 남는다. 무슨 말들을 하고, 밤새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할지가 눈에 뻔하지만 자정이 훨씬 넘어 자리를 떴다.

 

집에 도착해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집을 나서서 시험장으로 갈 시간이다. 지금껏 해보지 않은 역할, 어슴푸레 해보는 아빠 노릇에 조금 쑥스럽기도 했지만 큰딸을 태우고 시험장으로 갔다.

 

집에서 10분쯤 걸리는 시험장 근처에 도착하니 저만치 시험장을 알리는 현수막이 보이고, 그 앞에 북적거리는 인파가 보인다. 버글거리는 사람들과 지체된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서있지만 여유롭게 도착했으니 서두를 게 없다. 현수막이 보이고, 시험장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보이니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시험장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잘못 찾아간 시험장, 자칫 시험을 못 치를 수도 있는 상황

 

결론부터 말하면 당연히 시험장일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 들어간 곳은 딸아이가 시험을 치를 곳이 아닌 다른 시험장이었고, 시험장엘 잘못 들어왔다는 것도 늦게야 알았으니 순간의 착각이 딸아이의 4년 공부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들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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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간 시험장 입구에도 응원단들이 있다. ⓒ 임윤수

다시 찾아간 시험장 입구에도 응원단들이 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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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은 응원하고, 교수님은 격려하는 모습이 따뜻해 보였다. ⓒ 임윤수

후배들은 응원하고, 교수님은 격려하는 모습이 따뜻해 보였다. ⓒ 임윤수

딸아이가 시험을 치르는 충남고등학교는 탄방중학교와 이웃해 있으며, 집에서 시험장으로 가려면 탄방중학교를 지나 충남고등학교로 가야만 한다. 하지만 벅적거리는 시험분위기에 순간적으로 당연히 처음으로 보이는 그곳이 시험장소일 것으로 착각해 충남고등학교가 아닌 탄방중학교 시험장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추운데 시험장으로 일찍 들어가지 말고 차에서 따뜻하게 있으라고 하고, 사진 몇 컷 찍으며 둘레둘레 주변을 살피다 보니 유리창에 붙은 ‘대전탄방중학교’라는 글씨가 눈에 걸린다.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딸아이가 시험을 치를 시험장은 탄방중학교가 아닌 충남고등학교인 게 생각나는 순간 어찌나 아차 싶던지.

 

차로 돌아오니 딸아이도 시험장소를 잘못 찾아왔다는 걸 막 눈치 채고 있었다. 딸아이가 당황이라도 할까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느긋하게 들어서며 슬쩍 시계를 보니 입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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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딸아이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휴~’하고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 임윤수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딸아이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휴~’하고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 임윤수


느긋하게 행동하고 있지만 마음은 허겁지겁이다. 다행스럽게 다시 찾아가야 할 시험장소가 울타리를 맞대고 있는 옆이니 늦지는 않을 듯싶다. 마음이 조급하니 정문을 빠져나와 옆 학교로 들어가는 거리가 멀고 복잡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늦게 도착한 학교에서 시험장소를 확인하고 입실하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고나서야 ‘휴~’ 하는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안하던 짓을 하니 일이 꼬이나보다 하는 생각이 드니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밤샘놀이나 할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험을 끝내고 나오는 딸아이를 만날 때까지 순간의 착각이 딸아이가 쌓아올린 4년간의 공든 탑을 무너뜨릴 뻔한 위기는 넘겼지만 당황이라도 해서 시험을 망친 것은 아닌가가 내내 걱정이다.

 

이심전심의 미소에서 박장대소로

 

시험을 마치고 가뿐한 표정으로 나오는 딸아이와 눈길이 마주치니 뭔가가 끝났다는 후련함, 4년의 결과를 단시간에 평가 받는다는 허무함에서 오는 이심전심의 미소를 짓는다. 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가던 중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들어오니 이심전심의 미소가 박장대소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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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의 꿈이 될 수 있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고대해 본다. ⓒ 임윤수

후배들의 꿈이 될 수 있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고대해 본다. ⓒ 임윤수

큰딸의 휴대전화에 오후 1시 58분에 날아든 메시지는 ‘언니 시험 잘 봐’하는 작은 딸아이의 지각 메시지였다. 언니가 시험을 치르는 것은 알고 있던 작은 딸이 뒷북을 치듯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작은 딸 역시 시험시간을 착각했거나 깜빡하고 있다 뒤늦게 기억을 하고 문자를 넣은 모양이다.

 

‘아는 길도 물어가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을 되새김하는 뜨끔한 경험이었기에 좋은 결과가 있기만을 고대해 본다.

2007.12.21 14:33 ⓒ 2007 OhmyNews
#임용고시 #시험장 #이심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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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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