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힘이 세다

[칭찬 첨삭 원리⑧] 글이 지닌 힘과 감동을 느끼게 하라

등록 2008.01.07 13:56수정 2008.01.0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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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있는 링컨에게 어린 소녀가 편지를 보냈다.

 

“링컨 아저씨는 너무 홀쭉해서 딱딱하게 보여요. 수염을 기르면 훨씬 부드러워 보일 거예요. 그러면 부인들에게 인기가 오를 거고, 부인들이 남편들도 설득할 것이므로 틀림없이 도움이 될 거예요. 수염을 기르세요.”

 

이 편지를 받은 링컨은 곧바로 수염을 길렀고, 정말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은 미국의 역사를 바꾸었고, 미국의 역사가 바뀌면서 세계의 역사도 바뀌게 된다. 한 어린 아이가 보낸 편지 한 통이 역사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셈이다.

 

글은 무기다

 

글은 인간이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다. 인류 역사에 글보다 강한 무기는 아직 출연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출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글이 세상을 바꿨고, 글이 세상을 만들어왔다. 당나라에 유학 간 최치원은 격문 한 장으로 반군을 물리쳤으며, 이황과 기대승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다.

 

마르코폴로는 ‘동방견문록’을 써 대항해시대를 열었으며,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으로 세계를 뒤흔들었다. 아담스미스는 ‘국부론’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놓았으며, 케인즈는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이라는 글로 무너져가는 자본주의를 구해냈다.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은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으며, 아직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글이 지닌 힘을 극대화시켰다. 고대부터 문자와 이를 기록한 문서는 오직 지배자들과 몇몇 지식인 계층의 소유물이었다. 일반인들은 글을 배우겠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배울 시간도 없었다.

 

책은 더 귀해서 책을 소유한 사람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15세기경 구텐베르크는 활자 조각 주조법, 활자 조각을 균일하게 조립하는 방법, 인쇄용 프레스기, 인쇄에 맞는 잉크 등을 개발하면서 대량 인쇄를 할 수 있는 인쇄기술을 완성했다.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유럽에서는 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자 유럽사회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책이 널리 퍼지면서 과거에는 소수가 독점했던 지식이 대중에게 빠르게 전파되었다. 정보가 빠르게 전파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소수의 권위자들이 사회를 좌지우지할 수 없게 되었다. 권위는 도전받았으며 새로운 생각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유지되던 잘못된 관습을 타파한 종교개혁이 인쇄술이 발전하고 책이 광범위하게 보급된 후에 찾아온 건 우연이 아니다. 인쇄술은 지리상의 탐험을 원활하게 해주었으며, 과학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지리상 탐험과 과학발전은 이후 세계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정보통신 사회가 되면서 글이 지닌 힘은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해지고 있다. 인쇄술이 유럽사회에 끼친 변화보다 더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인쇄기술은 책을 펴낼 수 있는 전문인이나, 책이 아니더라도 조그만 책자라도 인쇄하고 배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비전문인이 참여하더라도 그 영향력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보통신사회의 발달은 이 모든 장벽을 제거했다. 이제 누구라도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해 세상에 내보일 수 있게 됐으며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되었다. 익명의 누리꾼이 쓴 글 한 편이 세상을 뒤흔들기도 하며, 나쁜 악성 댓글이 어떤 사람의 운명을 뒤바꿔 놓기도 한다.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고, 그 영향력은 무제한에 가깝다.

 

실천적 글쓰기가 필요

 

자기가 쓴 글이 얼마나 힘이 있고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자기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깨닫게 되면 글을 대하는 자세가 바뀐다. 함부로 글을 쓰지 않게 된다. 신중한 자세로, 진지하게 글쓰기에 임하게 된다. 내 글이 그 어떤 사람을 설득하고, 그 어떤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그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알기에 결코 글을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

 

수동적인 글쓰기 태도에서도 벗어난다. 테스트를 위한 글, 목적이 없는 글을 쓸 때 아이들은 수동적이 된다. 자기가 세운 분명한 목적이 없고, 내가 쓴 글에서 아무런 의미를 발견할 수 없는데 주체적인 글쓰기를 할 리 만무하다. 글에 담긴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해야 주체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다.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그 말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글을 자기 걸로 만든다.

 

따라서 글쓰기 지도를 할 때는 글이 지닌 힘을 깨닫게 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글이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느끼게 해야 한다. 자기 글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생각에 영향을 끼치며,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칭찬이다. 실제 삶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스스로 자부심이 충만하게 될 것이다.

 

글에 담긴 힘을 느끼게 하려면 말로는 부족하다. “네가 쓴 글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라고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아무리 말을 해주어도 아이는 그걸 그냥 ‘잘 썼다’는 말을 다르게 한 것일 뿐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글이 지닌 힘을 느끼게 하려면 실제 삶에서 글이 지닌 힘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글을 공개하는 습관이 들어야 한다.

 

아이들은 글을 쓰면 자꾸 감추려고 한다. 다른 친구들이 보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화를 내기도 한다. 필통으로 글을 가리고, 옆 사람 눈치를 보며 쓴다. 선생님에게도 마지못해 내민다. 초창기에 논술 수업 할 때는 첨삭을 할 때마다 빼앗다시피 원고지를 낚아 채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이들이 선생님이나 친구들보다 원고지를 더 보여주기 싫어하는 대상은 부모다. 부모에게 글을 쉽게, 그리고 자신감 있게 보여주는 아이라면 웬만큼 글을 잘 쓰는 아이라고 봐도 된다.

 

글을 감추려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으레 내 글은 공개되는 것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친구끼리 돌려보기도 하고, 선생님이 읽어주어야 한다. 일기를 제외한 모든 글은 누가 봐도 관계없다는 열린 마음을 길러주어야 한다.

 

일단 공개하는 것이 익숙해졌으면 실생활에서 자꾸 글을 사용해야 한다. 논술문, 독후감, 일기처럼 누군가가 시켜서, 하라고 하니까 의무적으로 하는 글쓰기에서 벗어나 실제 생활에서 필요한 글을 써야 한다. 실용적 글쓰기를 해야 글이 지닌 진짜 힘을 느낄 수 있다.

 

엄마에게 용돈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글로 전달하고, 아빠가 담배를 끊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글로 전달하고,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글로 전달하고, 할아버지 안부를 묻는 전화 대신 글로 마음을 전해야 한다. 멋진 감상문이나 시를 써서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자꾸자꾸 자기 글을 드러내서 반응을 이끌어 내야 한다.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가 중요

 

이때 중요한 건 바로 독자다. 아이가 진실로 쓴 글에 진심을 담아 화답해야 한다. 아이가 엄마에게 글로 요구사항을 전달하면, 그 글이 요구하는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그에 맞게 정성스레 답을 해주어야 한다.

 

중요한 건 요구사항을 들어주느냐 들어주지 않느냐가 아니다. 아이가 쓴 글을 얼마나 진지하게 대해주느냐가 중요하다. 아이 글을 진지하고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이가 쓴 글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고, 아이가 쓴 글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칭찬 첨삭이다. 이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네가 쓴 글은 가치 있고 중요한 글이야.”

“너는 그만큼 가치 있고 귀중해.”

 

나는 수업 시간에 종종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요구하는 것이나, 전하고 싶은 말을 쓰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부모님께 보여드리라고 한다. 물론 그 전에 미리 연락을 해서 되도록 받아들여주길 부탁드린다.

 

대부분 부모님들은 어렵지 않게 아이들이 요구한 내용을 수용해 준다. 아쉬운 건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는 점이다. 아이가 정성을 들인 것에 걸맞게 부모님도 글을 써서 주길 부탁드리지만 대부분 부모님들은 제대로 된 반응, 즉 정성들인 답장을 해주지 않는다.

 

어렵더라도 부모나 선생님이 평상시에 아이와 글로 의사소통을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자기 감정이 받아들여진 경험보다 좋은 글쓰기 지도는 없다. 현실적인 목표를 위해서 글을 쓰므로, 정성을 다해 쓸 것이고, 논리를 최대한 설득력 있게 동원할 것이고, 최대한 감동을 주려 노력할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아끼며, 존중하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이러한 글을 자꾸 써본 경험이 쌓이면 당연히 논술문이나, 독후감도 잘 쓸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 댓글을 달거나,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실천하게 할 필요가 있다. 댓글이나 의견을 쓸 때는 짧은 문장 몇 개 쓰고 마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자기 생각을 구성해서 조금 길게 쓰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글을 자꾸 써야 세상을 대하는 관점이 분명해진다.

 

악성 댓글을 달거나, 무책임한 주장을 퍼트리는 사람들이 인터넷 상에 많이 있다. 이들은 글을 무책임하게 쓴다. 자신이 쓴 글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무기인지 전혀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악성 댓글뿐 아니다. 한다하는 지식인들도 자기 글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고민하지 않고 쓰는 경우가 많다. 무책임한 글쓰기를 하면 안 된다. 한 번 쓴 글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공적인 장에서 자기 의견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살피는 경험이 필요하다. 이때 지도하는 사람이 함께 되먹임(피드백)을 살피는 게 좋다. 함께 되먹임을 살피며 아이가 쓴 글이 지닌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점을 세심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좋은 글을 찾아서 자주 읽어보는 경험도 필요하다. 마음이 끌리는 글을 쓴 사람에게는 이메일을 보내거나, 블로그를 방문해 인사를 남겨도 좋다. 인사는 정성스럽게 남겨야 한다.

 

이 외에도 실제 생활 속에서 필요한 글쓰기를 자꾸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글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어떤 반응이 오는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책상머리에서 선생님께 첨삭 받고, 부모님께 칭찬받기 위한 글을 쓰기만 하면 글을 잘 쓰게 될지는 몰라도 책임 있는 글은 쓸 수 없다. 세상을 향해 진지한 고민이 담긴 글은 쓸 수 없다.

 

글은 일상생활에서 생각과 느낌,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글로 시험을 보는 건 부차적인 일이다. 실제 생활에서 글을 잘 활용하는 것이 글쓰기 교육의 목적이다. 교육 효과를 가장 높일 수 있는 것이 체험학습이듯, 글쓰기 교육의 효과를 가장 잘 높일 수 있는 수단도 역시 체험이다. 수많은 체험 속에서 자기 글이 주변 사람과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깨닫게 해주는 과정은 글쓰기 수업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2008.01.07 13:56 ⓒ 2008 OhmyNews
#글쓰기 #칭찬 #첨삭 #논술 #박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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