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모래밭 아이들>, 오늘날 교육의 문제를 고민하는 소설

등록 2008.01.18 16:04수정 2008.01.1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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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군 청소년수련관의 “들꽃학교”는 읍내의 중학생들 중 학습이 뒤처진 아이들의 방과 후 프로그램이라 했다. 주천면 자치센터에서 몇 개월간 초중생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어서 선뜻 하겠다고 했지만 어떤 아이들인지 궁금해 약간의 긴장이 가슴을 당겼다.

 

‘뒤처진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은 나쁘다고, 갖고 있으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라고 되뇌었다. 내가 맏은 교과는 영어였다. 중학교 1,2학년생들이 구성원이고 더구나 ‘수준이 낮아서‘ 매우 초급의 영어를 가르쳐야 할 것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있어서 약간 긴장도 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만나는 첫 시간에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은 호기심에 가득한 얼굴로 나에 대해 궁금해 했고 나는 이름과 사는 곳 정도로 소개하고 수업을 진행했다. 활기에 넘치는 아이들. 시종일관 떠들고 움직이고, 웃고, 장난치고 그런 아이들을 달래 수업을 시작하는 데에 무려 2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담임 선생님은 조급하지 않았다. 차분하게 이야기 하고 타이르고 아이들과 대화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한층 가라앉아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즐거워졌다.

 

매주 수업시간은 비슷하다. 아이들을 모으느라 10여 분. 조용히 할 때까지 10여 분. 수업은 자유롭게 아이들이 원할 때까지. 두 달여 기간 동안 아이들 수업을 맡아 진행하면서 내 자신이 즐거웠다.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느낌이랄까.

 

비록 아이들에게 영어단어나 영어문장을 말할 수 있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 아이들이 또래와 어울려 즐기고 스스로 결정한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에 작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서서히 하지 못했던 수업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는 일이 늘어났다. 다음엔 꼭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나누고 싶다는 등의 생각이 하나 둘 떠올랐다.

 

며칠 전 수업을 종강하고 수련관 선생님들과 식사하는데 수련관 관장님이 선물이라며 나누어준 책을 받았다. <모래밭 아이들>. 동화인가. 표지의 그림과 역자를 출판사로 착각하고는 그리 생각하고 책을 펴보니 글이 빼곡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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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밭 아이들> 표지 ⓒ 임준연

<모래밭 아이들> 표지 ⓒ 임준연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펴 보았다. 삼백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가 겪은 교육의 문제점들이 펼쳐졌고 학교를 다니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척 해왔던 나에 비해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조목조목 그 문제를 짚어내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모순적인 권력에 저항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흥분됐다. 저자에 관한 이야기를 짤막하게나마 들었던 나로서 그 흥분은 나만의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권해주신 선생님과 저자의 다른 책을 읽었을 많은 독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왜 이런 의식이 일반화 되지 못할까. 앞으로는 변해 나갈 것인가. 가끔이지만 이제 돌도 안된 아이를 놓고 향후 교육에 대해 아내와 나누던 이야기들. 홈스쿨을 희망하는 우리동네 여학생. 홀로 학교와 외롭게 투쟁했던 오태양군의 사건도 떠올랐다.


학교는 학생들이 주인이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행태는 지금 그렇지 못하다. 권위적인 대다수 교장과 선생들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혹은 진정으로 학교의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인식하지 못한 채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다. 

 

편의주의적 교육행정이 아이들을 교실에서 잠들게 만들고 있다. 논술에 영어, 수학으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과외는 새벽까지 이어진다. 그 안에서도 서로 경쟁하고 어떻게든 살아남기위한 몸부림은 계속된다. 몇 년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요즈음의 아이들은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다행히도 이곳 시골 아이들은 그런 위험(?)에 노출돼 있지는 않다. 경쟁도 덜하고, 지옥같은 과외 공부의 랠리에서도 벗어나 있다. 이들 역시도 사회적으로는 뒤떨어진 계급으로 치부하고 돌보아지지 않는지 모른다. 왜 어른들은 자신의 자식들과 조카들에게 이다지도 관심이 부족한 것일까.

 

우리 학생들은 자신들이 왜 공부하는지도 모른 채 공부하고 있다. 그들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대한민국 계급사회의 상위로 올려놓기 위한 도구로서 교육을 선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식들이 병들어 가는지도 모른채.

 

공교육은 끝났다라고 한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적어도 기성세대가 지금 자라나는 “10대들을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는” 지금의 사회 시스템에서는 학교교육의 희망도 없다. 우후죽순 늘어만 가는 대안학교가 그 반증이라 할까. 비록 잘난 “인증”을 받을 수는 없어도 적어도 다니는 아이들이 행복을 누리면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이 소설은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의 경험과 사상의 총화다. 교육의 현실과 그 속의 생각하는 아이들, 학생과 선생의 바람직한 관계 등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학교의 풍경과 그 속의 아이들. 이 책의 생각과 말은 이제 우리는 - 세속에 찌들어 - 생각하기 힘들게 되어버린 세상에 대한 이해다. 많은 아이와 아이의 부모 그리고 선생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1990년 원작
하이타니 겐지로/ 햇살과나무꾼 옮김/ 출판사 양철북/ 8,500원

2008.01.18 16:04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1990년 원작
하이타니 겐지로/ 햇살과나무꾼 옮김/ 출판사 양철북/ 8,500원

모래밭 아이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2003


#하이타니 겐지로 #햇살과 나무꾼 #교육현실 #교육에 관한 소설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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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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