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권한 남용 말라

법으로 정해 놓은 대통령직 인수위의 권한 범위와 한계

등록 2008.01.21 08:27수정 2008.01.2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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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치적 예지의 산물이라 할 민주주의는 수단 내지 절차의 존중이지 목적만을 제일의(第一義)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적법절차가 무시되는 조치라면 추구하는 목적과 관계없이 공권력의 남용이요, 자의밖에 될 수 없으며 합헌화될 수 없다. 법은 만민 앞에 평등하다. 대통령,재무부장관 기타 어떠한 공권력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보장받는 사회를 이루는 길이기도 하다." - 헌재 1993. 7. 29, 89헌마31 

 

이명박 후보자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인수위에 들어가기 위해 벌어진 각종 해프닝이 여러 신문을 도배한 바 있다. 인수위는 대통령선거 공신자들의 자리이고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실세들의 목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의 등장은 곧 장기집권과 정권넘겨받기에 익숙했던 과거 군사독재 시대와의 결별과 차별성을 의미하고, 무소불위 권력에 대한 법치주의의 도입을 의미한다.

 

인수위 제도를 처음 도입한 김영삼 전대통령 당시, 무시무시했던 전두환, 노태우 시대를 경험하면서 모두가 말 한 마디 하기를 두려워했던 시절에, 국제그룹해체를 위헌으로 선언한 사건에서 주심인 이시윤 헌법재판관(그 후 감사원장)이 "법은 만민 앞에 평등하다.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며 일갈한 것은 그 밑에서 연구관으로 있던 내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법치주의가 제 모습을 찾아가는 큰 족적이었음을 지금도 의심치 않는다. 법치주의는 너무나 큰 고통과 희생 속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인수위는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6개월의 한시법령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제정되었다. 즉, 대통령 취임 후 1개월 후에 소멸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경우 1992년 12월 28일(김영삼)과 1997년 12월 23일(김대중)에 제정되었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03년 2월 4일에 법률로 제정되었다. 곧 '대통령직인수에관한법률'이 그것이다(2005.7.28. 최종개정). 같은 날 시행령도 제정 공포되었다. 인수위의 법적 근거는 이런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수위, 왜?

 

그런데 인수위가 왜 이렇게도 말이 많고 탈도 많을까? 여기서 나는 그 원인과 배경에 대해 정치적, 사회적 함의나 철학적 담론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인수위원들의 설익은 정책공표와 충성경쟁 등을 논평하는 것은 나의 영역은 아니다. 다만, 인수위가 과연 그 권한의 행사를 정상적으로 하고 있는가, 법적으로 주어진 권한의 한계 안에서 수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정도만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인수위 직무의 질적 한계를 살펴본다. 현행법령에 의하면, 인수위의 설치 목적은 "대통령직의 원활한 인수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정운영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도모" 함에 있다. 여기서 새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새로운 정권의 정책에 반영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인수위법의 입법목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고칠 것인가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수위의 구체적 권한을 살펴본다. 역대 인수위 법령을 보면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인수위 근거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다가 법률로 승격시킨 것은 전술하였으므로 논외로 한다.

 

첫째, 인수위는 법률에서 '업무'를 사용한 것에서 보듯이 비공식적, 잠정적, 민간인적 성격을 갖는 조직이다. 아래 관련법령에서 인수위가 행하는 사무를 "직무→기능→업무"로 수정해 온 것은 비공식 행정조직으로서의 인수위의 성질을 보다 분명히 한 것이고, '업무'라는 용어로서 '기능'이 갖는 공조직적 뉘앙스를 회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인수위는 역대 인수위에 비해 그 권한이 대폭 축소된 조직이다. 즉, 2003년 법률에서 인수위의 권한을 '업무'로 한 것은 역대 정부 인수위에 비해 그 권한 사항의 축소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997년 및 1992년의 역대 인수위 권한 중 2호, 3호, 5호의 권한이 삭제된 것이다. 이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인수위의 권한남용과 비대화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 여기서 인수위법 제7조 제1호 내지 제3호의 '현황파악' 및 '준비'의 의미는 그 자체로서 비교적 명확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만약 이를 포괄규정으로 이해하여 취임전 인수위 단계에서 적극적인 총체적 조직개편, 현 정권의 비중있는 정책에 대한 중대한 전환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면 이는 헌법상의 법치국가원리에서 우러나오는 명확성원칙에 반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제4호의 "그 밖에 대통령직 인수에 필요한 사항"은 앞의 각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절차적 의미로 이해함이 타당하다.

 

이번에는 인수위의 권한 일탈 여부를 살펴본다. 현행법상 인수위는 과거 인수위의 권한에 비해 대폭 축소되었음에도 이를 무시 또는 간과한 채 과거 인수위 권한을 그대로 행사하고자 한다. 현형법상 인수위는 더 이상 "정부의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관리계획의 수립, 국가주요정책의 분석 및 수립, 정부기능 수행과 관련되는 주요민간단체와의 업무협조관계 수립"에 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으며, 이를 행사하면 월권이 된다.

 

그럼에도 현재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인수위의 각종 활동과 행위의 내용을 보면 월권적 내용이 너무나 많다. 예컨대, 통신요금인하, 세제와 부동산정책의 전환 등 각종 구체적 처분적 성격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은 인수위의 권한이 아니다. 그밖에 이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것은 여기서는 피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홈페이지 초기화면에서는, 인수위 주요 기능으로 "1 대통령당선인 선거공약의 구체화, 2 새 정부 운영기반 마련, 3 각 부처의 업무 보고 청취 및 국정과제 설정, 4 정부조직 구성 및 주요 직위 인선의 기준 마련, 5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채널 마련, 6 대통령 사전, 사후 행사 기획 등 취임식 준비"를 밝히고 있다.

 

이 중에는 인수위의 월권을 막기 위해 법률로서 그 권한을 축소한 인수위법의 입법취지에 배치되는 사항도 없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 대운하 선거공약의 구체적 집행 수준의 추진, 단임제 대통령 하에서 매 대통령 선출 때마다 구미에 맞게 대대적인 정부조직 개편 단행, 인권위 등 특유의 선진적 제도 폐지의 자제 등은 그 일부 예에 불과할 뿐이다.

 

인수위의 혼란과 혼선의 배경은?

 

그렇다면 인수위의 혼란과 혼선의 배경은 무엇이라고 볼 것인가. 글머리에서 밝혔듯이 '법적 관점'에서 일응 떠오르는 생각을 간략히 살펴본다.

 

첫째, 과연 인수위에서는 근거법령의 입법연혁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가 의문이다. 인수위의 권한이 왜 일련의 축소 과정을 거쳐왔는지에 대한 깊은 고려 없이, 종래의 점령군적 시각에서 전임자의 정책뒤집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즉, 과거의 인수위법령과 그 권한의 한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에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다.

 

둘째, 인수위도 그 권한을 법치주의원리에 부합하도록 행사하여야 한다. 인수위는 점령군이 아니며, 총으로 권력을 잡은 것도 아니다.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집권하는 대통령 당선인이 국정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여 통치를 하기 위한 기반을 준비하는 조직이다. 인수위원 중 다수가 입각하게 되겠지만 그것은 그 때의 일이다. 지금의 인수위는 인수위 본연의 조직 한계 내에서 그 권한을 행사해야만 한다.

 

셋째, 인수위는 이제라도 그 권한의 한계를 재점검하여 적법하게 권한행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까지의 활동 중 월권이 있었다면 이를 시인하고 그 한계를 준수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 밖에 헌법적 관점에서 풀어야 할 문제로 다음의 것을 들 수 있다. 현행 단임제 대통령 하에서 국가정책의 대변혁 초래는 타당한 것인가? 그리고 그 책임과 한계에 대한 담보는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물론 이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이자 과제이다.

 

관련법령

- 2003년 인수위법 제7조(업무):
  1. 정부의 조직·기능 및 예산현황의 파악
   2. 새 정부의 정책기조를 설정하기 위한 준비
   3. 대통령의 취임행사 등 관련업무의 준비
   4. 그 밖에 대통령직의 인수에 필요한 사항.
  * 동법시행령에서는 달리 새로운 권한 사항을 정하고 있지 아니하다.

 

- 1997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설치령 제2조(기능):
  1. 정부의 조직·기능 및 예산현황의 파악
  2. 정부의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관리계획의 수립
  3. 국가주요정책의 분석 및 수립
  4. 새 정부의 정책기조를 설정하기 위한 준비
  5. 정부기능의 수행과 관련되는 주요 '민간단체와의 업무협조관계의 수립
  6. 대통령의 취임행사 등 관련업무의 준비
  7. 기타 대통령직의 인수준비에 필요한 사항.

 

- 1992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설치령 제3조(직무):
  1. 정부 각 부처의 조직·기능 및 예산파악
  2. 정부의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관리계획의 수립
  3. 국가주요정책의 분석 및 수립
  4. 새정부의 정책기조설정을 위한 준비
  5. 정부기능 수행과 관련되는 주요민간단체와의 업무협조관계 수립
  6. 대통령의 취임행사 등 관련업무의 준비
  7. 기타 정부인수준비에 관한 사항.

덧붙이는 글 | 인수위의 월권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역대 인수위 관련 법령을 검토하고 관련 규정들을 해석해 보았다. 인수위의 권한 범위와 한계 준수가 요구된다.

2008.01.21 08:2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인수위의 월권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역대 인수위 관련 법령을 검토하고 관련 규정들을 해석해 보았다. 인수위의 권한 범위와 한계 준수가 요구된다.
#인수위 #이명박당선자 #이명박 #대통령직인수 #권한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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