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멸망한 지구에 타임머신 타고 홀로 서다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 26] 나미비아 나미브 사막 '데드플라이'

등록 2008.02.07 12:23수정 2008.02.0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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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플라이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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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써스 플라이로 가는 길. 물통의 물을 떨어진지 오래. 뜨거워진 모랫길에는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려 비틀비틀 딴 세상을 걷는 것 같다. ⓒ 조수영



여행 26일(1월 27일).

차가운 새벽 공기가 잠을 깨웠다. 너무 추워서 세수도 생략. 미치도록 뜨거운 한낮과 소름 돋게 추운 밤이 반복되는 사막의 일교차에 암석들이 견디지 못하고 모래로 부스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캠프장을 떠난 버스는 한 시간 후 쎄서림 캠프장에 도착했다. 어제 오후 물이 넘쳐 건너지 못했던 물줄기는 다행히 발목 깊이까지 줄어들었다.

쎄서림 캠프장은 소써스 플라이, 데드 플라이, 듄 45 등으로 가는 관문이 되는 곳이다. 사막 한가운데 만들어진 야영장이지만 깨끗한 공동 샤워실과 매점, 조그만 술집도 있다. 그러나 밤에는 종종 자칼이 등장하기도 하고, 전갈이 모랫바닥을 기어다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고행을 넘어 죽음의 웅덩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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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서림 캠프사이트. 어제 내린 비로 바닥은 진흙탕이 되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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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모래언덕은 푸른 하늘과 보색을 이룬다. ⓒ 조수영

캠프장에 남아있는 요리사에게 텐트와 배낭을 맡기고 모래 언덕으로 출발했다. 다시 한 시간 반을 달려서 2×4 주차장에 도착했다. 투어버스는 더는 들어가지 못한다. 사륜구동의 소형트럭이 아니면 모래에 빠져서 헤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데드 플라이(Dead vlei)'까지는 걸어서 두 시간이 걸린다. 시간은 이미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오를 넘어서면서 엄청난 햇살이 쏟아지겠지만, 이번 여행의 목표라고 생각했던 데드 플라이로 향하는 발걸음은 날 듯이 가벼웠다. 얼굴에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사막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붉은 모래 언덕은 원색에 가까운 하늘 덕분에 더욱 두드러지고 선명해 보인다. 찍는 사진마다 작품이 된다. 바람에 의해 절묘하게 휘어진 모래 언덕(사구)은 칼날과 같이 꺾어진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은 아름다울 것 없는 황무지일 뿐인데 원색에 가까운 하늘과 햇살이 만들어내는 장면 앞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찰스가 80랜드나 하는 소형트럭을 타라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사막은 한마디로 건식 사우나였다. 내리쬐는 태양과 달구어진 모래는 건조한 열풍을 뿜어댄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뜨거운 바람과 모래가 뺨을 스치고 간다. 가지고 온 물도 다 떨어지고 더는 발걸음을 뗄 수 없었지만 무엇에 홀린 듯 붉은 모래 언덕 속으로 걸어갔다.

내 생애 최고의 아름다움... '데드 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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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웅덩이 '데드플라이'. 타임머신을 타고 인류가 멸망한 지구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다. ⓒ 조수영



갑자기 눈이 부시다. 붉은 모래 언덕으로 둘러싸인 메마른 분지가 하얗게 반짝였다. 오아시스를 찾은 듯 달려갔다. 죽음의 웅덩이 '데드 플라이'였다. 그것은 증발된 호수의 흔적이다. 물은 말라버리고 나무들은 햇볕에 타 죽고 말았다.

앙상한 고목들은 미라처럼 남았다. 나무줄기는 만지면 부스러질 것 같은 숯이 되었다. 하얀 바닥은 검은 나뭇가지 덕분에 더욱 밝게 빛난다. 물이 고였던 바닥은 마르면서 딱딱해지고 추상적인 균열을 보이고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인류가 멸망한 지구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다. 앙상한 고목들은 생명이 끊긴 당시의 모습 그대로 유령처럼 서 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설치작품' '죽기 전에 꼭 와봐야 할 곳' '사진작가들이 가장 와보고 싶어 하는 곳'이라는 수식어가 절대 아깝지 않다.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어느 풍경 중에서 단연 최고다. 나 또한 죽기 전에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으로 '데드 플라이'를 꼽을 것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붉은 모래 언덕으로 둘러싸인 눈부신 데드 플라이가 눈에 어른거리고 가슴이 뛴다.

또 다른 모래 언덕을 돌아서니 소써스 플라이가 나타났다. 흙탕물을 뒤집어쓴 나무들이 죽은 듯 쓰러져 있다. 카멜쏜(Camelthorn, '낙타가시'라는 뜻) 나무로 부시먼들은 두통이 있을 때 이것을 먹는다고 한다. 오래전 대서양을 향해 흐르던 차우샤프강은 이곳에 이르러 높다란 사구에 막혀버렸다. 바다로 흐르지 못한 강물은 웅덩이에 고였다.

지금은 어쩌다 비가 내리면 흐르기는커녕 웅덩이처럼 물이 괼 뿐이다. 보통 때에는 말라붙은 골짜기일 뿐이다. 플라이(vlei)는 아프리칸스어로 '물웅덩이'라는 뜻이다. 아랍어로 '와디', 한자어로 '건천(乾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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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 위에서 본 데드플라이. ⓒ 조수영


그나마 소써스 플라이는 어쩌다 한 번씩 범람하기도 한다지만, 높은 사구에 둘러싸인 데드 플라이는 우리가 기억하는 한 한번도 범람한 적이 없다는 찰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플라이는 물웅덩이라는 뜻입니다. 모래 늪처럼 한 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다는 의미지요. 예전에 다이아몬드를 찾아 이 곳까지 들어온 이방인들이 돌아가지 못하고 부시먼의 독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불손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은 절대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교훈을 알려주는 이야깁니다."

사막이 어떻게? 허풍이라고 웃었지만, 바다로 향하는 강물도 단숨에 빨아들여 버리는 나미브 사막이 아닌가?

이곳을 넘어서면 모래 언덕이 차지하는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 있다. 대서양 해안까지 이어지는 사막은 나미브가 모든 물을 빨아들인 결과이다. 지금은 말라버린 강바닥인 소써스 플라이가 언젠가는 모래 언덕으로 덮이게 될 것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곳은 강물의 흔적은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사막이 될 것이고, 어딘가에 또 다른 웅덩이가 생겨날 것이다.

검게 물든 붉은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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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일몰. 태양은 붉은 노을로 붉은 사막을 검게 태우며 서쪽 끝으로 향하고 있다. ⓒ 조수영


제 아무리 천하 제일의 장관이라도 한낮의 사막의 열기에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더 이상 버티다간 쓰러질 것 같았다. 물통의 물을 떨어진지 오래. 뜨거워진 모랫길에는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려 비틀비틀 딴 세상을 걷는 것 같다.

캠프장으로 돌아와서 잠시 쉬다가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는 엘림듄으로 가기로 했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2ℓ 짜리 물 한 통을 다 마셨더니 이제야 살 것 같다. 일행의 절반을 그대로 캠프장에서 쉬겠다고 했다.

투어버스가 또다시 모래 언덕에 도착했을 때 태양의 각도는 어느새 한참 기울어져 있었다. 해가 뜨기 직전과 직후, 사막의 생명체가 하루 중 가장 바삐 활동하는 시간이다. 멀리서 오릭스와 스프링복·타조의 무리가 보였다. 배낭에 넣어온 남아공산 와인을 챙겨들고 사구를 올랐다.

태양은 붉은 노을로 붉은 사막을 검게 태우며 서쪽 끝으로 향하고 있다. 사막을 물들이던 태양은 모래 언덕의 실루엣만을 남겨두고 사라져버렸다.

이슬만 먹고 살아요, 비가 안 와도 괜찮아요


바람은 모래 언덕을 매끈하게 다려놓기도 하고, 물결무늬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매끈해 보이는 모래의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닉스의 발자국과 도마뱀의 발자국, 작은 곤충의 규칙적인 발자국이 보인다.

엄지손가락 한마디만 한 딱정벌레는 열심히 모래 굴을 파고 있었다. 이 딱정벌레의 사는 법이 기막히다. 사막의 극심한 일교차와 안개를 이용한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운 벵겔라 해류를 만나 비는 내리지 못하는 대신, 두텁고 축축한 안개로 사막을 덮는다. 그나마도 한 달에 몇 번 생겼다가 바람과 같은 속도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땅에 이슬로 맺히지는 못한다.

딱정벌레는 해가 뜨기 전 모래 밖으로 나와 경사면에 얼굴을 아래로 향한 채 엎드린다. 딱정벌레의 차가운 등에 닿은 안개는 물방울이 되어 등을 타고 내려와 입에 도달한다. 물이 없는 사막에서 딱정벌레는 마음껏 생수를 만들어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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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해 보이는 모래의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닉스의 발자국과 도마뱀의 발자국, 작은 곤충의 규칙적인 발자국이 보인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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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브사막의 딱정벌레는 차가운 등에 닿은 안개의 물방울을 이용해 사막에서도 마음껏 생수를 만들어 마신다. ⓒ 조수영


영양의 일종인 오닉스의 생존 방식은 더 치열하다. 체온 상승으로 뜨거워진 피가 뇌로 들어가면 위험하기 때문에 냉각기 역할을 하는 큰 뿔에서 피를 식혀서 뇌에 공급한다. 또한 코에 있는 냉각시스템은 낮에는 체온이 올라가게 하고, 밤에는 낮아지게 하여 항상 기온보다 약간 높은 온도로 체온을 유지한다.

그렇게 되면 땀이 나지 않게 되어 수분의 증발을 막을 수 있다. 오닉스는 물을 마시지 않고 밤이슬과 식물의 수분만으로도 살 수 있다고 한다. 나미브 사막에서는 어느 소주 광고에서나 볼 수 있는 '이슬만 먹고 사는' 동물을 볼 수 있다.

식물들도 사막의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을 최대한 그러모으기 위해 뿌리를 수평방향으로 넓게 뻗는다. 심지어 키는 1m밖에 되지 않는데 뿌리만 10m나 되는 것도 있다.

사막에 사는 뱀 또한 사막에서의 생활에 적합하게 행동한다. 보통의 뱀은 몸을 파도모양으로 구불거리면서 이동한다. 그러나 사막의 뱀은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미끄러지듯 움직여서 뜨거운 모래 위를 신속하게 이동한다.

지느러미다리도마뱀은 발가락 끝이 물갈퀴처럼 넓적하게 퍼져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몸이나 눈에 안개의 물방울을 모은 후 긴 혀를 자동차의 와이퍼처럼 사용하여 핥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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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건조 시스템의 사막 화장실. ⓒ 조수영



이 곳은 사하라보다 역사가 훨씬 오래되었지만 비교적 안정된 기후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전 세계 사막 중에서 가장 다채로운 동식물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연 강수량 50㎜,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모래와 자갈 평원만이 이어지지만 해변의 안개 덕분에 생명체가 살 수 있었다.

이곳의 생물들은 오랜 시간이 걸려 적응하고 변화해 왔다. 안개의 물방울을 흡수하는 다양한 습성을 발달시켜왔고, 한낮이면 표면온도가 70℃까지 오르는 모래에서 움직이는 법을 터득했다. 자연의 신비는 끝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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