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열쇠는 어디 있었을까?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 27] 나미비아 나미브사막, 45번 사구

등록 2008.02.28 10:50수정 2008.02.2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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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같은 모래언덕 ⓒ 조수영


여행 27일(1월 28일). 사구에 올라가서 일출을 보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새벽 5시에 캠프장을 나섰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모래 언덕 듄(dune)45에서 일출을 보고 돌아와 오전 7시에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막의 밤은 너무나 추웠다. 차가운 새벽 공기에 침낭으로 온몸을 둘둘 싸고 버스를 탔다. 사구 45번은 쎄서림에서 4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거대한 사구의 아래에 섰다.


30분을 달려서 듄45 앞에 섰다. 높이가 150미터라는 말과 달리 별로 높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몇 분 안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갑자기 생긴 자신감에 선두에 서서 모래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구에서 일출을 바라보기 위해 올라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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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번 사구 ⓒ 조수영



모래 구릉을 일렬로 서서 올라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그러나 가벼운 마음과는 달리 발은 모래 속에 푹푹 빠지고, 걸음은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무겁기만 하다. 열심히 걸어도 모래에 발이 빠져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두 걸음 오르면 한 걸음 후퇴하고 만다. 어느새 일행의 꽁무니 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찰스의 손을 붙잡았다. "나 좀 끌고 올라가."


찰스는 아직까지 내 나이를 모르는 것 같다. 여전히 각별한 친절을 보인다. 그는 사막의 사나이답게 사뿐사뿐 잘도 올라갔다. 그의 손을 잡고 언덕을 올라갔다.

푹푹 꺼지는 내 발자국에 비해 찰스의 발자국은 절반밖에 패이지 않았다. 발의 면적을 최대한 넓게 해서 압력을 최소로 줄이는 방법으로 걷는 것이다. 한결 수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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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모래 언덕 ⓒ 조수영


오렌지 빛 찬란한 아침, 눈가에 일렁이는 태양

드디어 정상. 일출이 잘 보일만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앞뒤로 몸이 쏠리면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꼭대기 능선에 쪼르륵 줄지어 앉아 태양을 기다렸다.

점점 여명이 밝아오며 멀리 있는 모래 언덕 사이로 햇살이 뿜어져 나왔다. 절묘한 각도로 휘어진 다른 사구들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났다. 해가 떠오르면서 변하는 하늘빛처럼 사구의 빛깔도 쉼 없이 변한다. 모래 빛깔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바뀌고 있다.

끝없이 어이진 모래 언덕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로 빛나고 있었다. 검은색에서 주황색으로 다시 노란색으로, 때론 보라색으로 나미브 사막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었다. 모래언덕의 굴곡은 아침의 햇살에 음영의 확연한 대조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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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영

"찰스, 왜 모래색이 빨개?"

찰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머니 속의 자석을 꺼내 보였다. 거짓말 같이 자석에는 철가루가 길게 따라붙었다.

"그건 말이지. 이곳의 모래가 철 성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해안에 있는 모래들은 바람에 의해 점점 내륙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이곳으로 이동해 오는 동안 산화되어 붉은색을 띠게 되지. 모래색은 사막 내부로 올수록 점점 짙어지기 때문에 그라데이션처럼 색깔이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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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을 보고 내려온 45번 사구에는 우리의 발자국이 꼭꼭 찍혀있었다. 그러나 잠시후면 바람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 조수영



신발을 벗고 맨발로 서자 고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파고든다. 정상에 올라 서로 장난치고 미끄럼을 타느라 주머니 속이 온통 모래인 것도 몰랐다. 가파른 비탈을 내리 달렸다.

꽤 심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보통의 언덕이라면 굴러 떨어졌을 테지만, 모래 언덕은 발을 디딜 때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니 그럴 위험이 없다. 빨리 달릴수록 압력이 커지는 셈이어서 더 깊이 발이 빠졌다.

언덕을 내려와서 45번 사구를 돌아보았다. 내가 밟고 돌아다녀 흘러내린 모래들로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했던 모래 언덕은 바람의 힘으로 발자국을 다 지우고 다시 칼날처럼 벼려진 채 서 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 뜨거운 감동으로 떠올랐던 태양도 사막의 모래를 다시금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사상 초유의 '날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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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투어 초유의 날벼락. 어젯밤 내린 비로 길이 막혀버렸다. ⓒ 조수영



캠프장으로 돌아가서 아침식사를 하고 스와코문트로 이동해야 했다. 모래 언덕에 올라가서 뛰어다녔더니 배도 고프고 기운도 없었다.

이게 웬일, 새벽에 건너왔던 개울에 물이 불어 강물이 되어 있었다. 어제 상류에 내린 비 때문이다. 불과 몇 시간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수심도 문제려니와 물살이 세서 더 이상 차가 진행할 수 없었다. 반대쪽에 있는 유럽인들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는 사막의 입구가 막힌 셈이다.

모두 버스에서 내려 하염없이 강물만 바라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출을 보고 돌아오는 다른 팀의 운전사와 이야기하던 찰스가 다른 길로 돌아서 가자고 했다. 지난번 텐트사건 이후 우리는 무조건 그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30분쯤 후에 도착한 그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아예 건너편 동네 아이들이 나와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다. 운전사들은 이리저리 전화를 하더니 어느 독일인의 사유지를 지나는 길이 있다고 했다. 시간은 어느새 오전 10시를 넘었다. 당황해 하는 찰스를 보니 배고프다는 말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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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돌아갔지만 역시 불어난 물로 캠프장에 돌아갈 수 없었다. ⓒ 조수영



한참을 달렸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 한번 구경하기 힘든 끝도 없는 땅에 철조망 울타리가 이어져 있었다. 이런 메마른 땅도 이미 주인이 있는 사유지인 것이다.

이번엔 사유지의 입구가 쇠사슬과 커다란 자물통으로 채워져 있었다. 팻말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걸었다. 경비원이 땅주인에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고, 땅주인이 허락하자, 경비원은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초소에서 출발하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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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후에나 올 경비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 조수영



참으로 끝이 없다. 아침도 못 먹고, 새벽에 나오느라 세수도 못한 꽤재재한 쌩얼이 한낮의 햇빛에 과감하게 드러났다.

우리 버스 말고도 두 대나 더 있어서 서른 명은 족히 될 것 같은 사람들이 한 시간 후에 올 경비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금의 열쇠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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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브 사막의 '돌할매'는 나를 국제적 스타로 만들어주었다. ⓒ 조수영


사막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사람들은 더위에 지쳐 버스에서 늘어져 있었다. 아침식사를 캠프장에서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차에는 물도 없었다.

혼자서 두리번두리번 철조망 주위를 서성거리는데, 문득 유난히 동그랗게 생긴 돌이 보였다. 주변의 자갈에 비하면 크기도 하고 돌이 놓인 가장자리가 파인 것이 일부러 돌을 그 자리에 놓은 듯이 보였다.

예전에 우리나라 영천에서 보았던 소원을 들어준다는 '돌할매'가 생각났다. 무심히 돌을 들어 올렸다.

짜잔! 거짓말 같이 열쇠가 하나 놓여있었다. 부루마블의 황금열쇠를 잡은 것보다 기뻤다.

모두 환호성을 쳤다. 사막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 풀려난 독립투사처럼 모두 부둥켜안았다. 나미비아의 '돌할매'는 나를 국제적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철조망 문을 열고 3대의 투어버스가 모두 통과한 다음, 열쇠는 다시 돌 아래에 잘 묻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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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걸어서 한번 건너보자. ⓒ 조수영



다시 한참을 달렸더니 새로운 물줄기가 나타났다. 여기까지는 물이 흐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곳도 물이 많이 불어 있었다. 물속에 작은 구덩이가 있을 것을 염려해 우선 찰스가 걸어서 강을 건너보았다. 반대편까지 건너간 찰스가 돌아오고, 투어버스는 바퀴가 반쯤 잠기는 강물을 조심스럽게 건넜다.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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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탈출에 성공! ⓒ 조수영



캠프장으로 돌아온 시간은 12시 반, 다 식어버린 아침이지만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같이 텐트를 썼던 언니가 그동안 배낭 아래에 숨겨두었다던 깻잎장아찌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2박 3일의 나미브 사막 투어가 끝나고, 나미비아 제2의 도시, 안젤리나졸리와 브래드피트가 아이를 낳으러 왔다는 스와코문트로 출발했다.
#나미브사막 #나미비아 #듄45 #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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