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교실, 길바닥 수업... "몸보다 마음이 추워요"

설 연휴, 35일째 길바닥 수업 하는 '노들천막야학' 을 찾다

등록 2008.02.07 11:14수정 2008.02.07 12:50
0
원고료로 응원
a

마로니에공원에 위치한 노들장애인야학 천막 ⓒ 홍현진

마로니에공원에 위치한 노들장애인야학 천막 ⓒ 홍현진
a

길바닥에 나앉아도 수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 홍현진

길바닥에 나앉아도 수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 홍현진

 

2월 6일 설 연휴 첫째 날, 유난히 한산한 대학로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그 때 눈에 띈 천막 하나, 가까이 가보니 '노들장애인야간학교'라는 간판이 있었다. 

 

지난 1월 초, 언론보도를 통해 노들장애인야학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다. 대학로에 천막을 치고 '길거리 수업'을 시작했다는 것.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들이 아직도 길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93년 문을 연 노들장애인야학은 그동안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정립회관에서 수업해왔다. 그런데 작년 6월, 정립회관 측이 '공간·관리비 부족'을 이유로 2007년 12월 31일까지 나가 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노들장애인야학의 37명의 학생들과 18명의 선생님들은 2008년 1월 2일부터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들 천막 야학'을 시작했다.

 

2005년 실시된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구의 45.2%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지난 14년간 한글, 덧셈 뺄셈 교육을 포함하여 초, 중, 고 검정고시 대비 교육 등을 통해 장애 성인들도 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노들야학이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길바닥 수업 35일째

 

a

송병준씨 ⓒ 홍현진

송병준씨 ⓒ 홍현진

천막 입구에 있는 초록색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문 앞에는 '길바닥 수업 35일째'라고 적혀 있다. 지난 1월 2일부터 지금까지 '엄동설한'을 천막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안에서 "들어오세요"라는 말이 들렸다.

 

천막 안은 두 개의 교실로 나뉘어져 있는데 교실 하나에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다른 교실에는 컴퓨터·침대·정수기 그리고 각종 생필품 등이 있었다.

 

간이천막이었지만 35일간 사람들이 살아서일까, 생각보다 구색이 갖춰져 있었다. 컴퓨터 주위에는 7명의 교사와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문화방송 오락 프로그램인 '무릎 팍 도사'를 보고 있었다. 전기는 발전기를 돌려서 쓴다고 했다.

 

다들 두꺼운 겉옷을 입고 있었다. "생각보다 천막 안이 춥지 않다"고 하자 "일주일에 2~3번 정도는 천막야학에서 잔다"는 송병준씨는 "낮에는 그나마 낫지만 새벽에 무지 춥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교실에 난로가 하나씩 밖에 없었다. 그는 "가끔 밤에 노숙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95년부터 2007년 봄까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공부했고 현재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천막을 비울 수 없다 보니 학생 1명, 교사 1명이 한 팀이 되어 천막을 지킨다. 교대시간은 오전 11시, 오후 9시, 2교대다. 설 연휴 역시 마찬가지다.

 

a

박경석 노들야학 교장 ⓒ 홍현진

박경석 노들야학 교장 ⓒ 홍현진

천막 수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없냐고 묻자 송씨는 "화장실 이용하는데 큰 어려움이 따른다"고 밝혔다. 화장실은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데, 휠체어를 끌고 좁은 현관문을 지나 공중화장실까지 갔다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여러 사람이 함께 갈 수 없고 한 사람씩 다녀와야 한다.

 

또한 "협소한 공간에서 많은 학생들이 함께 수업하다 보니 옆 반 수업내용이 다 들리는 등 수업에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노들야학 박경석 교장은 "종로구 안에서 약 1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공간을 찾아보니 보증금만 약 2억 정도 들더라, 후원금이 들어오고 있긴 하지만 이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며 공간 마련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정부로부터 1년에 5000만원, 올해부터는 3000만원이 인상되어 8000만원을 지원받는데 이 돈은 교육프로그램비 명목이라 공간 마련을 위해서 쓸 수 없는 돈"이라며 "정부가 장애인야학을 학교시스템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시설과 관련된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한 "3월까지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면 예산이 집행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노들천막야학은 이미 종로구청으로부터 철거 계고장을 받은 상황이다. 

 

이미 종로구청으로부터 철거 계고장 받아

 

a

이광섭씨 ⓒ 홍현진

이광섭씨 ⓒ 홍현진

교사들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1년 반 동안 노들야학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대학생 노유리씨는 "방학 동안에는 자주 야학에 나와 천막을 지키기는 등 많은 시간을 야학에서 보냈는데 개학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곧 봄이 올 텐데 그 때는 천막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교실에서 수업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학생들 중에는 8년간 노들장애인야간학교를 다닌 이광섭씨(뇌병변장애 1급)도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온 지 8년밖에 안됐다"는 그는 "그래서 노들야학에 대한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이야기 도중 거센 바람소리가 들리자 그는 "몸보다 마음이 더 춥다"며 착잡해했다. 또한 이씨는 "공간의 문제도 있겠지만 장애인의 교육권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취재를 마치고 천막 야학에 전시되어 있는 방문객들이 남기고 간 쪽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노들장애인 야학이 하루 빨리 제대로 된 공간을 확보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수업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a

방명록 여러분의 연대가 희망입니다 ⓒ 홍현진

▲ 방명록 여러분의 연대가 희망입니다 ⓒ 홍현진

덧붙이는 글 | 홍현진기자는 <오마이뉴스>7기 인턴기자입니다.

2008.02.07 11:14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홍현진기자는 <오마이뉴스>7기 인턴기자입니다.
#노들장애인야간학교 #노들장애인야학 #노들야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종영 '수사반장 1958'... 청년층이 호평한 이유
  2. 2 '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3. 3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4. 4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