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역사'이던 문기 아저씨를 떠나보내며

부민관 의거 동지 고 유만수 선생 장남의 고 조문기 선생 추도글

등록 2008.02.10 15:02수정 2008.02.1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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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별세한 독립운동가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의 노제가 11일 부민관 폭파 의거 현장인 중구 태평로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엄수되고 있다. 부민관 폭파 의거 동지인 고 유만수 선생의 자제 유민씨가 고인의 넋을 기리며 추도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문기 아저씨~.

이제 아저씨의 '젊은 날의 생애'를 들으려면 누구를 찾아야 하나요. 요즘 같으면 한창 자기만의 시간을 구가하는 나이인 10대 후반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만을 생각하던 그 드라마는 어디서 들어야 하나요.

선친이 돌아가신 후 제게 남아있던 유일한 '살아 있는 역사'이셨던 아저씨.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추동력이었던 전설 같은 독립운동 얘기는 이제 제 귓전만 맴 돕니다.

자주는 뵙지 못했지만, 만날 때마다 "진정한 독립은 오지 않았다, 독립을 완성시키는 길은 너희들 몫이다"라고 강조하셨던 아저씨의 모습이 아직도 제게 선연합니다.

어린 나이에 민족의 장래를 논하던 그런 정신은 살아 숨쉬며, 오늘날 세계로 뻗는 우리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되었는데, 그런 시리도록 푸른 조국 하늘을 아저씨와 함께 볼 수 없게 돼 가슴 찢어질 듯 마음이 아픕니다.

아저씨는 '살아 있는 역사'이셨습니다

문기 아저씨~.


일전에 편치 않으신 몸을 이끄시고 선친의 기념비 제막식을 찾아주실 때 저와의 대화가 마지막이 될 줄 미처 몰랐습니다. 그때 아저씨께서는 해방 후 6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제청산이 되지 않은 점을 한탄하셨지요.

민족정기의 대를 잇고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며 제 동생의 이름을 손수 지어주신 얘기하며, 젊으셨을 때 의거 날만 되면 저희 집 쪽방에 모이셔서 "독립운동은 무슨 독립운동이냐, 당시는 누구나 다 애국지사였다"며 마치 당연한 일을 하셨다는 듯 선친과 서로 담소를 나눴다는 일들이 이제는 먼 추억으로만 남습니다.

아저씨는 유독 정이 많으셨습니다. 선친이 돌아가시자 집에 오셨을 때 멀찌감치 떨어져서 눈시울만 훔치시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며 애통해하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선친 제막식 때는 부민관 의거 주인공 세 분이 형제보다 더 진한 우정을 나눈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당시 큰 뜻을 모의하던 한 시골 골방에서 잠자다 일어난 선친이 버선을 벗어 추울 것이라며 아저씨의 발에 신겨주던 기억을 떠올리시며 아저씨는 눈시울을 붉히시기도 하셨지요. 정이 많으신 아저씨를 다시 볼 수 없다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아버지가 남긴 것이 없다고 한탄 마라"던 말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선친이 돌아가셨을 때 조문하러 오신 아저씨가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너희 아버지가 너희들에게 남긴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나보다도 우리, 우리보다도 민족을 먼저 생각한 너희 아버지의 정신이 너희들의 커다란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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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민관 의거 동지들과 함께. 왼쪽부터 강윤국, 조문기, 유만수 선생. ⓒ 민족문제연구소

당시 저는 어린 나이에 무슨 말인지 선뜻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제야 아저씨의 숭고하고도 순수한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슬프지만 아저씨가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만날 때마다 외치신 '미완성의 독립운동'은 이제 아저씨가 한 알의 밀알이 되면서 완성형으로 방향이 돌려지고 있습니다.

내선일체와 조선인의 황민화를 부르짖었던 현장인 바로 이곳에 아저씨의 정신이 이렇듯 살아 움직여 그 미완성의 독립운동에 마침표를 찍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국민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했던 이곳에 오직 나라의 의만을 구했던 아저씨의 영혼을 축복하기 위해 모여든 많은 사람들의 추모 열기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문기 아저씨!

당신의 몸은 이 세상을 달리하셨지만 당신의 고결한 정신과 맑은 영혼은 영원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쉴 것입니다. 나라의 진정한 독립이 무엇인지 생각 없이 죽어 있는 우리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줄 것으로 믿습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저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영면으로 대신했으니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먼저 가신 아저씨의 형제, 선친 곁에 부디 편안히 잠드세요. 나라의 의를 먼저 구하신 먼저 가신 열사들의 가슴속에 부디 편안히 함께 하세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부민관 의거 당시 고 조문기 선생의 동지였던 고 유만수 선생의 장남 유민(현재 주 러시아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님이 보내온 추모의 글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부민관 의거 당시 고 조문기 선생의 동지였던 고 유만수 선생의 장남 유민(현재 주 러시아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님이 보내온 추모의 글이다.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친일파 #친일인명사전 #부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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