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 책임공방, 사태 본질 아니다

현직 소방관이 말하는 화재 진압 성패의 성급한 판단

등록 2008.02.12 09:03수정 2008.02.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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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밤 서울 숭례문에서 화재가 발생해 긴급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숭례문이 불타고 말았다. 국가보물 제1호가 화염에 휩싸여 붕괴되는 광경을 온 국민이 지켜보아야만 했다.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국보 제1호라고 하면 국가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재산이다.

그런데 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도심 한복판에 있는 국보 하나도 지켜내지 못하고 말았으니 국민들의 원성을 들어도 싸다 할 것이다. 국가 보물을 안전하게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는 문화재청 그리고 관리의 권한을 가진 서울시, 화재진압에 대한 책임이 있는 소방 당국은 모두 국민들의 분노에 의당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정말 소방당국은 화재진압에 실패한 것일까? 600년 된 국가 보물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광경을 생생하게 지켜본 국민들의 심정을 헤아리자면 엄하게 책임을 가려 일벌백계해야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난 민심과 그에 동조하는 공명심에 기대 화재진압에 전혀 문외한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초기 대응 잘못으로 몰아가는 일부의 주장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이라는 점을 주지하고자 한다. 일반인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마치 소방당국의 무능 탓에 국가 보물인 숭례문이 붕괴되고 말았다는 식의 일부 주장과 보도 태도에는 아쉬움이 많다.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사태의 본질은 외면한 채 희생양을 찾는 한국적 고질병이 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한 마디로 금번 국보 제1호 숭례문 화재는 소방 작전을 펼치는데 최상의 조건이었다. 소방대가 근접해 있었고 인근에 소화전이 많아 용수 공급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게다가 소방전술의 기본 원칙인 소방대의 포위 부서가 가능했고, 폭넓은 도로는 특수차량의 진입이 용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전 국민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가운데, 그것도 세계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결국 국가 보물 제1호가 화세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고 만 것이다. 사람들 말대로 정말 초기 대응이 실패했기 때문일까. 어느 문화재 전문위원의 말처럼, 또 어느 재난전문 교수의 인터뷰 내용처럼 소방이 무능해서 국보 1호가 쓰러지게 된 것일까. 


필자 자신이 현직 소방관이라, 화재진압에 있어 아무리 전문가적 입장으로 이치에 닿는 말을 하고 논리적으로 옳은 주장을 한다 해도 상심한 국민들께는 구구한 변명처럼 들릴 것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책임 공방에 가려 있는 진실은 전해야겠기에 목조 기와 지붕 건축물 화재의 특성과 소방 전술의 한계에 대해 설명 하고자 한다.

목조 기와 건축 화재의 양상

화재는 건축물의 형태와 구조에 따라 그 특성을 달리한다. 소방대의 화재진압 역시 그 화재의 양상과 특성에 따라 전략과 전술을 달리 전개한다.

이를 유형별 화재진압이라고 하는데, 화재진압에 있어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화재가 바로 목조 기와 건축물 화재다. 약 66㎡ 규모의 목조 기와 주택화재에 3개 소방대가 진압을 하는 경우, 평균 5시간 이상이 걸리는 것이 상례다.

왜 그런가. 원인은 이렇다. 일반 건축물 화재는 벽과 기둥, 또는 지붕이 아닌 내장재가 탄다. 따라서 타는 내장재만 잘 제어하면 화재는 조기에 진압된다. 그러나 목조 기와 지붕 건축물은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과 벽 자체가 탄다. 게다가 화세는 위로 상승하는데 천정을 떠받치는 구조물이 나무여서 쉽게 연소가 이루어져 회벽 또는 흙더미의 빈 틈을 파고든다.

뿐만 아니라, 거의 밀폐된 기와로 인해 열이 천정에서 점차 축적되고, 축적된 열은 나무의 심부까지 파고들어 가연성 가스를 발생시킨다. 그러면서 화세는 급격한 연소 현상을 보이며 지붕 내부로 파고든다.

지붕 해체하는 데만 장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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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호인 숭례문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큰 불이 나 11일 새벽 1, 2층 누각이 전소된 채 출근하는 시민들을 맞고 있다. ⓒ 남소연

일반적으로 화재진압은 화염에 대한 직접 방수로 시작된다. 화재 현장에서 화염은 상승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화염에 대한 방수는 위에서 아래로 주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런데 목조 기와 지붕의 건축물은 기와 자체가 내화재인데다 마치 우산처럼 소화용수를 차단해 결국은 지붕의 기와를 들어내야 진압이 가능하다.

건물 하부에서는 아무리 고압의 방수를 하더라도 적심 안으로 스며든 화열을 완전히 진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초기에 외부에서 집중 방수를 하여 화염이 가라앉았다고 하여 완전 진압이 가능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붕 아래 스며든 화열은 그대로 있다. 이를 제대로 진압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와를 들어내는 이른바 지붕의 해체가 필수적이다.

지붕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방대원의 안전이 고려되어야 한다. 일반 주택의 기와와 달리 숭례문의 기와는 크고 무겁다. 그리고 지붕의 경사도가 크고 깊어 안전 확보에 많은 사전 조치가 따른다.

여기에 야간인 데다 화재 건물이 도심에 있어 주변 고층건물의 영향으로 바람이 거세고 차기 때문에 살얼음까지 얼게 되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에서는 처마 끝으로 화염이 분출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고 지붕에서는 기와를 하나하나 해체하면서 상부 방수를 통해 잔불을 진압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국보 1호가 아니었다면, 당연히 초기 화염을 제어한 후 지붕의 기와 해체 작업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600여년을 보존해 온 국가보물이자 국민적 관심사인 것을 잘아는 소방지휘본부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소모적 논쟁을 줄이고 대안을 찾아야

‘초기에 진압만 됐더라면!’ 하고 국민과 언론 모두 아쉬워하고 있다. 세계가 보는 앞에서 국가 보물 1호가 붕괴되었다는 자괴감에 지금 국민들은 허탈해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냉정을 찾아야 할 때다.

소방방재청과 문화재청이 서로 책임 회피를 한다느니 하는 다툼의 장으로 몰아가는 듯한 보도 태도는 재난을 다루는 성숙한 언론의 자세가 아니다. 물 먹은 상태로나마 다행히 붕괴되지 않은 가운데 화재가 진압되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제는 목조 건축물인 국가 보물과 문화재의 화재 위험성을 새롭게 각인하고 제도적 정비와 대책을 찾아야 한다. 값비싼 보물을 잃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고 소모적인 책임 공방과 논쟁으로 지금 허송세월 보낼 때인지 묻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김주환 기자는 서울소방방재본부 소방관 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주환 기자는 서울소방방재본부 소방관 입니다.
#화재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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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공무원으로 33년을 근무하고 서울소방학교 부설 소방과학연구소 소장직을 마지막으로 2014년 정년퇴직한 사람입니다. 주로 화재를 비롯한 각종 재난현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과거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방전술론' '화재예방론' '화재조사론' 등을 집필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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