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서 1년간 실어증 앓다 전역 6개월 지나도 계속

2006년 9월 강원도 속초 모 부대 근무 윤아무개씨... 국가유공자 인정 안돼

등록 2008.02.12 12:03수정 2008.02.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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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강원도 속초 육군 모 부대에 근무할 당시 실어증에 걸렸던 윤아무개씨가 당시 쓴 일기장의 내용이다. ⓒ 윤성효


“갑자기 22일 저녁에 어렸을 적 생각을 하다가 울음이 나오면서 목소리가 작아졌습니다. 그래서 바로 당직사관에게 보고 후 당직사관이 추후 경과를 지켜보자 하여서 그냥 2~3일 정도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듯하더니, 며칠 후 창고에서 작업도중 어떤 고참이 장난으로 휘두른 각목이 손에서 미끄러지며 저에게 날라 와 쇄골 아래 부분에 맞게 된 뒤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윤아무개(23·부산)씨가 2006년 9월 25일경에 쓴 일기다. 그는 당시 강원도 속초 육군 모 부대 소속 헌병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그 뒤부터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다. 군대 내에서 실어(失語)증이 발생해 민간인이 되었지만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고 있다.

그는 군대 소속으로 있으면서 10차례가 넘는 진료와 치료를 받았지만 말문이 트이지 않았다. 2006년 말 부대는 당시 상병이던 그의 사정을 고려해 한때 보직을 변경하기도 했다.

전역 전 병가 휴가를 받아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부모들은 약물치료와 정신치료 등을 요구했지만 기대만큼 되지 않았다. 그는 원래 전역 기한을 남겨 두고, 2007년 8월 23일 ‘해리(전환) 장애’로 의병전역했다. 그것도 실어증이 나타난 지 11개월만이었다.

‘실어증’을 안겨준 군대를 떠난 지 6개월이 되었지만 그는 아직 말을 못하고 있다. 오는 9월 대학에 복학해야 하는데 본인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지난 11일 아버지 윤경문(48)씨가 일하는 부산 해운대의 어느 일터에서 만난 윤아무개씨는 항상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다녔다.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를 쓰는데 사용하기 위해서다. 아버지한테 하고 싶은 말도 휴대전화에 문자로 적어 보여주었다.

아버지 윤경문씨는 “실어증세를 보이기 불과 한 달여 전 휴가를 왔다가 복귀했다. 휴가 때는 아무런 증상도 없었다”고 밝혔다.


부산지방보훈청, 국가유공자 인정 안해

가족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의 말문을 트이게 하기 위해 부산이며 서울 등 유명 병원들을 찾아다녔다. 정신과 상담까지 받았지만 뚜렷한 치료책을 듣지 못했다.

아버지는 최근 부산지방보훈청으로부터 통지서를 받았다.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거부당한 것이다. 윤경문씨는 이같은 통지서를 받고 분통을 터뜨렸다.

“군대 복무 중에 발생한 실어증 아니냐. 지금까지 그런 선례가 없어서 그런지, 부대며 보훈청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 아들의 실어증이 사회에 있을 때 발생했단 말이냐. 군대 있으면서 발생한 게 뻔한데, 인정하지 않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 정말 억울하네요.”

부산지방보훈청은 ‘국가유공자 등록신청 비해당 결정통지서’를 통해 그 사유를 설명했다.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한 결과 ‘부상(질병)이 공무수행과 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것. 그래서 ‘국가유공자등예우및지원에관한법률’의 ‘공상군경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부산보훈청은 이같은 처분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국가보훈처에 행정심판을 청구하거나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비해당 사유서’에서 부산보훈청은 “병상일지상 ‘거미막 낭종’ ‘해리(전환) 장애’로 치료받은 기록이 확인되나, ‘거미막 낭종’은 군공무와 무관한 양성종양이고, 각목 운반작업 중 각목에 왼쪽 어깨 쇄골 부위를 부딪친 후로 말을 안하기 시작하여 진단을 받은 ‘해리 장애’는 외부충격이 발병에 선행할 수 있으나 전적으로 외부충격에 의해 발병하였다는 의학적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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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보훈지청은 최근 윤아무개씨 앞으로 통지서를 보내 국가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진은 부산지방보훈청의 통지서 일부. ⓒ 윤성효


아버지 "실어증도 억울한데 내 돈 들여 소송까지 해야 하나"

가족들은 이같은 이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군대에서 근무하다 말문이 막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은 군 복무 중 여러 차례 스트레스를 받은 사실을 털어 놓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렇다면 부산보훈청은 실어증의 의학적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무슨 연유로 말문이 막혔는지도 밝혀야만 납득할 수 있는 게 아니냐. 그런 이유도 밝히지 않으면서 무조건 인관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민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군 복무로 인해 실어증이 발생한 사례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사례가 없다고 해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곱게 키운 자식을 군대 보냈더니 말문이 막혀 왔는데, 그대로 받아들일 부모가 어디 있단 말이냐”라고 덧붙였다.

윤경문씨는 행정심판 내지 행정소송을 내기로 하고 준비를 하고 있다. 윤씨는 “내 돈 들여서 소송까지 해야 한다고 하니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자식이 말문이 막힌 것도 억울한데 소송을 해야 하는 어려움까지 겹치게 되었다.
#실어증 #부산지방보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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