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흙냄새를 맡을 줄 아는 정복자였다

[역사소설 소현세자 5] 대륙의 정복자 홍타이지, 조선 수군에 떨었다

등록 2008.02.19 16:36수정 2008.02.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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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타이지 심양 북릉공원에 있다. ⓒ 이정근


부름을 받고 이어의 군막으로 가던 연실이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별빛도 없는 그믐날 밤. 분주히 움직이는 청군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려올 뿐 조용했다. 세자와 세자빈이 들어있는 군막을 지날 때, 군막 앞에 장승같은 검은 물체가 서 있었다.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그는 소현세자였다. 궁으로 돌아간 부왕의 안위가 걱정되어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자와 눈이 마주쳤다. 연실은 세자를 잘 알지만 소현은 연실을 모른다.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 소현을 스쳐 지나갔기에 세자는 연실을 알 길이 없다.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 지나갔다. 소현 역시 그 여자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붙잡을 힘이 세자에게 없었다. 연실은 채홍사 이어의 심사를 통과했다. 참을 수 없는 치욕의 순간이었다.


여자를 나누어 갖는 여진족

채홍사 이어에 의해 선발된 조선 여자 열 명이 황제에게 바쳐졌다. 연회가 끝난 홍타이지는 10명의 여자를 자신의 숙소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밤은 깊어갔다. 이튿날 아침, 황제는 왕과 장수들을 자신의 숙소로 불렀다.

“짐은 환궁 할 것이다. 예친왕은 철군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라. 조선 정벌에 공을 세운 제왕들의 공을 치하하며 상을 내리노라.”

철군 명령이 떨어졌다. 자신이 먼저 심양으로 돌아갈 것이니 도르곤 책임 하에 차질 없는 철군을 수행하라는 명령이었다.

황제는 채홍사 이어가 선발한 열 명의 여자 중에서 4명의 여자를 남겨두고 나머지 여섯 명은 왕과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여진족은 황제가 품었던 여자를 내려 받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다. 홍타이지는 여자의 가장 은밀한 곳에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조선 수군의 근거지를 보고 싶다

심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한강을 건넌 홍타이지는 곧장 북행길에 오르지 않았다. 공유덕과 경중명을 대동하고 삼전도에서 배를 탄 홍타이지는 纛島(독도)에 군영을 마련했다. 독도는 오늘날의 뚝섬이다.

경중명은 명나라 장수였으나 청나라에 투항하여 회순왕(懷順王) 대접을 받고 황기(黃旗)를 부여받은 사람이다. 공유덕 역시 한족(漢族)이다. 모문룡의 부하였으나 산둥성에서 난을 일으켜 청나라에 귀순하여 왕의 칭호를 받은 사람이다.

이들이 수항단 단상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 인조는 경악했다. 한때 우리의 우군이었던 명나라 장수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 하늘같은 황제를 모시던 명나라 장수가 오랑캐 황제를 모시는 왕으로 변신해도 된단 말인가? 눈을 의심했지만 현실이었다.

“조선 수군의 심장부를 보고 싶다.”

황제 일행을 태운 배가 두모포에 도착했다. 병선은 보이지 않고 몇 척의 고깃배가 부서진 채 포구를 지키고 있었다. 두뭇개는 황량했다. 대마도를 정벌하기 위하여 발진하던 조선 수군을 전송하던 세종의 그림자는 없었다. 227척의 전함을 거느리고 떠나던 이종무 장군의 위용은 흔적이 없었다.

“조선 수군이 이것이 전부란 말이냐?”

홍타이지의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했다.

“용산강에 조선 수군의 제조창이 있습니다.”

당시 경강(京江)에는 삼강(三江)이 있었다. 목멱산을 기준으로 광진에서 노량까지를 한강. 그 서쪽 삼개나루까지를 용산강, 그 이서 양화진 까지를 서강이라 불렀다.

“그리로 안내하라.”

황제를 태운 배가 용산강에 도착했다. 사수감(司水監)을 두어 병선을 건조하던 용산강은 초라했다. 전함사(典艦司)로 개칭되면서 함선 건조권이 양도 수군절제사에게 이양되면서 많이 위축되었지만 그래도 도성 방비의 전함은 이곳에서 건조되었다. 용산강은 조선 수군의 모항이었었던 것이다.

인조 당시, 전함 건조권이 군기시(軍器寺)의 별조청에 소속되면서 최악의 사태를 맞이했다. 별조청은 칼과 창은 물론 활과 화살을 만들면서 화약과 포탄에 치중했다. 함선 건조는 홀대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 걸 맞는 군비에는 등한시했던 것이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이용한 가장 조선적인 군비가 적에게 공포의 대상이라는 것을 간파한 사대부는 이 땅에 없었다. 치고 박고 서로 싸우면서 외적이 침입하면 산성으로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대부가 대부분이었다.

조선 수군에 마음 졸였던 정복자 홍타이지

조선 수군의 최대 함선 제조창이었던 용산강은 을씨년스러웠다. 뭍에는 짓다만 배가 나뒹굴고 있었다. 강변에는 불에 탄 병선이 앙상한 뼈대만 드러내고 있었다. 홍타이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홍타이지가 심양을 출발하기 전, “너 떨고 있니?”라고 누가 묻는다면 “네”라고 대답할 홍타이지였다.

대륙 정복의 야욕을 불태우던 홍타이지는 조선 수군이 두려웠다. 말 달리며 만주벌판을 평정한 여진족은 수전(水戰) 경험이 전무다. 병선도 없다. 적의 수군과 붙으면 백전백패라는 패배의식이 팽배했다.

불과 40여 년 전. 동아시아 최강의 수군을 보유한 일본이 대륙을 넘보며 한반도를 침공했을 때, 남해안 바다에서 일본 수군을 궤멸시킨 조선 수군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전설적인 인물 이순신은 가고 없지만 조선 수군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청나라가 북경으로 나아가려면 요하를 건너야 한다. 대륙을 요동과 요서로 가르는 물길이 요하다. 청나라가 중원으로 나아가려면 산해관을 통과해야 한다. 만리장성을 넘어야만 비로소 북경 나아갈 수 있다. 이 때 청나라의 왼쪽 옆구리가 발해만이라면 오른쪽 옆구리가 압록강 하구다.

조선 수군이 명나라와 연합하여 청나라의 옆구리를 친다면 청나라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최악의 사태에는 심양을 내줄 수도 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홍타이지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홍타이지가 조선을 침공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제 거칠 것이 없다. 치고 나가자

조선 수군의 현장을 확인한 홍타이지는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대륙이 눈에 보였다. 중원이 손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홍타이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흘렀다. 어젯밤, 품에 안은 조선 여자도 만족스러웠고 조선 수군의 모습은 더더욱 흡족했다. 

“병선을 건조하여 가도를 치도록 하라.”

경중명과 공유덕에게 명이 떨어졌다. 조선인의 함선 제조기술을 이용하여 병선을 만들어 라는 것이다. 건조한 병선으로 가도를 공격하라는 명령이었다. 가도(椵島)는 평안도 철산반도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이다. 압록강 하류와 맞닿아 있다.

가도에는 명나라 수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청나라에게 가도는 목에 가시였다. 돌아가는 길에 가시를 뽑겠다는 것이다. 출정 당시 가도 정벌 계획은 없었다. 즉흥적인 작전명령이었다. 조선 수군의 현실을 파악했으니 마음 놓고 가도를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홍타이지는 삼전도에서 조선의 흙냄새를 맡았고 용산강에서 대륙의 흙냄새를 맡았다. 동물적인 후각이다. 역시 홍타이지는 군사 전략가였고 흙냄새를 맡을 줄 아는 정복자였다.
#소현세자 #홍타이지 #여진족 #용산강 #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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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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