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아마추어 리더십' 시험대에 오르다

임기 시작도 못한 장관 3명 줄사퇴 진기록... 추가 낙마자 나올까

등록 2008.02.27 16:00수정 2008.02.2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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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8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13개 부처 및 국무위원 2명에 대한 조각명단 발표하면서 기침을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8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13개 부처 및 국무위원 2명에 대한 조각명단 발표하면서 기침을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남주홍 통일·박은경 환경부장관 후보자의 사의 표명으로 이명박 내각의 도덕성 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청와대와 여당은 두 사람의 동반 퇴진으로 국민적 비난 여론이 잦아들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야당들은 일부 인사들의 도덕성을 여전히 문제삼고 있다.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문제가 된 각료들의 제청권을 행사한 만큼 야당들이 29일로 예정된 총리 임명동의안 표결에서 '한승수 책임론'을 들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8일 새 정부의 각료 명단을 발표할 때만 해도 이 정도의 후폭풍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야당과의 정부조직법 협상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일부 인사들의 검증이 철저히 이뤄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투기의혹이 있는 재산이나 자녀의 이중국적, 논문 표절 등 새 정부의 고위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요건도 갖추지 못한 인사들의 기용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바였다.

 

국회 인사청문요청안을 통해 장관 후보자 15명의 재산 내역이 21일 공개되며 민심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본인 소유의 단독주택 등 8억원 가량의 재산을 신고한 이상희 국방장관 후보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후보자들이 전국 각지에 여러 채의 집과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내각'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 내각'에 쏟아졌던 비난, 당사자들은 적반하장식 대응

 

이중에서 통일부와 여성부, 환경부 장관 후보자에 각각 임명된 남주홍·이춘호·박은경씨에 대해 비난이 집중됐다.

 

32억원의 재산을 신고한 남주홍씨는 부인과 자녀들이 미국에 거주하며 영주권을 취득한 사실이 도드라져보였고, 46억원의 이춘호씨는 본인과 장남의 명의로 전국 각지에 아파트와 토지 등 40건의 부동산을 보유한 사실이 국민감정을 자극했다. 역시 49억원을 신고한 박은경씨는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영농계획서를 허위 제출해 절대농지를 구입한 사실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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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 여론에 밀려 낙마한 이명박 정부 장관 후보자들. 왼쪽부터 이춘호 여성·박은경 환경·남주홍 통일장관 후보자.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비난 여론에 밀려 낙마한 이명박 정부 장관 후보자들. 왼쪽부터 이춘호 여성·박은경 환경·남주홍 통일장관 후보자.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사태를 확산시킨 것은 장관 후보자들의 '적반하장'식 대응이었다.

 

140억원의 재산을 신고한 유인촌 문화부장관 후보자는 23일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배용준을 봐라. 내가 배우 생활 35년을 했는데, 그 정도 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고, 결국 낙마한 후보자들의 반응도 유 후보자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 (박은경 환경장관 후보자)

 

"서초동 오피스텔은 내가 유방암 검사에서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고 기념으로 사준 것이다." (이춘호 여성장관 후보자)

 

이중에서 이춘호 후보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 전날 장관직을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혀 '낙마 1호'로 기록됐다. 그나마 '총선 민심'을 온몸으로 부딪혀 나아가야 했던 한나라당에서 먼저 적신호를 보냈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은 더 이상 "추가 사퇴자가 있어서는 안된다"며 배수진을 쳤다. 25일 새 정부가 출범하면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식이 열린 날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의 임명을 강행한 것도 끓어오르는 바닥 민심을 가볍게 본 처사였다. 박 수석은 복수의 논문을 표절한 혐의로 인해 도덕성 논란에 휘말렸지만, 교수시절의 논문 표절 건으로 사퇴한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의 예를 따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교육부총리를 매섭게 몰아세웠던 한나라당은 표절 혐의자의 청와대 입성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김병준 낙마시켰던 한나라당, 박미석 수석 표절엔 '꿀 먹은 벙어리'

 

그러나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의혹들이 새롭게 터져 나왔다.

 

26일 남주홍 후보자는 교육비 이중공제와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 논문건수 허위신고 등으로 인해 곤경에 처했고, 박은경 후보자에 대해서는 또 다른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됐다. 박 후보자가 보유한 절대농지도 최초 해명과 달리 땅값 상승을 노린 투기였다는 게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모처럼 '호재'를 잡은 통합민주당은 두 사람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인사청문회를 보이콧했지만, 한나라당의 '새 정부 발목잡기' 비판은 그다지 힘을 얻지 못했다. "10년 만에 여당이 됐다"고 좋아하던 한나라당 의원들의 얼굴도 어느 새 울상이 되어버렸다.

 

26일 국회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에 대한 통합민주당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 본회의가 지연된 가운데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26일 국회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에 대한 통합민주당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 본회의가 지연된 가운데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민심이 아주 험악하다"(원희룡), "권력이 오만하다고 느끼면 국민은 바로 등을 돌린다"(정두언), "국민이 도저히 못 받아들일 인사"(김용갑), "야당이었을 때의 청문회 기준과 원칙이 여당이 됐다고 바뀔 수 없다"(정병국)는 등 청와대의 '궤도 수정'을 요구하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26일부터 계파와 노소를 막론하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특히 27일 외교통상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남주홍 통일 퇴진론'을 놓고 김용갑 의원과 정몽준·김광원 의원이 정면충돌하는 등 일부 장관들의 거취 문제가 당내 불협화음으로 번질 조짐까지 빚었다.

 

원내 1당인 민주당이 26일 이명박 내각의 도덕성 문제를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처리와 연계하려고 하자 한나라당의 입장은 한층 다급해졌다. 만약 야당들의 공조로 총리 임명동의안이 부결될 경우 새 총리를 앉히기 위해 3월 한 달을 보내야 하는 등 한나라당이 입어야 할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총선을 염두에 두고 비열한 전략을 쓰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국민 여론은 한나라당의 편이 아니었다. <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26일 7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조사에서는 "의혹이 높은 장관 후보자를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65.3%에 달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7%p)

 

강재섭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는 2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찾아가 남주홍·박은경 후보자의 퇴진을 공식 건의했다. 전날부터 두 후보자 이외에 이영희 노동·원세훈 행자·김성이 복지장관 등 이명박 내각 전체로 국민적 의혹의 불길이 확산된 것도 이 대통령의 결단을 촉진시켰다.

 

'이명박식 아마추어' 국정운영, 장관 후보자 3명 줄사퇴 진기록

 

두 사람의 퇴진으로 이춘호 여성부장관 후보자를 포함해 이명박정부의 장관 후보자 3명이 임명 전에 불명예 퇴진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집권 초기에 임용된 장관 후보자들이 3명씩이나 각종 추문에 휘말려 퇴진한 것은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출범 이후 15년만의 일이다. 당시 박희태 전 법무장관은 이중국적을 가진 딸의 대학 특례입학, 허재영 전 건교부장관은 재산형성 과정 의혹, 박양실 전 보사부 장관은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인해 장관 취임 11일 만에 물러나야 했다.

 

장관 후보자들의 줄사퇴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도 '아마추어 국정운영'의 책임론에 휘말리는 등 임기 시작과 함께 적잖은 상처를 입게 됐다.

 

그러나 민주당이 김성이 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박미석 수석 등 일부 인사들의 거취를 문제삼고, 이번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번 파문이 쉽사리 가라앉을 지는 미지수다. 대선 기간 내내 "이명박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고 외쳤던 이 대통령은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할 첫 번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2008.02.27 16:00 ⓒ 2008 OhmyNews
#남주홍 #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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