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사퇴 파동'이 제도 탓? 정신 못차린 청와대

"국민께 송구, 시스템이 문제"... 한나라당도 '물타기' 가세

등록 2008.02.28 17:56수정 2008.03.01 10:57
0
원고료로 응원
a

청와대 전경 ⓒ 오마이뉴스 남소연

청와대 전경 ⓒ 오마이뉴스 남소연

장관 후보자 3명의 낙마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가 '제도의 미비'를 들어 책임을 전가하는 등 오히려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장관 인선 파동의 정확한 원인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현 상황을 모면하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미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총선을 한달 앞두고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4.9총선에서 악재가 될 것에 대한 위기감의 발로다. 일부 의원은 공개적으로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고진화 의원은 28일 K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파동으로 대통령의 지지율과 당의 신뢰도가 떨어졌다"며 "시스템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책임자를 찾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문책론을 제기했다.

 

이번 인사 파동이 특정 측근의 문제인지, 시스템의 문제인지, 또는 이명박 대통령의 '코드 인사'나 인식의 문제인지를 점검해서 원인을 진단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의 신뢰가 온다는 것이다.

 

청와대 "시스템 문제... 10년만에 정권이 바뀌다보니"

 

그러나 청와대와 당 지도부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3명의 후보자가 사퇴하는 선에서 파문이 수습되길 기대하는 눈치다. 특히 청와대는 인사 시스템의 미비를 문제점으로 제기하며 '물타기'에 나섰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첫 시작부터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결과적으로 걱정을 끼치게 되서 송구스럽다"면서도 "생각보다 인재 풀이 제한적이고, 인사검증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처럼 현실적인 제약과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달라"고 말했다. 이번 인사 파문과 관련 "청와대 내부적으로 책임을 묻는 조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제도적으로 인사검증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참여정부에서 주로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보유하고 있던 2만5천여명 분량의 인사파일이 정부기록보관소로 이관됐다"면서 "이를 보기 위해서는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국회의원 본인이 포함이 돼 있어서 동의를 잘 안 해주려고 한다. 그런 것도 문제였으니, 이해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와 관련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민정팀이 지난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인사팀에 '검증을 도와주겠다'고 제의했지만, 당시 이 당선자측 인사팀은 '자료만 넘겨달라'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무리다. 어쨌건 사람이 노출되고 인사 내용이 샅샅이 (노무현 정부로) 전해지는데 그렇게 하기가 쉽겠느냐"며 거듭 이해를 구했다. 그는 이어 "물론 신뢰가 구축됐다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10년만에 정권이 바뀌는 것 아니냐"며 "제한된 자료로 수작업을 하다 보니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것도 있지 않았느냐. 이건 변명이지만..."이라고 설명했다. 부실 검증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탓이 10년만의 정권교체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의 경우 FBI(연방수사국)가 대통령 당선자의 인사 검증을 철저하게 대행해 주는데 한국은 그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제도를 탓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조각을 하는 데 있어서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기구나 제도가 정비돼 있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는 기관에 협조를 구할 수 없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검증 '구멍'... 좁은 인재풀-실용주의도 문제

 

그러나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해명은 자진사퇴한 장관 3명의 결격사유가 복잡한 사안들이 아니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료만 봐도 검증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두 달여의 인수위 기간 동안 가장 기초적인 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에게 제기된 논문 표절 의혹의 경우 몇 가지 행정 자료만 떼어봐도 확인이 가능하다. 지난 24일 사퇴한 이춘호 여성장관 후보자가 40여건의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도 국세청 자료만 확인해보면 문제점이 드러난다. 박은경 후보가 사들인 김포의 절대농지 역시 토지대장만 떼어보면 되는 문제였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 장관 인사 파동의 원인이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좁은 인재 풀, 실용주의 등 이명박 대통령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한계가 노정됐다고 주장했다.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과 시야가 너무 좁다"며 "인재는 너무나 많은데, 생각이 좁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만 보이고 넓게 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사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이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김광웅 교수는 "앞으로도 정부를 그렇게 운영하면 어떻게 될 지 걱정"이라며 "잘못 뽑은 인사는 사퇴를 했지만, 새로 뽑는 사람이 또 어디 가겠는가. 결국 그 인재풀 안에서 뽑히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청와대가 인재검증 시스템을 언급한 것에 대해 "그것은 핑계"라고 일축하고, 이 대통령이 "6개월, 1년마다 장관을 평가를 하겠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인사를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비판했다.

 

그는 "장관이 6개월, 1년안에 업적을 낼 수가 없는데,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겠다는 것이냐"며 "이 대통령은 훌륭한 사람을 찾아가 제발 함께 일해달라고 빌어서 데려와야지, 내가 뽑았으니 평가하겠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주의 노선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능력만 있으면 되지, 후보자 개인의 도덕성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도덕불감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측은 '강부자(강남.부동산.자산가)' 내각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재산이 많다고 자격이 없다고 하면 흑백논리"(이동관 대변인)라고 일축했다. '국민정서법'도 간과한 채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한 잣대를 대폭 완화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능력만 앞세우면서 스스로 낮춰 잡은 도덕성의 기준이 결국 이번 인사 파동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 셈이다.

2008.02.28 17:56 ⓒ 2008 OhmyNews
#이명박 대통령 #장관 인사 파동 #김광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AD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대통령, 또 틀렸다... 제발 공부 좀
  2. 2 임성근 거짓말 드러나나, 사고 당일 녹음파일 나왔다
  3. 3 "물 닿으면 피부 발진, 고름... 세종보 선착장 문 닫았다"
  4. 4 채상병 재투표도 부결...해병예비역 "여당 너네가 보수냐"
  5. 5 '최저 횡보' 윤 대통령 지지율, 지지층에서 벌어진 이상 징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