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가로막는 기자... 기가 막힌다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중앙일보> 기자들의 홍석현 회장 과잉수행

등록 2008.03.05 16:43수정 2008.03.0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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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 배임 사건의 피고발인 신분으로 삼성특검에 소환된 4일 오후 <중앙일보>의 인터넷 매체인 조인스 영상취재팀 기자(자주색 옷 입은 이)가 삼성 하이비트 노동자들의 피케팅을 방해한 뒤 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 남소연


또 다시 도마에 오른 <중앙일보> 기자들의 '과잉 수행'

4일 조준웅 삼성 특검팀에 소환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 대한 <중앙일보> 기자들과 사원들의 '과잉수행'이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홍 회장이 특검에 출두할 때는 <중앙일보> 조인스 영상취재팀 기자가 손팻말을 들어 올리려던 해고노동자를 구석으로 몰아붙였다고 한다. <중앙일보> 측은 "시위대의 손목과 손팻말을 잡은 것은 특검 사무실의 방호원이며, 동영상팀 기자가 이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있었지만 '애매한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애매한 해명이다.

이날 밤 홍 회장이 조사를 마치고 나갈 때도 <중앙일보> 기자 4~5명이 홍 회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가로막아 다른 취재진들과 몸싸움까지 벌어졌다는 소식이다. 기자가 기자들의 취재를 가로막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1999년 보광그룹 탈세 사건으로 홍 회장이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두할 때 <중앙일보> 기자 40여 명이 "사장님, 힘내세요!"라는 구호를 외쳐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기자와 언론의 신뢰 떨어뜨리는 '자해 행위'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일까. 비단 <중앙일보> 기자들만이 아니라, 명색이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심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행동은 국민과 독자, 시청자들에게 단지 <중앙일보> 기자들만의 행동으로 비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 인식에 큰 손상을 입히고, 기자와 언론의 신뢰를 크게 실추시키는 자해 행위와도 같다.


새삼 한국 언론의 처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에는 조민제 <국민일보> 사장이 자사가 특종 보도한 박미숙 청와대 사회정책 수석의 논문 표절 의혹 후속 기사를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고 기사를 게재하지 못하게 해 논란이 됐다.

<국민일보> 기자들의 거센 항의로 이 기사는 우여곡절 끝에 실렸지만 이 역시 상당수 한국 언론이 사주의 부당한 간섭에 지극히 취약할 수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준 사건이다.

한국기자협회와 <국민일보> 노조는 조 사장의 사과와 함께 편집인과 편집국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사주의 부당한 기사 삭제 요청이 사건의 발단이 됐지만, 그것을 막아내지 못한 편집책임자들의 무소신과 무책임이 더 크다고 본 것이다. 이는 편집권의 최후 보루는 바로 기자들 자신일 수밖에 없음을 선언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사주의 간섭, 대기업의 광고 압박... 악화하는 한국의 언론 환경 

비단 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언론 환경은 더 악화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삼성 비자금 보도에 적극적이었던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광고를 주지 않는 노골적인 '광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하고, 반론문까지 게재한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대해 10억 원을 손해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정정보도문을 한 달 동안 게재하라는 상식 밖의 요구를 하기도 했다.

이럴 때일수록 언론의 품위와 공정성, 독립성의 최후 보루는 기자들일 수밖에 없다. 권력과 자본의 외압, 사주 등 내부의 부당한 검열과 편집권의 왜곡을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은 불행이도 기자들 자신일 수밖에 없다.

기자 공동체의 복원과 공동의 대응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선의의 경쟁은 할지라도, 또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기자로서 서로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힘을 북돋우면서 기자의 품위와 신뢰 회복을 위해 함께 할 때이다.

그래서다. <중앙일보> 기자들의 일탈 행위가 더욱 안쓰럽고 안타까운 것은. 기자가 기자들의 취재를 가로막고, 기자가 기자들에게 '부끄럽다'고 소리쳐야 하는 현실은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기자들 스스로 자신의 직업적 긍지를 팽개쳐 버린다면 그 누가 기자들을 신뢰하고 평가해 줄 수 있을까.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기자로서의 자긍심과 자존의 끈까지 놓아서는 안 될 일이다.

1999년 9월 30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보광그룹 탈세사건에 대한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뒤에 선 <중앙일보> 기자들은 "사장님, 힘내세요"를 외쳤다. ⓒ 한겨레신문 제공


#중앙일보 #홍석현 #기자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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