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버지와 함께 있어 더 빛납니다

엄마의 고희를 축하하며

등록 2008.03.06 16:29수정 2008.03.0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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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려요... ...모두들 엄마의 칠순을 축하하며...박수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 ⓒ 이명화

▲ 축하드려요... ...모두들 엄마의 칠순을 축하하며...박수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 ⓒ 이명화
 

엄마의 칠순을 맞아 모처럼 부모님과 형제자매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를 온가족들이 함께 축하해 드리고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였다.

 

신년 초부터 부모님 집에 불이 나서 아래채를 다 태워버렸고 거기 있던 가구와 옷, 가전제품, 책 등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어려운 일을 겪은 터라 부모님 마음이 요즘 말이 아니다. 집 한 채 태우는 것도 모자라 이웃집까지 불이 번져 옆집까지 다 태우는 일까지 당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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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버지 두 분이 손을 잡고 케이크를 자르고 계신다. ⓒ 이명화

▲ 엄마, 아버지 두 분이 손을 잡고 케이크를 자르고 계신다. ⓒ 이명화

아버지 몸이 안 좋아서 며칠동안 부산에 와 계셨던 부모님은 병원에서 검사받고 약타고 좀 쉬다가 시골로 내려가셨는데 바로 그날 저녁에 불이 난 것이다. 불길은 아래채 모든 것을 홀라당 다 태워버리고도 모자라 이웃집까지 태웠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겨울이면 아래채가 찜질방처럼 뜨끈뜨끈해서 동네 사람들도 무시로 드나들던 곳이었다.

 

여느 때 같으면 아래채에서 주무셨을 부모님은 그날 저녁 따라 위채에서 주무셨고, 뭔가 탁, 탁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불이 났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밖으로 나갔을 땐 이미 불길이 크게 번져 있었다. 소방차를 불렀지만 시골이라 소방차는 집이 다 타버리고 난 뒤에야 도착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경찰 감식반에서 나와 이틀 동안 감식을 했고 부모님은 이웃집에 돈으로 보상을 해주어야 했다.

 

신년 초부터 일어난 일이라 마음이 착잡했지만 엄마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 이번 해엔 좋은 일이 많으려나 봐요, 이번 일이 전화위복이 될 겁니다"하고 위로하자 "암, 그렇게 생각해야지, 그렇고 말고"하고 말씀하셨다.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엄마의 칠순은 조촐하게 지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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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칠순을 축하드려요... ⓒ 이명화

▲ 엄마~ 칠순을 축하드려요... ⓒ 이명화
 

서울, 부산, 울산, 양산 등에 흩어져 있는 형제자매 가족들이 부산 해운대 동생 집에서 주일 저녁에 모였다. 대부분 목회를 하고 있어서 주일 예배를 다 마치고 나서야 오후 늦게 부산으로 향했다. 부모님과 동생 내외들과 아직 장가가지 않은 막내 남동생, 그리고 조카들까지 다 모였다. 서울에 있고 역시 목회를 하고 있어 주일이라 참석치 못한 언니 내외와 저 멀리 인도네시아에 있는 여동생 내외 등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곤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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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인 자리에... 동영상, 사진찍기에 몰두해 있는...ㅋㅋ ⓒ 이명화

▲ 함께 모인 자리에... 동영상, 사진찍기에 몰두해 있는...ㅋㅋ ⓒ 이명화
남자들이 거실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동안 여자들은 부엌에서 식사준비를 하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떠 있다. 시골에서도 그랬다. 명절이다 뭐다 해서 모처럼 시골 부모님 집에 흩어져 있던 칠남매(가끔 한꺼번에 모이지 못할 때도 있지만) 가족이 모이면 온 동네가 환하다고 길을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하곤 했다. 화기애애함 속에서 시간이 흘러갔다.

 

식탁 앞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과일을 먹고 또 준비해 온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축하곡을 불렀다. 엄마의 칠순을 축하하는 모임에 카메라와 비디오를 찍느라 바쁜 나와 남동생, 그리고 넷째 동생 남편, 이렇게 사진 찍는 사람이 많으니 바로 밑에 재부는 ‘기자가 너무 많다’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조카들은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뛰어다니느라 이마엔 땀이송글송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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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 이명화

▲ 엄마~~~ ... ⓒ 이명화

부모님께서 함께 살아오신 날들… 지금까지 함께 계셔 주어서 감사하다. 더 오래 오래 함께 하며 더 좋은 날들이 있기를 소원하는 마음이다. 23살(?)에 아버지를 만나 일생을 아버지와 함께 살아오신 엄마!(어머니보다 나는 엄마라는 말이 더 친근해서 이렇게 부른다. 아직도) 그리고 결코 적지도 않은 칠남매를 키우셨다. 오직 신앙으로 모진 풍랑의 세월을 인내하며 살아오신 부모님, 그 세월을 소설로 쓰자면 얼마나 길까. 몇 권의 책을 써야하지 않을까.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시인 기형도의 이 시를 읽으면 아주 어린 시절, 엄마를 기다렸던 시간들이 문득 생각난다. 어둠이 찾아드는 저녁, 엄마를 기다리다 동구 밖까지 걸어 나갔던 기억, 아주 작은 섬에 잠시 살았을 때, 배 타고 도시에 나간 부모님을 기다리다, 비 오고 바람 불던 날 미끄러운 오솔길을 따라 멀리까지 나가 기다렸던 날들…. 돌아오신 부모님이 밀가루 한푸대와 먹거리 등을 사 오셨던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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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시간... ... ⓒ 이명화

▲ 함께 하는 시간... ... ⓒ 이명화

가끔 노년에 홀로 된 분들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쓸쓸해 보인다. 일생동안 함께 해 온 짝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아 추억을 먹고 사는 노인들, 아버지와 함께 있어 엄마의 모습은 더 빛난다. 동생 내외가 부모님을 모시고 경주 나들이를 간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 온 것이 있어 봤는데 엄마, 혹은 아버지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영상에 담겨 있는 것이 있었다.

 

혼자 서 있는 모습은 참 쓸쓸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어서 아버지가 서 있는 자리에 엄마가 그 옆에 가 서니까 두 분의 모습이 환했다. 홀로 있는 모습은 늙고 쓸쓸하고 힘이 없어 보이지만 두 사람이 함께 서니까 일시에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보았다. 그렇구나, 함께 함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두 분이 지금까지 함께 계셔 주어서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젊을 때야 서로에게 부족한 점과 잘 못하는 점들 때문에 많이들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나이 늙어서는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감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이다. 엄마의 칠순을 맞아 오랜만에 다시 모인 가족들이 부모님의 눈길 아래서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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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2008.03.06 16:29 ⓒ 2008 OhmyNews
#엄마 #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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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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