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 못 받았는데, 나도 하지 말아 버려!?'

사람 사이를 어색하게도 만드는 부조금

등록 2008.03.27 19:44수정 2008.03.2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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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한 살, 두 살씩 더 먹을수록, 사회생활 연차가 늘어날수록 같이 늘어나는 일 중에 하나가 각종 경조사인 듯합니다. 특히 4월, 5월 결혼시즌을 앞둔 요즘은 거의 일주일에 한 건씩 결혼소식이 들려옵니다.

 

며칠 전에도 대학 후배가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결혼소식을 알려 왔습니다. 그런데 이 후배는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제 결혼식 때 오지 않았고, 축의금도 보내지 않았던 후배입니다. 저는 당연히 와 줄 것으로 생각했던 후배가 제 결혼식을 그냥 지나쳐 버린 것에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럼 감정이 남아 있다 보니 그 후배의 결혼소식을 듣는 순간 '요녀석 봐라, 내 결혼식 때는 안 오더니…'하는 약간은 괘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잠시 잠깐이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내 결혼식 때 안 왔으니, 나도 확 가지 말아버려?!'

'그냥 축하한다는 말만 하고, 축의금은 보내지 말아 버려?'

'나만 손 해 볼 수는 없잖아….'

'아니야, 만약 내가 결혼식도 안 가고, 축의금도 안보내면, 꼭 내 결혼식에 안 와서 그러는 것처럼 생각할텐데….'

 

실상, 축의금 본전 생각에 후배 결혼식에 가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품었으면서도 그것이 또 옹졸하게 보이고 싶지는 않은 얄팍한 마음이 잠시나마 들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런 마음을 접어두고 후배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결혼식에도 참석하겠다고 말해 주었습니다만 마음 한 편이 개운치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 결혼식에 불참한 후배의 결혼식, 가야 하나?'

 

하지만 며칠이 흐른 지금에 와서 곰곰 생각해 보니 그렇게 결혼소식을 전해 온 후배가 한편으로 고맙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후배가 미안함 마음에 저에게 계속 연락을 안했더라면 저의 인연 하나가 정리되어 버릴 수도 있었는데 후배가 연락을 함으로써 인연의 끈을 계속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배도 본인의 결혼소식을 저에게 전하기가 무척 어색하고 어려웠을 것입니다. 저 역시 후배와 비슷한 입장에 놓인 적이 있어서 그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2년 전, 대학 다닐 때 나름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부음을 받고도 문상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 부의금이라도 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저의 무심함으로 인해 친구의 슬픔을 함께 나누지 못한 것이지요.

 

늘 마음 한 구석에는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미안하다보니 선뜻 제가 먼저 연락을 해보기도 참 어려웠습니다. 주저주저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지금에 이르다 보니 이제는 연락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꼭 돈 몇 만원(부의금)에 인연 하나를 팔아먹어 버린 것 같은 심정입니다. '그때 조금만 신경을 써서 부의금이라도 보냈다면 각박한 삶 속에서 간간히 목소리 들으며 반가워하는 사이로 남아 있을텐데…'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진하게 남습니다.

 

사실, 경조사를 챙기는 가장 핵심적인 일은 바로 '부조금'을 전하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보면 부조금을 전하는 것이 돈 몇 만원 전하는 일일 뿐이지만 부조금을 전해야 할 때 하지 않게 되면 그 후 그 사람과의 관계가 참 어색해지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부조금이 금전적 손익의 관점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맞게 되는 몇 번 안 되는 큰일을 함께 해준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좀 더 큰 의미로 인식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제가 결혼을 통해 축의금을 받아보면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미처 결혼소식을 전하지 못한 옛 친구들이 어떻게 알고 결혼식에 와 주었을 때, 또 인편으로 축의금을 보내왔을 때 그 고마움과 반가움이 더 컸습니다. 반면에 꼭 와주길 바랐던 친구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결혼식에 오지 않거나, 축의금도 보내지 않았을 때 그 섭섭함 역시 더 컸습니다.

 

부조금, 금전적 가치가 우선일까 인간적 관계가 우선일까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조사를 챙기지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럴 때면 경조사 후에 연락하기가 참 어려워집니다. 부조를 하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미안해서 연락을 못하게 되고, 부조를 받는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섭섭함에 연락을 않다가,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부조 안한 것을 탓하는 것처럼 상대가 느낄까봐 연락을 안 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서로 사는 것이 바빠지다 보면 소중했던 인연들이 본의 아니게 정리되기도 합니다.

 

가만히 지금까지 부조금을 전해왔던 저의 마음을 돌이켜 봅니다. 진심어린 축하와 애도의 뜻을 담아 부조금을 전하기도 했지만 일종의 의무감이나 마치 보험금 납부하듯 부조를 하기도 했습니다. 혹 경조사가 한꺼번에 몰려 부조금이 과도하게 지출될 때는 축하나, 애도의 마음보다는 부담감이 먼저 찾아오곤 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저 사람이 얼마나 슬플까, 기쁠까'보다는 '저 사람에겐 3만원을 해야 하나?, 5만원을 해야 하나?'를 먼저 고민한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인들의 경조사가 있을 때, 마음을 전하는 형식이 '부조금'을 보내는 것 일진데 저는 너무 형식에 얽매여 정작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도, 보지도 못한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 봅니다.

 

또 그동안 부조로 인해 소원해진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해볼까 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물론 어색하고, 미안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끊어졌던 인연의 끈을 다시 이을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와 후배가 다시 이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2008.03.27 19:44 ⓒ 2008 OhmyNews
#결혼 #부조 #부조금 #축의금 #부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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