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에게 요부, 악녀라는 평가는 정당한가?

[서평] 팜므 파탈 - 치명적인 유혹, 매혹당한 영혼들

등록 2008.03.31 10:28수정 2008.03.3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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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 파탈> '치명적 유혹, 매혹당한 영혼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 다빈치

▲ <팜므 파탈> '치명적 유혹, 매혹당한 영혼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 다빈치

흔히 여자들은 '서양 남자들은 레이디퍼스트가 몸에 배어 있는데, 한국의 남자들은 여성에게 무례하다'고들 말한다. 하기야 차를 탈 때도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어주고, 테이블에 앉을 때도 의자를 밀어 넣어주는 모습을 영화에서 자주 봤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재난 영화를 봐도 마찬가지로 항상 노약자와 여성을 먼저 구조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물론 타이타닉호의 스미스 선장처럼 노약자와 여성을 먼저 구명보트에 태워야 한다는 데 정신이 팔려 애꿎은 남자들 476명을 물속에 수장시켜버린 어처구니없는 바보도 있었지만 말이다. 레이디퍼스트를 실천하고 남는 자리에는 남자들을 더 태워도 된다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렸기 때문이란다. 이렇듯 확고한 레이디퍼스트의 전통은 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서양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여성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남성만이 인간이고 남성의 결여태가 바로 여성인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은 남성의 갈비뼈일 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얘기다. 팜므 파탈이라는 정의도 역시 이런 남성 중심적 사고에서나 가능한 것 아닐까? 남자에게 잔혹하고, 배신하고, 질투하는 여성만을 주목할 뿐, 그와 반대로 뭇 여자를 강제로 범하고, 때리고, 죽인 더 나쁜 남자들이 많았을 텐데도 아무도 그들을 묶을 수 있는 개념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남자들의 초상화나 누드화를 그리지도 않았다. 다 남성 중심의 시각, 남성 중심의 사회 때문이 아니겠는가. 당장 나부터도 <세례요한의 목을 받아든 살로메>라는 그림에서 세례요한의 잘려진 머리보다는 살로메의 아름다움에 눈길이 먼저 가지 않느냐 말이다.

 

유디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귀족 출신의 여인이었던 그녀는 적장에게 몸을 내준 후 그의 목을 베어버린 영웅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논개쯤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영웅적인 행동보다는 섹스로 남자를 유혹해 살해했다는 부분에만 집중한다. 아내 메데이라를 배신하고 버린 이아손은 여전히 영웅 대접을 받고, 남편의 배신에 분노해 연적을 죽인 메데이라는 팜므 파탈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다윗은 유부녀 밧세바를 유혹하고 그 남편까지 사지에 밀어 넣어 죽여 버렸지만 신들은 그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라는 솔로몬을 아들로 주었다. 다윗의 이 비열한 악행은 슬쩍 눈감아 주고 남성을 유혹한 밧세바의 부정한 행실만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모두가 다 남성 중심의 사고 때문인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사랑의 속성 안에 질투와 독점욕, 증오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일이지 반드시 여성에게만 그 책임을 묻고 요부, 악녀, 마녀 따위의 잣대를 들이댈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오히려 이런 남성적 사고의 편견에 동조하여 유혹당한 남자에게는 죄가 없고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여성에게만 죄가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 같아 의아스럽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그 극한의 미에 매혹되어 법과 도덕을 망각하고 결국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 역시 남성의 생태적 천성일 뿐 죄가 아니며, 굳이 죄를 따지자면 유혹하기 위해 아름다운 여성에게 죄가 있다는 식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은 <여성 상품화의 유래>나 <인물로 본 서양 여성사>가 아니다. 이 책은 미술책이다. 부제를 생각해 보자면 굳이 악녀, 요부를 떠올릴 필요도 없이 그냥 '서양 명화 속의 아름다운 여성' 정도가 어울리는 책이다.

 

그림들은 모두 유명하고 아름답고 힘이 있어서 굳이 텍스트가 없더라도 테마를 유추해낼 수 있을 정도다. 저자의 논조나 카테고라이징에 일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좋은 테마 아래 좋은 그림들을 많이 모아놓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팜므 파탈, 2003년, 다빈치출판사, 268쪽, 12,000원

2008.03.31 10:28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팜므 파탈, 2003년, 다빈치출판사, 268쪽, 12,000원

팜므 파탈 - 치명적 여인들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

이명옥 지음,
시공아트, 2008


#팜므 파탈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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