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서 글쓰기를 배운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를 읽고

등록 2008.04.02 18:11수정 2008.04.0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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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 예담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 예담

글을 쓰는 일은 아이를 낳는 고통이다. 생각나는 대로, 어영부영 쓰는 글들이 많은 시대다. 글을 쓰는 일을 가벼이 여기는 풍토가 많은 시대다. 아이를 낳는 것이 순간만의 고통은 아니다. 열 달을 자기 뱃속에서 자라게 해야 한다. 결국 한 순간이 아니라 열 달이 넘는 고통이다.

 

글을 쓴다는 일은 그렇기에 아이를 배고, 자라게 하고 낳는 일이니 얼마나 인고이겠는가? 글쓰기 책이 숱하게 나왔지만 다분이 기술만 가르친다. 기술만 가르치는 글쓰기 책이니, 읽어도 결국 좋은 글을 쓸 수 없게 만든다. 읽지 않음만 못하다.

 

연암 박지원은 탁월한 글쓰기 이론가다.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읽어가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문장가인지, 글쟁이인지 알 수 있다. 조선 르네상스라 불리워지는 정조시대에 살았지만 정조와 그리 잘 지내지 못했다. 연암은 문체반정(文體反正)의 당사자이다.

 

그가 남긴 문체 특징을 호를 따 '연암체'라 하였다. 연암체는 소설식 문체와 해학적인 표현으로 정통 고문에 구애되지 않았는데 이를 패사소품체라 부른다. 소설식 표현방법을 과감히 도입해 썼다. 그리하여 연암 글은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중요한 것은 소설식 표현 방법을 시도했지만 논리와 비판적 글쓰기 모범을 보였다.

 

연암의 이런 특성을 살려 인문과 실용을 결합한 새로운 소설형태인 '인문실용소설'인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글쓰기 책이 소설이라니, 얼마나 흥미를 돋우겠는가?

 

연암의 아들 종채에게 근심거리가 생겼다. 아버지 글이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표절 의혹을 받는 글들은 연암이 '연암협' 거했던 시기에 썼던 책들이다. 아버지가 연암협에 살던 시기에 친분이 있었던 김지문을 통하여 소문의 진상을 밝혀간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는 당시 글쓰기 대가였고, 당대 세도가인 김조순, 유한준, 박제가 등의 인물들에 대한 사실적인 기술을 통하여 글쓰기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정밀하게 독서하라' 글쓰기는 글을 읽는 데서 시작한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책에 완전히 자신을 녹이는 일이다. 많이 읽고 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하나을 알더라도 제대로 음미하고 자세히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네(67쪽)

 

쉽게 읽고, 쉽게 넘어가는, 많이 읽는 것이 좋다는 생각보다는 글자 하나 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읽고, 깊이 생각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있다. 삶에서도 빠름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읽는 것도 빠름에 빠져 있다. 지문은 연암에게 말한다. "느리게 읽는 것이 이렇게 좋은 줄을 처음 알았습니다."

 

"다섯 자 글귀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일생의 정력을 기울여야 한다."(106쪽)

 

다섯 자 글귀를 완성하기 위해서 일생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글쓰기는 재주가 아니라는 말이다. 관찰하라는 말이다.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을 보는 눈과, 귀를 가져야 한다. 글씀이 곧 이와 같다. 한 사물을 보면서 그 사물에 대한 관찰과 통찰 없이는 글쓰기를 할 수 없다. 관찰과 통찰 없이 글쓰기 기술만 배워가지고 책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알게 한다.

 

원칙을 따르되 적절하게 변통하여 뜻을 전달하라.

 

원칙을 지키면서, 옛 것을 따르면서 상황에 따라 적용을 달리할 수 있다. 글을 읽을 때에 축자(逐字)에 매이지 말라는 말이다. 옛 성현이 남긴 글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글을 읽는 자신이 자신의 삶에서 변통하고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라는 말이다. 성현이라 할지라도 남이며, 자기가 아니다. 옛날이며 자신이 사는 시대가 아니다.

 

관점과 관점 사이를 꿰뚫는 '사이'의 통합적 관점을 만들라.

 

사물의 다양성이다. 관점은 차이가 있으며, 그 관점을 서로가 인정하고 다른 관점이라 할지라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각각의 측면은 존재 이유가 있다. 이 측면을 꿰뚫은 관점이 필요하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 생각해보라고 한다. 연암이 왜 질문을 던졌을까?

 

"어린아이들이 나비 잡는 모습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간파해낼 수 있다. 앞다리를 반쯤 꿇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발꿈치를 들고서 두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 다가가는데,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나비는 그만 날아가 버린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기에 어이없이 웃다가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성을 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이다"

 

글을 쓸 때 온 힘을 다하지 않고, 다른 것에, 다른 이에게 기대면 글은 생명을 잃고 가치를 잃는다. 한 자 한 자에 온 힘을 기울이고, 그 글자에 자기 혼을 담아야 한다. 그래야 글이며, 책이다. 그렇게 쓴 글은 자식이 읽는다. 헛된 글을 자식에게 읽힐 수 있겠는가? 자식에게 글을 읽게 하려면 글다운 글이 있어야 한다. 그런 글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신이 쓴 글을 믿고, 그 글을 아이들에게 읽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부모의 바람은 자식이 글을 읽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글 읽으라는 말을 듣지 않고도 글을 읽으면, 부모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자가 없다. 아아! 그런데 나는 어찌 그리 읽기를 싫어했던고.

 

강요된 글 읽기가 아니라 스스로 읽고 느낀 글이 참된 글을 만들 수 있다. 연암이 우리에게 가르친 글쓰기는 결국 정밀, 통찰, 관점, 차이, 변통, 온 힘을 기울이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는 글다운 글을 쓸 수 없다. 김치 겉절이도 맛있지만 묵은지가 맛의 깊이는 더 함을 알고 있다. 삭히고 삭힌 사상을 통하여 만들어진 글은 오랫동안 전해져 우리와 후손들이 읽게 된다. 연암은 바로 이런 글쓰기를 하였음을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는 말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설흔, 박현찬 지음 - 예담 / 293쪽, 11,000원

2008.04.02 18:11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설흔, 박현찬 지음 - 예담 / 293쪽, 11,000원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박현찬, 설흔 지음,
위즈덤하우스, 2007


#연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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