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우리 밭농사 잘 될 것 같은데요"

봄날에 허리가 아프게 일하였지만 마음은 즐겁다

등록 2008.04.09 11:30수정 2008.04.0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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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을 마친 우리 밭이다. 밭을 갈고 비닐을 씌웠다. 이곳에 각종 작물을 심어 만물상을 차릴 예정이다. ⓒ 전갑남

하루 일을 마친 우리 밭이다. 밭을 갈고 비닐을 씌웠다. 이곳에 각종 작물을 심어 만물상을 차릴 예정이다. ⓒ 전갑남

새벽 6시 반, 자명종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동이 터오는지 밖은 이미 훤하다. 어느새 해가 이렇게 길어졌을까? 아내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며 커튼을 젖힌다. 창을 열어 날씨를 살핀다.

 

"와, 날이 참 좋다! 비 온 댔는데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낮 동안만 참아주지 않을까?"

"그러게요. 낮에 밭 갈아 씨 넣고, 비는 밤에 오면 딱인데!"

"지금 같아서는 쉬 내릴 것 같지는 않지?"

 

밤새 비 대신 이슬이 많이 내렸다. 창을 타고 들어오는 새벽공기가 싸하다. 신선한 공기에 흙냄새가 실려 코끝을 간질인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농사는 때가 있는 법

 

쉬는 날인데도 늦잠 많은 아내가 일찍 서두른다. 오늘은 그간 미뤄둔 텃밭을 가는 날이다. 밭을 갈아 이랑을 만들고, 거기다 검정비닐을 씌우기로 했다. 남의 손을 빌려 농기계로 하는 일지만 하루 종일 부산을 떨어야할 성싶다.

 

농사일은 시기를 잘 맞춰야한다. 밭 가는데도 적당한 때가 있다. 비온 뒤 바로 밭을 갈면 질척거려 흙이 뭉쳐져 일이 더디다. 땅이 고슬고슬할 때 밭을 갈아야 한결 수월하다.

 

이랑에 비닐까지 다 씌운 뒤에 비가 오면 얼마나 좋을까? 오후쯤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마음이 급하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장화도 찾아 신었다.

 

"당신, 쉬엄쉬엄해요."

"기계가 다하고, 나는 뒤치다꺼리나 하는데 뭐!"

"그래도 밭에서 하는 일이 어디 쉬워요?"

 

알아줘서 고맙다는 말에 아내가 웃는다. 밭갈이로 밭이 정리되면 각종 씨를 넣어야 한다. 본격적인 우리 텃밭농사가 시작되는 셈이다.

 

프로 농군이 아닌 우리는 밭일하는데 늘 반 박자 늦다. 마음만 바쁘지 허둥대기 일쑤다. 때를 놓치면 그나마 일이 뒤죽박죽이 된다. 주말에 짬을 내 하는 일이라 비라도 오면 일주일이 또 늦춰진다. 감자 심는 시기가 좀 늦다. 씨감자는 심기도 전에 싹이 많이 자랐다.

 

봄 농사에서 밭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두어 마지기가 넘는 밭을 일일이 삽으로 일궈 농사짓기는 힘들다. 그래 농기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해마다 이웃집 재환씨 신세를 진다.

 

우리 마당에도 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마당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꽃망울을 부풀리더니만 드디어 하얀 꽃잎을 드러내었다. 아침햇살에 빛나는 하얀 목련이 소담하다. 목련의 인사가 반갑기 그지없다. 며칠 있어 딸아이가 온다는데 꽃피운 목련을 보고 얼마나 좋아할까?

 

나는 밭에 나오면 마음이 편안하다. 가끔은 힘들고 꾀가 나기도 하지만 일할 때만큼은 잡념이 사라진다. 내게는 밭이 일터이자 쉼터이기도 하다.

 

오늘 같은 봄날, 가꿀 텃밭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씨를 뿌리고, 싹트는 것을 기다리고, 또 정성을 다해 가꾸고, 그리고 결실의 기쁨을 맛본다는 것! 시골에 살며 느끼는 행복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밭갈이도 예전에 비하면 쉬운 일인데….

 

밭갈이를 해줄 재환씨가 도착하였다. 재환씨는 직장생활을 하며 틈틈이 농사일을 한다. 우리 동네에 얼마 남지 않은 젊은 농군이다. 해마다 우리 밭을 갈아주고, 이런저런 농사 조언도 해주는 고마운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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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쟁기질에 비하면 트랙터로 밭을 갈면 순식간에 일이 끝난다. ⓒ 전갑남

예전 쟁기질에 비하면 트랙터로 밭을 갈면 순식간에 일이 끝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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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을 파고 비닐을 씌우는 일도 관리기로 한다. 세상이 참 편해졌다. ⓒ 전갑남

골을 파고 비닐을 씌우는 일도 관리기로 한다. 세상이 참 편해졌다. ⓒ 전갑남

재환씨가 트랙터로 딱딱한 흙을 잘게 부셔놓는다.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에 새로 올라온 잡풀이 여지없이 쓰러진다. 미리 펴놓은 두엄도 잘 섞인다. 밭이 순식간에 깨끗이 정리되었다.

 

예전 아버지께서 쟁기질하시던 광경이 떠오른다. "이랴! 이랴! 워! 워!" 때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때론 나지막한 목소리로 누렁이 황소를 달래시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목소리를 높일 때는 고삐를 바짝 당기고, 부드러울 때는 고삐를 늦춰주셨다. 누렁이는 아버지와 한 몸이 되어 거친 숨을 뿜어내며 밭을 잘도 갈았다.

 

트랙터 밭갈이가 끝났다. 소 쟁기질에 비하면 일도 아닌 듯싶다. 재환씨가 관리기를 손보며 내게 묻는다.

 

"선생님, 이제 관리기 하나 준비하시죠?"

"아직 난 기계 다룰 줄 몰라!"

"예전 소로 쟁기질할 때와 비교하면 이건 너무 쉬워요."

"재환씨가 일년에 하루만 품을 내주라구."

 

재환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랑을 만들고, 판지를 만들고, 또 기계를 바꿔 이랑에 검정비닐을 씌운다. 이랑 끝 가장자리 마무리는 내 몫이다.

 

이제 밭 갈고, 씨 뿌려 한시름 놓다

 

밭갈이가 다 끝나갈 즈음 반가운 얼굴들이 차를 몰고 들어왔다. 아내 친구가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온 것이다.

 

"선생님! 감자 심는다고 해서 애들과 함께 일하러 왔어요!"

"언제 힘든 일을 해보셨어요?"

"아뇨. 그렇지만 우리 일하면 잘해요."

"우리 집사람은 요리저리 힘들다고 꾀를 부리는데…."

 

아내 친구가 팔을 걷어붙이고 장화를 신는다. 괭이로 이랑을 고르는 폼이 제법이다. 이마에 땀을 훔치며 몸에 배인 일이 아닌데도 정말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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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을 뚫고 씨감자를 넣었다. 싹이 잘 트기를 기대한다. ⓒ 전갑남

비닐을 뚫고 씨감자를 넣었다. 싹이 잘 트기를 기대한다. ⓒ 전갑남

손님과 아내가 함께 감자를 심는다. 애들도 자기들에게 일을 시켜달라고 한다. 조그만 손으로 조심조심 비닐 구멍에 씨감자를 쏙쏙 잘도 넣는다.

 

작은 손이라도 빌리니까 일이 한결 수월하다. 나는 그동안 상추를 비롯한 각종 야채씨를 뿌렸다. 우리가 모두 일을 마치자 해가 서산에 걸렸다. 평상에 걸터앉아 밭을 둘러보니 마음이 뿌듯하다.

 

손님이 손을 씻으며 내게 말한다.

 

"고추랑 고구마 옮겨 심을 때 또 불러주세요. 우리 애들한테는 체험도 하고, 밭에서 일하니까 즐거워요. 그나저나 사모님 빨리 저녁주세요. 얘들아, 배고프지?"

 

일하고 먹는 저녁이 꿀맛이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으니 몇 시간이나 일했을까? 허리가 아프고, 온몸이 쑤신다.

 

'9시뉴스'가 끝나기 전 잠자리를 펴는 데 빗방울이 들기 시작한다. 금세 빗줄기가 굵어진다. 일기예보가 딱 들어맞는 것 같다.

 

봄비가 반가운 듯 아내가 흥겨운 말을 꺼낸다.

 

"여보, 우리 절묘하게 일 마쳤네! 당신 빗소리를 들으니 정말 행복하지? 밭 갈아서 한시름 놓고, 때맞춰 씨를 넣었으니 싹은 잘 틀게고! 올 우리 밭농사 잘 될 것 같은데요?"

2008.04.09 11:30 ⓒ 2008 OhmyNews
#텃밭농사 #밭갈이 #감자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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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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