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찍는 거여? 어디다 찍을까?"

[체험기] 총선 투표참관인을 하고나서

등록 2008.04.10 22:40수정 2008.04.1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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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찍는거여?"

"네, 두 개 찍으셔야 되요?"

"이건 어디다 찍을까?"

"할머니 좋아하시는 당 찍으시면 되요"

 

한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와 투표사무원 간의 대화이다.

 

투표함 앞에 투표사무원은 투표함을 손으로 막고 있었다. 지역구의원을 뽑는 흰색 투표용지는 흰 투표함에, 비례대표를 뽑는 연두색 투표용지는 연두색 투표용지에 담아야 했지만, 많은 주민들이 한꺼번에 접어서 넣거나 색깔을 구분하여 넣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표사무원은 "두 개 다 찍었냐"는 질문을 자주 했고, 많은 분들이 "이것도 찍어야 되냐"며 다시 투표를 하러 들어갔다.

 

4월 9일 투표참관인을 하면서 보았던 조금은 재미있었고, 조금은 씁쓸했던 풍경들이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를 모르시는 분이 꽤 많았던 것이었다. 투표용지가 두개였던 것 자체가 당황스러웠다. 이러니 정당의 후보가 누구였는지, 정책은 무엇인지, 정당이 15개나 되는지도 아셨을까?

 

이런 것을 보니 윗분들의 정치와 밑바닥의 정치가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3무선거'라고 불린 특이한 선거였으니 오죽했겠는가. '전략공천'이라는 이름 하에 갑자기 우리 지역구에 나타난 정치인들이, '친박연대'라는 정당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것이었을까 싶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사이 한 할아버지가 들이 닫히셨다.

 

"내가~ 김천에서 왔어~"

"신분증을 가지고 오셔야 돼요."

 

김천에서 오셨는데, 오시다가 신분증을 잃어버리신 것이다. 이 작은 소란은 동사무소에 들려서 임시용 신분증을 재발급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몇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달려오신 것이다.

 

초등학생들도 왔다. 투표장 견학이 학교 숙제였던 것이다. 신분확인부터 투표함에 넣는 과정까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번에 당선되신 국회의원 여러분들에게 이 이야기들을 꼭 하고 싶다.

 

여러분들을 뽑기 위해 3시간이나 걸려서 오신 분도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뽑히는 과정을 우리 어린아이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제발 책임 있는 정치 해주십시오!

 

2008.04.10 22:40 ⓒ 2008 OhmyNews
#총선 #투표참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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