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쌀 권리 보장하라, 요강 들고 등교하자!"

서울 충암학원 학생과 교사들의 간절한 하소연

등록 2008.04.14 13:28수정 2008.04.14 13:28
0
원고료로 응원
a

지난 7일 열린 ‘충암학원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충암 행동의 날’ 참가자들이 똥 쌀 권리를 주장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충암학원이 운영하는 중학교 남학생 건물은 700명이 사용하는데 화장실은 1개다. ⓒ 윤영훈


"똥 쌀 권리 보장하라. 요강 들고 등교하자."

"떨어지는 창문에 머리통이 깨진다. 헬멧 쓰고 등교하자."

서울 은평구 응암동 중심가인 응암오거리에 들어서니 특이한 구호가 쩌렁쩌렁하다. 충암고등학교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열린 '충암학원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충암 행동의 날'에 모인 충암고와 다른 학교 교사, 지역주민 등 50여명이 내는 소리다.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둔 맞은편에서는 교복을 입은 200여 명의 충암고 학생들이 지켜본다. 그러다 "교육환경 개선하라. 학생인권 보장하라. 우리가 학교의 주인이다"는 소리가 높아지자 학생들은 "와"하는 소리와 함께 집회장으로 넘어왔다. 교감과 체육교사 등 학교에서 '(학생들이) 다칠까봐' 나온 교사들의 "집에 가라"는 말도 학생들을 막지 못했다.

집회장은 순식간에 학생들로 꽉 찼다. 학생들은 "모두 사실이다. 화장실 더 지어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학교가 어딨냐"고 되물었다. 지난 7일의 풍경이다.

학생 700명에게 화장실은 단 1곳

학교법인 충암학원은 유치원 4학급과 초등학교 29학급, 중학교 36학급(남 21학급, 여 15학급), 고등학교 60학급을 운영한다. 다니는 학생 수만 4200여명이다. 특히 충암고는 '담임선택제'를 실시했다고 해서 주목을 받았던 학교다.


학교에 들어서면 5개나 되는 4~5층짜리 학교건물과 2개의 학교운동장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첫 인상은 큰 기업같다는 것. 눈에 보이는 규모로만 치면 "학교 좋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a

고등학교 1학년 건물 한 벽면은 2003년 교실을 고쳐 만든 화장실에서 나온 똥물로 시멘트가 거의 뜯어져 부식됐다. 물은 파이프관을 흐르며 ‘뚝뚝’ 떨어진다. ⓒ 최대현


그러나 학교 건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내 그 생각은 정반대로 바뀐다.

충암학원은 1969년 문을 연 이래 제대로 된 보수공사를 하지 않았던 탓에 건물마다 크게 금이 갔고 곳곳에 합판 등으로 덧대 페인트칠을 한 상태다.

700명의 고등학교 1학년이 쓰는 5층짜리 별관 한쪽 벽면에는 물이 흥건하다. 다른 건물과 연결된 파이프 관을 타고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지난 2003년에 3층에 있는 교실 1개를 고쳐 만든 화장실에서 새는 물"이라고 한 교사가 설명했다. 한마디로 '똥물'이라는 얘기다.

그 교사는 "그래도 화장실이 더 생겨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 전까지는 화장실이라고는 지하에 고작 1곳뿐이었다. 그 화장실에는 20여 개의 대소변기가 있지만 "너무 낡고 더러워서 학생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교사들의 설명이다.

낡은 건물에서 창틀 추락... 학생 30바늘 꿰매기도

그 옆, 700여 명이 쓰는 남자 중학생 4층짜리 건물에는 아직도 화장실이 1층에 있는 1곳뿐이다. 그나마도 학생들이 화장실에 가려면 '반드시' 2층에서 건물 밖으로 나와 1미터 너비의 철계단으로 내려와 이용해야 한다.

중앙 현관은 물론 건물 안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모두 막아놨기 때문이다. 이사장실과 행정실 등이 학생출입까지 막고 한 개 층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밖으로 연결되는 통로는 철계단 한 곳뿐이어서 비상상황에서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

남자 중학교 건물과 연결된 5층짜리 고등학교 2, 3학년 건물도 상황은 비슷하다. 1400여명이나 사용하는 데 대변을 볼 수 있는 화장실은 1층에 1곳뿐(대변기 12개). 소변만 볼 수 있는 간이화장실이 층 중간에 2개 있지만 학생들의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한 학생은 "쉬는 시간엔 전쟁이다, 5층에서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들은 지역주민인 조영호(59)씨는 "같은 돈 내면서 학교 다니는 데 이런 곳에서 공부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우리집에도 화장실에 3개"라고 어이없어 했다.

화장실뿐이 아니다. 건물마다 전기배선이 어지럽게 엉켜있다. 화재 등 비상시에 이용하라고 만들어진 고등학교 건물 비상계단은 시멘트로 막혀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고등학교 1학년 건물 5층에서 창문틀이 떨어져 지나던 학생이 30바늘을 꿰매야할 정도로 머리를 다치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06년에는 남자중학교와 여자중학교에서 창문이 떨어졌다. 다행히 그때는 피해자는 없었다.

그러나 학교 측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번 사고 후에 창틀이 떨어지지 않게 창살을 댄 정도다. 그것도 학생들이 다니는 쪽에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제는 고등학교 2, 3학년 건물에서 떨어질 차롄가"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

32대 학생회장을 지낸 충암고 졸업생 천성하씨는 학교 소식을 듣고 "졸업한 지 5년이 지나 많은 것이 변했을 거라 믿었지만 실제로 변한 것이 없다"고 참담해 했다.

a

학교 건물에 거미줄 같이 엮혀있는 전선. 중학교, 고등학교 건물 곳곳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 ⓒ 전교조 충암학원 분회


교육청 진단결과는 '개축하라' 였지만

그런데 이런 상황이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충암학원은 언론의 보도가 몇차례 나간 후 지난 겨울방학 동안 고등학교 2, 3학년 건물의 지하 1층 화장실을 현대식으로 고치는 등 일부 보수작업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중고등학교 건물은 지난 2005년 12월, 서울시 교육청이 용역 실시한 개축성능평가에서 "구조안정성에서 '개축'이 유지, 보수보다 더 유리하다"라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개축은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지으라는 결정이다.

고등학교 2, 3학년(본관) 건물은 균열정도가 E등급이었다. 고등학교 2, 3학년(본관) 건물은 균열정도가 E등급이었다. 1학년 건물인 별관도 콘크리트 부식되는 정도 E등급, 균열정도 D등급이었다.

그러나 이 '개축' 판정을 받은 건물에서 학생들은 여전히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교육청 학교운영지원과 담당자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예산문제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는 곤란하다"면서 "개축, 유지보수 대상 학교들에 대해 민간자본을 유치해 BTL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사립은 대상이 아니라서 아직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충암학원은 어떤 곳?
학교법인 충암학원 사건은 학교운영에 대한 문제제기와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홍아무개 교사를 학교 측이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일방전보 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불투명한 학교운영뿐만 아니라 노후화한 시설에 대한 사회적 비난여론도 확산중이다. 2800여명의 충암중학생과 고등학생이 쓰는 건물에 화장실은 4곳뿐이다. 40년이나 된 건물에 대해 서울시 교육청이 2005년 개축 판정을 내렸지만, 진행여부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교사들의 민원제기에도 시교육청은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만 말하고 있으며, 학교 측은 "개선하고 있다"고만 할 뿐이다.

이와 관련, 은평 시민넷, 은평 동화 읽는 어른 모임 등 7개 지역단체 등은 '충암학원 교육환경 개선과 민주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사회적 문제제기에 돌입했다. 지난 7일에는 학생과 지역주민, 교사 등이 모여 '충암 행동의 날' 행사를 열었으며, 지난 10일부터는 '충암학원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1인시위'를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학교 측은 학교환경 개선을 요구한 교사를 지난달 초 강제 전보해, 보복성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또 지난달 28일에는 1인 시위를 벌인 전교조 교사 6명에게 "더이상 충암고 등의 교직원으로 근무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파면 해임을 포함한 '중징계 예비 경고장'을 발송한 상태다.

충암학원은 지난 7일과 8일 '교육환경 개선에 대한 충암학원의 입장'이라는 가정통신문을 전교생에게 발송했다. 학교 측은 가정통신문에서 "층마다 화장실을 설치한 학교는 최근에 설계된 학교이며, 화장실의 숫자는 시설 기준에 맞게 설치돼 있다"고 말했다. 또 창문틀이 떨어진 것에 대해서는 "학생이 창문을 무리하게 힘을 주어 열다가 떨어진 사실이 한 번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아무개 충암고 교장은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40년 전에 지은 오래된 건물이라 어쩔 수 없다. 그 때 화장실을 건물 안에 만들 생각을 못하고 지었다"면서 "그러나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조도개선 등의 환경개선을 꾸준히 하고 있고 앞으로도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험과 불편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학생들의 학교생활은 과연 나아질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충암학원 #충암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윤 대통령, 류희림 해촉하고 영수회담 때 언론탄압 사과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