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고담대구'의 '배트맨' 될 수 있을까?

[총선 이후] 대구 소시민이 보는 유시민의 득표율 32%

등록 2008.04.12 11:57수정 2008.04.1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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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유시민 후보가 대구 지산동에서 비를 맞고 낙선사례를 하고 있다. ⓒ 유시민 홈페이지



18대 총선이 끝난 다음 날인 4월 10일 목요일, 대구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출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비를 맞으며 지나가는 사람과 버스를 탄 승객들에게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 대구 수성을에 출마했던 '유시민'이었다.

미소를 띤 그의 얼굴은 선거운동을 할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낙선자가 비까지 맞으며 인사를 하고 있으니 그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흔히 대구를 '고담대구'라고 부른다. 대구 지역주의를 비꼬는 의미로 누리꾼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고담'이란 영화 <배트맨>의 배경이 되는 도시이름이다. 영화에서 이 도시는 범죄와 타락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폐쇄적이고 암울하게 그려진다. 물론 대구가 범죄와 타락의 도시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이 보기에 대구는 선거에 있어서만큼은 폐쇄적이고, 암울해 보인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34년 동안 대구에서 살아온 나는 '고담대구'라고 비꼬는 외부의 시각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불쾌하다며 댓거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구가 지난 10여 년간 선거결과를 통해 보여준 모습은 다분히 폐쇄적이기에 '고담대구'라는 말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게 작대기라도 파란 옷만 입혀 놓으면 당선된다'라고 할 정도로 대구는 한나라당의 텃밭 중의 텃밭이다. 그런 대구에 유시민이 출마한다고 했을 때 정치적 의도와 진정성을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해 보였다. 한 발 더 나아가 파란색 일색인 대구가 보다 다양해지고 열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시민이 당선 혹은 접전이라도 벌여주길 바랐다.


물론 기대하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지만 유시민은 32%라는, 대구에서는 유례없이 높은 득표율을 보이면서 나름 선전했다. 지난 16대, 17대 선거 결과, 특히 17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을은 탄핵 역풍에도 윤덕홍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21%의 지지밖에 보내지 않았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유시민의 이번 32%의 득표율을 단연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공천갈등을 겪으면서 박근혜 지지자들이 이른바 'MB맨'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비한나라당 후보에게 많은 표를 던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유시민의 32% 득표율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주호영 후보와 맞붙었고, 대구는 그 어떤 지역보다 박근혜 지지세가 강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과연 정치인 유시민만을 보고 던진 표는 얼마나 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가능성'과 '한계', 공존하는 유시민의 '32%' 지지율

정리하자면 유시민이 이번 선거에서 대구시민들에게서 얻은 32%의 지지율은 해석 관점에 따라 '가능성'으로 볼 수도, '한계'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선거운동기간 동안 유세 현장과 주변에서 피부로 느꼈던 점을 생각하면 유시민의 '가능성'에 좀 더 무게 중심이 갈 수밖에 없다.

사실 유시민이 처음 대구 수성을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내 주변의 반응은 '대구가 그리 만만하냐', '노빠가 감히 어딜 나오냐', '노무현 따라 하는 것이냐' 등 아주 싸늘했다.

반 노무현 정서가 전국에서 가장 강한 지역이다 보니 노무현의 최측근인 유시민에 대한 반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반감의 정도를 비유하자면 전두환의 최측근인 장세동이 광주에 출마했을 때 광주시민이 갖게 될 반감, 아마 그 정도였을 것이다.

또 유시민이 그동안 한나라당을 향해 퍼부었던 날 선 공격은 그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 심정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대구시민들에겐 큰 상처가 되었다. 많은 대구시민들이 유시민을 두고 '말은 잘하지만 싸가지가 없어서 밉다'라고 하는 것은 유시민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미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대구 시민들의 이러한 정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유시민의 지지율이 10%도 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유시민은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며 자신이 '대구 남자'임을 호소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하는 그의 연설과 방송토론은 대구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따뜻하게 다가갔다. 또한 노무현 정권의 지난 잘못을 질타하는 대구 시민들에게는 솔직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그래도 자신이 잘한 것도 있고, '의리'는 있는 사람이니 예쁘게 봐달라며 넉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담대구' 시민 반감 누그러뜨린 유시민의 '낮은 자세'와 '솔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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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유시민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큰 절을 하고 있다. ⓒ 유시민 홈페이지



그런 유시민의 '낮은 자세'와 '솔직함'은 자신에 대한 대구 사람들의 반감을 서서히 누그러뜨렸고, 그런 대구의 민심은 유세현장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실제 내가 몇 차례 가본 유세현장에는 유시민의 연설에 발길을 멈추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났고, 유시민을 연호하는 유권자들도 늘어났다.

또 '진짜로 유시민 대구 사람 맞는갑다', '그래도 유시민이 똑똑하기는 하지', '유시민 덕분에 내가 8만원(기초노령연금) 받는다 아이가' 하는 긍정적인 반응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유세현장 분위기는 유시민 곧 당선이라도 될 듯이 좋았다.

물론 유세현장 분위기와 달리 결과는 유시민의 낙선이었지만 유시민 입장에서 보면 대구 시민들이 그동안 유시민에 대해 갖고 있었던 '비호감'적 인식을 상당부분 '호감'으로 돌려놓는 성과는 분명히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유시민이 앞으로 대구에서 정치활동을 계속했을 때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구 시민들의 입장에서도 이번 유시민의 출마는 선거에서 무조건인 한나라당 지지에서 인물도 한 번쯤 보고 투표를 하는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고담대구'가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결과를 보면 대구는 '무조건 한나라당'에서 '하는 거 보고 다른 당이나 후보 찍을 수도 있다'로 조금은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유시민이 낙선사례에서 밝혔듯이 대구와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의리를 계속해서 지켜나간다면 18대 총선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유의미한 성과를 앞으로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과연 그가 '고담대구'의 '배트맨'이 될 수 있을지 대구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유시민 #수성을 #18대총선 #대구 #지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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