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나설 정도면 상황이 좀 심각하다는 뜻이죠"

6일 '쇠고기 수입반대' 여의도 촛불문화제 참가자 인터뷰

등록 2008.05.07 09:33수정 2008.05.0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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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탄핵 범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촛불문화제는 6천여 명이 운집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윤중로를 'ㄴ자 모양'으로 길게 이어진 행렬에 사람들이 자꾸 뒤이어 들어오는 형국이었다.

참여자의 구성은 매우 다양했다. 물아기(갓난아기를 뜻하는 제주 방언)를 안고 온 엄마부터 초중고등학생, 직장인, 주부 등 모든 세대가 한데 모인 자리였다. 세대가 다른 만큼 생각도 다르고 이해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텐데, 인터뷰를 해본 결과 요구사항은 나이든 사람이고 어린 사람이고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생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 기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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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협상에 항의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자 앞에 앉은 사람들부터 뒤에 앉은 사람들에게 촛불을 나눠주어 거리는 금세 촛불로 뒤덮였다 ⓒ 오승주


세대는 달라도 걱정은 한결같아

"어린이신문에서 30개월 이상 소도 수입한다는 기사를 보았어요. 무서워요."(이담초 5학년 이수정 양)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주세요."(중학교 3학년 학생)
"사람들의 걱정이 커지지 않게 정보를 공개했으면 좋겠다."(용화여고 2학년 여학생)
"국민을 대변하는 것이 정부인데, 정부의 역할을 똑바로 해주세요."(영산고 2학년 학생들)
"정보에 대한 통제와 끊임없는 밀실정치를 당장 그만두라."(IT 업종에 근무하는 20대 직장인)
"국민이 원하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일곱 살 아이를 둔 30대 주로미 주부)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으면 좋겠다."(중학생 딸을 둔 40대 주부)
"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한 정치를 해달라."(고2 딸을 가진 51세 주부 이모씨)
- 이상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 꼭 해주고 싶은 말"에 대한 답변

우석훈씨는 <88만원 세대>(레디앙)라는 책에서 대한민국 사회는 세대 간 착취현상이 매우 심각하다고 우려한 바 있는데, 최소한 여의도 광장에 모인 다양한 세대에 속한 이들은 서로 생각이 통하는 듯했다.

초등학생부터 5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지만, 걱정하는 내용은 한결같았다. 이명박 정부는 왜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느냐는 질타다. 한 학생은 "청와대 분들과 정부에 계시는 분들이 직접 이곳에 나와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계천에서 열린 두 번의 집회를 포함해서 세 번째로 집회에 참여한다는 50대 주부는 "청계천에서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여의도는 아기엄마나 주부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자가 만난 고등학생들은 용화여고, 회수고, 영산고 학생들이었는데, 학교별로 반에서 10명에서 많게는 25명까지 적지 않은 학생들이 집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기자는 학생들과 인터뷰를 하기 전에 우선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어른으로서 학생들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것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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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아래 수천 명의 점점한 촛불 행렬이 늘어서 있다. ⓒ 오승주


"학생도 국민이므로 집회 참석은 당연"

어떻게 해서 직접 참여를 하게 되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학생은 망설임 없이 "죽기 싫어서요!"라고 대답해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 학생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쇠고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하지만 자신들처럼 절실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어른들은 알지만 아이들은 느낀다는 것이다.

행사를 알게 된 것은 대부분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서다. 자신을 고3 수험생이라고 소개한 한 남학생은 "개교기념일이라 쉬는 날이지만,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참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학원수업을 빼먹고 온 학생들도 적지 않은 듯했다. 대체로 학생들은 사진을 찍는 것과 실명을 공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학교 공개는 괜찮다고 말했다. 언론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이 노출될 경우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공부를 하는 것이 학생의 본분이 아니냐는 짓궂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이 그야말로 우문현답이다.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어야 진짜 학생이다"라는 회수고 3학년 최재용 학생의 말에 기자는 그만 기가 죽고 말았다. 한 학생은 "학생도 국민이므로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용화여고 2학년 학생의 말을 듣고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저희가 나설 정도면 상황이 좀 심각하다는 얘기다."

면목동에 사는 송이 엄마 주로미 주부는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행렬에 동참하고 싶어서 나왔다. 특히 아기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를)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와 함께 이 자리에 있기가 쉽지 않았지만, 아이 문제일 거라고 생각해 직접 보여주고 싶어서 데려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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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하는 어린이신문을 통해 쇠고기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다는 이담초등학교 5학년 이수정 어린이와 남동생. 이수정 어린이는 집에서 동생과 놀고 싶었다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 오승주


당신이 내 옆에 있어서 나는 든든하다

여의도 광장에는 학생들이 천 명은 넘게 보였다. 이를 감안해 학생과 어른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선택한 것이 바로 '애국가'다. 태극기도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군중이 태극기를 가지고 온 이유는 "우리도 애국자입니다"라는 진행자의 소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학생들의 직접 참여에 대해서 어른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IT업종에 근무하는 직장인은 "휘둘리는 건 위험하지만 그들이 나오는 것은 정당한 권리다"라며 학생들을 응원했다.

성산동의 한 주부는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이 너무 저조해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오늘 여기서 젊은 사람들과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돼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직 어둡지 않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며 안도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학생도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배워서 좋았다. 특히 옆에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니 매우 든든하다"며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문화제 참가자들은 현 시국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한 직장인은 정부의 밀실정치도 문제지만 도농의 정보격차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언론에만 의지하는 사람들은 현 상황을 잘못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주부는 최근 조갑제씨가 "촛불집회 주최자들을 국가가 처벌해야 한다"고 한 발언을 들며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고 질타했다. 어른들은 물론 학생들도 언론의 편파 보도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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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린이가 엄마와 촛불을 들고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의도 광장에서는 어린이를 데리고 오거나 심지어 아기까지 업고 온 엄마들이 많았다. ⓒ 오승주


인터뷰에 응한 한 학생은 학교에서 배운 현대사 과목을 예로 들며 "4·19 혁명 때 언론은 제대로 보도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지금 와서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고 현재의 언론 실태를 비판했다.

한편 이번 행사를 주최한 '이명박 탄핵 범국민운동본부'는 '정치선동'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신경을 쓴 듯 보였다. 며칠 전 청계 광장에서의 행사와 달리 정치 구호를 외치지 않고 침묵과 애국가, 촛불만을 가지고 행사를 진행했다.

일부 시민단체와 각 정치 세력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는 팸플릿을 배포했지만, 이로 인해 주최측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진행자의 선창에 맞춰 따라 한 구호는 "농부 아저씨들, 우리가 지켜드리겠습니다"나 "어른들이 미안합니다"와 같은 메시지뿐이었다.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없지는 않았다. 인천 용현동에 사는 안형남씨는 "이곳에 나와서 어떤 방식으로든 의사를 표출하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인 행동인데 너무 몸을 사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 아무개씨 역시 "메시지가 없는 행사라 밋밋했다"고 평했다.

세 번의 운집, 만 명이 넘는 행렬에 혹자는 냄비와 월드컵을 떠올렸다. 월드컵처럼 집회를 즐기기 위해서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고, 다른 건수가 터지면 곧바로 묻힐 거라는 비관적인 이야기도 많았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만난 고등학생의 말처럼 쇠고기 문제는 아무리 양보한다고 해도 생명과 건강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쉬이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현장의 중론이다. 그 중에서도 한 시민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냄비가 끓더라도 이번에는 좀 제대로 끓어보자!"
#쇠고기수입반대 #여의도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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