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조심 하는 게 가장 힘들었지"

17년간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한 아빠를 인터뷰하다

등록 2008.05.11 18:34수정 2008.05.1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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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17년 동안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셨다. 언제나 새벽 3시 50분이 되면 알람 소리에 맞춰 아빠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현관에서 배웅해 주는 가족도 없이, 아빠는 누구보다 일찍 직장으로의 발걸음을 옮기셨다.

 

그런 아빠가 통풍이 심해져서 작년 12월에 경비직을 그만 두셨다. 지금은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으신다. 아빠와 나는 서로 속에 있는 얘기를 다 꺼내는 그런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서먹하기만 한 사이도 아니다. 요새는 아빠가 늘 집에 계시니까 자연스레 얘기를 나눌 시간도 많아졌다. 그러다가 아빠의 지난 직장 생활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래서 아빠를 인터뷰했다. 아니, 부자간의 대화라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 아빠, 인터뷰 좀 할게요. 기사 쓰려고요.

"응? 무슨 인터뷰를 해?"

 

- 아빠의 지난 직장 생활에 대해서요. 제가 이제 물어볼게요. 아빠가 아파트에서 경비 생활을 한 게 언제부터죠?

"(웃음) 91년이지."

 

- 아빠가 작년에 그만 뒀으니까 총 17년간 근무한 거네요?

"그렇지."

 

- 중간에 쉬지 않고 계속 일한 거죠? 대치동에 있는 그 아파트에서만?

"응. 17년 동안."

 

- 그럼 아빠가 서른아홉 살 때부터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한 거군요. 이 일은 어떻게 하게 됐어요?

"네 큰 이모부가 소개시켜 준거였어."

 

- 왜 이 직업을 택하셨어요?

"뭐 할 게 있냐? 배운 게 없으니까. 배운 거 있었으면 더 좋은 데로 가고 그랬겠지."

 

- 아빠가 그 전에는 무슨 일 했죠?

"문방구 했지. 문방구 하다가 장사가 잘 안돼서 가게 정리하고, 경비 일 하게 됐지. 근데 이거 녹음 되는 거냐? (매우 신기하신 듯)"

 

- 아파트 경비원의 생활에 대해서 좀 알려주세요.

"출근은 새벽 6시 20분까지 해야 되고, 계속 주민들을 위해서 일하는 거지."

 

- 집에서 아빠가 새벽 4시 50분에 늘 나가셨잖아요.

"그랬지. 출근하면 주차 정리도 하고, 주민들 위해서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 하고, 청소도 하고 그렇지."

 

- 하루 중엔 언제가 가장 바빠요?

"아침이 제일 바쁘지. 애들 학교 가고, 주민들 출근하고 그러니까."

 

- 보통 주위에 경비 일 하시는 분들은 몇 살 때부터 이 일을 시작하세요?

"쉰 살 때부터 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보통 사람들의 평균 나이는 60살 정도지. 선생 하다가 오는 사람들도 있고 사업하다 망해서 오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가지야. 용돈 벌이하려고 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부분은 생계가 어렵지. 집안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 이런 일 하러 오겠냐."

 

- 기억에 남는 일 있어요?

"있지. 황당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 와서 뭐야 이거. 수도 막아 달라 그러는데, 솔직히 그건 우리가 할 일 아닌데. 따로 기관실이 있어. 그런데 무작정 와서 우리보고 고치라고 하는데, 뭐 우리가 알 수가 있어야지. 물이 막 넘쳐흐르는데 잠그라 이거야. 이런 게 좀 어렵고. 또 외제차 키 맡기면서 (주차)해 달라는 사람들 있고. 원래는 우리가 이런 거 만지면 안 되거든. 근데 뭐 서비스니까. 어쩔 수 없이 하긴 하지. 새벽에 차 빼야 될 상황에서 우리가 키 갖고 있다가 빼고 그러지. 우리가 주차 요원은 아닌데, 뭐 별 수 있나."

 

- 아빠가 대치동에 있는 아파트에서 일했잖아요. 아빠가 맡은 곳은 평수가 얼마나 됐어요?

"55평. 시가로 치면 20억이 넘지."

 

- 주민들은 친절했어요?

"동마다 다르긴 한데, 내가 맡았던 데는 좋았지. 내가 30세대를 맡았는데 뭐 다 좋을 순 없지. 그래도 평균적으로는 좋았지. 30세대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집집마다 숟가락이 몇 개씩 있는 지 알 정도가 돼야 돼."

 

- 일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꼈어요?

"이런 직업은 보람 느낀다기보다는…. 우리가 보람을 느낀다기보다 마지못해 하는 게 많은데, 그래도 애들 내가 잘 봐주고 하면 부모들이 고맙다고 하고, 그럴 때 좋긴 하지."

 

- 어떤 점이 힘들었어요?

"입조심 하는 게 힘들지. 남한테 얘기하지 말아야 되는 거. 누구한테 무슨 일이 있는데 그런 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되니까."

 

- 육체적으로 힘든 건 없었어요?

"육체적으로는 크게 힘든 건 없지. 작업을 하긴 하는데, 가을에는 낙엽 같은 거 쓸어 담고, 겨울에는 눈 쓸고. 아무래도 겨울이 힘들지. 눈 많이 오니까. 그리고 잠 제대로 못 자는 게 힘들지."

 

- 원래 밤에는 야간 순찰 하고 초소에서 졸면 안 되잖아요. 근데 다들 졸지 않아요?

"아무래도 나이 든 사람들이니까 졸지. 순찰 시간 끝나면 거의 다 초소에서 졸지. 안자고 밤 샐 수가 있나."

 

- 경비원은 기본적으로 격일제 근무잖아요. 이게 참 힘들지 않아요?

" 낮과 밤이 바뀌니까 힘들지. 근무하고 아침에 집에 들어오면 자야 되고. 또 일어나면 다음날 출근 준비해야 하고."

 

- 아파트 경비 일 하면 4대 보험 같은 거 다 적용 돼요?

"다 되지. 아빠가 국민연금 이제 17년 부었잖아. 지난 12월에 일 그만 두고, 지금은 고용보험으로 돈도 받고 있잖아."

 

- 월급은 얼마죠?

"작년 1월까지는 정규직이었잖아. 그 때는 한 달에 130만 원 정도 받았지. 그런데 비정규직으로 바뀌면서 자동으로 퇴직금 탔는데, 비정규직 되니까 월급이 이것저것 다 제하면 81만원밖에 안됐어."

 

- 왜 비정규직으로 바뀐 거예요?

"월급이 너무 많다고 다른 직업들이랑 형평성 맞춘다면서 비정규직으로 전환시켜버렸지. 아빠가 일했던 곳이 다른 아파트보단 월급을 많이 주긴 했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월급이 70만 원 정도야. 강남이 아무래도 월급이 세지. 아빠가 아프지만 않았으면 계속 다녔지. 명절 때 생기는 돈도 있고 그런데. 아빠가 통풍이 오는 바람에……."

 

- 경비 일 하면서 비리 많지 않았어요?

"많았지. 하루 쉰다고 하면 외곽 근무자가 대신 근무하면 되는 거라 돈 낼 필요 없는 건데, 5만원씩 내고 그랬지. 관리 사무소에 소장이랑 부장이 있고, 경비원 중에 반장이 있어. 아파트에서 큰 공사 맡고 그러면 소장을 중심으로 해서 업체로부터 돈 받고 그러지. 명절 때 되면 10만원씩 소장한테 줘야 하고. 여름휴가 때도 주고. 아빠는 퇴직금 받으면서 그 중에서 60만원 줬어."

 

- 경비원들 사이에 불만이 많을 텐데요?

"어쩔 수 없지 뭐. 반장은 매번 조회 때마다 입조심 하라고 그러고. 돈을 안주면 생활이 힘들어지지."

 

- 경비원 생활에 비해 월급 같은 거나 여러 가지 대우가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적절하지 않지. 한 달에 2백만 원 정도는 받아야지. 인터뷰 이제 그만하면 안되냐? 아빠 드라마 봐야 돼. (웃음)"

 

비록 아빠는 많은 돈을 버시지는 못 했지만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셨다. 그런 아빠가 계셨기에 지금 내가 대학교도 다니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뷰 과정에서 다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빠가 17년 동안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며 겪은 고충들은 더 많다.엄마를 통해 그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난 아빠에게 힘내시라는 말 한 마디도 못했다. 이 자리를 빌려 아빠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아빠,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어서 건강 회복하세요."

 

2008.05.11 18:34 ⓒ 2008 OhmyNews
#경비원 #경비 #아파트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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