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지하철 2호선에서 나는 부끄러웠다

장애인 앞에서 편견쟁이였던 나를 발견하다

등록 2008.05.15 16:43수정 2008.05.1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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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역곡에 살 때의 일이다. 여느 아침처럼 오분 십분 꿈지럭 거리다가 서둘러 문을 박차고 나와 지하철을 탔다. 신촌이 학교라 늦지 않기 위해서 급행을 타고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탔다. 아침 시간 대의 2호선은 제대로 서있지 못할 정도로 항상 붐빈다. 사람이 뽁짝뽁짝거리는 지하철에서 그나마 한산한 노약자 장애인 석 앞에서 책을 들고 서 있었다.

 

노약자석이 분명한데 내 앞에는 예쁘장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많았는데 그여자는 꽃무늬 코트에 청록색 팔랑거리는 치마를 입은 예쁜 모습으로 아주 얌전히 앉아 있었다. 보아하니 여대생 같은데 노약자석에 앉아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릴 뿐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다고 생각했다.

 

손에 책을 펴 든 채로 책장을 넘기지 않고 계속 그 여자를 노려봤다. 이렇게 까지 눈치를 주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볼 셈이었다. 눈치를 주던 말던이었다. 바로 앞에 할머니가 지나가는데도 모르는 척 하는 그 여대생을 보며 계속 노려봤다.

 

'정말 어떻게 되먹은 뇌구조야 싸가지 밥말아 먹었군.'

 

오만 생각이 다들었다. 이래서 '요즘 애들은...' 이런 말이 나오는거 아닐까하며.

 

결국 전철이 15분을 달려 신촌역에 도착할 때까지 그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태연히 손에 들린 핸드폰을 만질 뿐. ' 대단한 철판이다 '라고 생각했다. 저렇게 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오늘도 에티켓, 내일도 에티켓, 나는 꼭 에티켓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마음 속으로 굳건히 다짐했다. 

 

 내려서 시간을 보니 다행히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다. 계단 쪽으로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 거울이 있길래 잠시 서서 옷매무새를 만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뒤쪽에 낯익은 팔랑거리는 초록색 치마가 언뜻 보였다. 싸가지 없는 여대생도 이 쪽에서 학교를 다니는가보다. 그녀가 오는 것이 거울에 비춰서 보였다.

 

얼굴이나 제대로 보고 눈치나 한 번 더 주려고 일부러 더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나를 슥 지나치며 앞으로 걸어가던 그녀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다. 한발 한발을 절뚝거리며 열심히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여전히 예쁜 꽃무늬 코트와 팔랑거리는 치마를 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 힘겹게 한 발 한 발을 내딛고 있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내 까짓게 뭘 안다고 그렇게 질서를 준수하는 척, 예의바른 척 했던 걸까. 그녀의 팔랑거리는 치맛자락이 흔들거리며 사라지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알량한 겉모습을 보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한 것이다. 그녀를 욕하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 상대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던 나 자신 창피했다.

 

나의 머릿속에는 장애인이란 사람들은 항상 꼬질꼬질하고 칙칙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나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닌 척 하지만 약한 사람을 위하는 척 하지만 사실 그들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항상 우리가 주는 도움의 손길을 받는 약자라고 인식해왔다. 내 안에서는 그들은 언제나 삶의 무게를 짊어진 눈을 한,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 날 아침 지하철 2호선은 날 참 부끄럽게 했다.

2008.05.15 16:43 ⓒ 2008 OhmyNews
#지하철에티켓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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