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실에 목욕수건까지, DVD방 맞아?

신종 '멀티방' 대학가 성행...규제도 무용지물

등록 2008.05.19 16:17수정 2008.05.1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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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와 신촌 명물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복잡한 사람들 사이로 여기저기서 알바생들이 전단지와 쿠폰을 나눠주고 있었다. 무심결에 받아든 쿠폰에는 '**멀티 DVD방 신장 개업 1시간 무료 이용'이라는 매혹적인 문구가 적혀 있었다.

샤워실에 목욕용품까지, DVD방 맞아?

할 일도 없는데 DVD나 한 번 보자며 찾아간 멀티방은 신촌 로터리 부근에 위치해 있었다. 무료 쿠폰을 제시하고 DVD를 고른 다음 방을 배정 받았다. 들어가려고 하는데 다른 DVD방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일반 DVD방은 퇴폐적인 행동을 예방하기 위해 투명 창문을 꼭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곳은 방마다 창문도 하나 없이 밀폐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방문도 묵직한 철문으로 자동잠금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영화 감상을 이유로 방음 또한 철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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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방의 자동잠금장치가 된 문 모든 문이 닫으면 저절로 잠기게 된다 ⓒ 최연


내부 구조는 더 가관이었다. 무엇을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방 안에는 쾌적한 샤워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샤워실 안에는 샴푸, 컨디셔너, 바디샴푸, 비누를 비롯한 목욕용품이 '잘' 갖춰져 있었다. 온 몸을 감쌀 수 있을 정도의 수건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여기에 침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큼지막한 소파와 5개나 되는 조명까지. 별다른 생각없이 함께 간 남자친구와 나는 야릇한 분위기에 괜스레 민망해졌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멀티방'이었다. 멀티방은 DVD, 인터넷, TV, 만화책 등의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원스톱으로 즐길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차별화된 서비스가 도를 지나쳐서 샤워실까지 원스톱으로 즐길 수 있는 멀티방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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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방에 있는 샤워실 반투명 문이 달려있는 멀티방 샤워실 ⓒ 최연


가격도 파격적이다. 주말을 포함해서 저녁 10시부터 다음날 오후 4시까지 18시간 동안 시간당 이용요금은 4000원. 평일 저녁에는 정액요금제를 시행하는데 저녁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13시간 이용 가격은 2만5000원. 시간제를 도입한 대학가 모텔 가격은 시간당 5000원이다.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 많은 대학들이 모여 있는 신촌 쪽의 멀티방들은 대학생들로 붐비고 있다. 대학가 모텔들은 빈 방이 없어서 난리라는데, 멀티방은 이 틈새시장을 잘 공략한 것 같다. 찾아간 멀티방의 주변에도 모텔들이 여러 개 있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인기가 좋은 곳도 있다고 한다.

사람이 많은 대학가나 중심가 어디에서나 멀티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러 개의 멀티방 체인점까지 형성되고 있다. 게다가 남성 전용 멀티방이 등장해 윤락 알선까지 더해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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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방 주변 환경 멀티방 창문으로 보이는 인근의 모텔 ⓒ 최연


욕조·불투명 유리창 금지, 규제도 무용지물

2007년 9월 정부는 실태를 파악하고 멀티방을 복합유통게임제공업으로 정하고 시행규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룸 내부에 욕조, 화장실을 따로 두는 것을 금지했다. 또 출입문은 전체 출입문 면적의 2분의 1 이상을 투명한 유리창으로 설치하고 이 유리창을 가리지 않는 것을 의무로 하고 있다. 내부에 침대나 침대와 비슷한 형태인 의자, 3인용 이상의 소파는 두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조명도 40룩스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또 초·중·고·대학교의 정화구역(반경 200m) 이내에는 허가하지 않는다는 규정도 있긴 하지만 버젓이 대학가 중심에서 멀티방은 쑥쑥 크고 있다.

이러한 규제를 '철저'하게 어기고 있지만 이 신종 샤워 멀티 DVD방은 건재했다. 등록을 하지 않고 영업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단속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멀티방? 안전 사각지대 우려

사람들의 입장도 각양각색이다.

김아무개(21)씨는 "DVD방의 퇴폐화를 조장하는 것 같다. 영화 감상이 목적인데 샤워 시설을 설치했다는 것은 DVD방의 본래 목적을 떠나서 다른 퇴폐적인 용도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아무개(22)씨는 "사회적 문제가 되기는 하는데 그것을 제재할 구체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한 것 같다. 감시를 잘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허술한 규제를 꼬집었다.

반면에 정아무개(22)씨는 "그냥 모텔이나 다름없다. 싼 가격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천국이 될 수도 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여자친구나 남자친구와 갈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텔보다 합리적이니 갈 것 같다"고 대답했다.

많은 규제안에도 신종 멀티 DVD방은 아직 건재하다. 전화방, 비디오방의 뒤를 이어서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신종퇴폐업소로 전락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멀티방 #DVD방 #모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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