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기저귀, 코푼 휴지... 백화점의 초일류 '진상'들

쇼핑카트 비정규직이 말하는 '돈 모시는' 백화점

등록 2008.05.21 10:54수정 2008.05.2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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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 하는 백화점의 쇼핑카트 관리사원이다. 물론 비정규직이지만 말이다. 지난 학기까지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었지만, 올해 학기는 포기하고 등록금이라도 벌어보고자 돈벌이를 하고 있다.


백화점에서 카트를 밀다 보면 '세상에는 참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싶다.

멀리서 카트 가져오라고 손가락 까닥거리는 사람, 어린애들 마구 돌아다니게 방목하는 사람, 카트 줄 앞에서 비켜서질 않는 사람, 어린 아이를 바구니 위에 태우는 사람, 짐을 실으며 바구니까지 차에 싣는 사람, 더 나아가 카트까지 차에 실어 도망가려는 사람, 아예 팔짱 끼고 짐을 옮겨 실어주길 기다리는 사람 등 참으로 다양하다.

세상 별의별 사람 다 모인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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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바구니에 버려진 쓰레기. 분명히 밝히는데 한데 모은 것이 아니라 바구니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 허진무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악질'이며, 가장 많이 보이는 부류는 쇼핑카트 바구니가 쓰레기통인 줄 아는 사람이다.

'초일류'를 지향하는 백화점이니 드나드는 사람들도 '초일류' 급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끔씩은 어째 교양이 이리도 천박한지, 정신이 아득해지게 한다. 우리들 사이에선 이들을 고유한 전문용어로 '진상'이라 일컫는다.


새파랗게 어린 주제에 어린 시절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어쨌든 나는 꼬맹이 때부터 지금까지 백화점이 불편하다.

아직껏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를 따라 신사복 코너를 지나가는데 우두커니 늘어서 있던 양복쟁이 사원들이 모두 허리를 90도로 굽혀 "안녕하십니까" 외치며 '주르르르' 절을 했다.

나는 민망했다. 왜 저 사람들이 나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얼굴 빨개지도록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그 때 불편한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때보다 훨씬 덜 예민해진 지금도 나는 백화점의 90도 깊숙한 절이 불편하다. 백화점이 허리 굽히는 대상은 내가 아니라 나의 지갑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돈에 존경을 표한다.

돈을 향해 90도 허리 굽히는 절

누군가는 "고객들이 내는 돈으로 자네들 임금 받는 거 아니냐"고 쏘아붙일 수도 있겠다.

그말에 고개가 끄떡여지면서도 카트에 쓰레기 버리는 사람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불과 1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쓰레기통이 있건만 꼭 카트에다 먹다 만 커피컵을 내던져 끈적거리게 만들어야 되겠나. 그것도 백화점 문화센터 드나드는 소위 '교양인'들이.

교양은 바로 이런 거다. 쇼팽을 들으며 '카라멜 마끼아또'를 홀짝대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인간된 존엄을 고민하는 태도 말이다. 말라붙은 커피물을 낑낑대며 닦다 보면 대체 그들이 백화점 문화센터를 드나들 만한 '교양인'인지, 그 사실이 무색하다. 사람의 됨됨이가 이 모양이라면, 와인 빈티지를 아무리 달달 외운다 해도 다 부질없는 게 아닐까?

함께 카트를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생 이아무개(21)씨는 "카트가 비에 젖어서 열심히 닦고 있는데 웬 할머니가 지나가면서 코푼 휴지를 휙 던져 넣고 가더라, 쓰레기통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뒤에 덧붙여진 육두문자의 나열은 내용이 너무 험악해서 따로 옮겨 쓰지는 않겠다.

그는 또 "자꾸 '서비스 정신' '서비스 정신' 하는데 최소한 사람 대접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했는데 백번 옳은 말씀이다. 하지만 불만 많은 그도 손님 앞에만 서면 다시 싱글벙글 천사표 사원으로 변신하고 만다.

"서비스 정신도 인간 대접받아야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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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발견한 기저귀. 바구니와 바구니 사이에 짓눌려 있었다. 도무지 익숙해지기 어려운 물건이다. ⓒ 허진무

중요한 것은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인간적 소양이다. 백화점은 천민자본의 궁극적이고 총체적인 결정판이라 할 만 하다. 품위도 돈으로 사야 하는 이곳에서는 도대체 인간적 품위를 지키기 힘들다.

불만투성이로 뺀들대며 일했으나 어느새 무디어지고 무신경해진 나는 요즘 거의 기계적으로 "안녕하십니까, 좋은 하루 되십시오, 고객님"을 연발하고 있다.

백화점은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사원 대 고객'으로 계급의 재형성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때때로 그것은 굴욕적이다. 주차장에서 카트를 치우다 다섯 번째로 똥 싼 기저귀를 발견했을 때 내 마음이 그러하였다. 하지만 오늘도 "돈이 웬수지" 불퉁거리고 마는 내가 초라하게나마 말할 수 있는 바는 결국 이것뿐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백화점을 싫어할 것이다.'
#백화점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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