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마음’이란 과연 무엇일까?

대안학교의 마음공부 전일제 훈련

등록 2008.05.28 18:27수정 2008.05.2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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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역할극 김밥 할머니 폭행 사건을 법정에서 재판하고 있다. ⓒ 정일관

▲ 마음공부 역할극 김밥 할머니 폭행 사건을 법정에서 재판하고 있다. ⓒ 정일관

마음공부를 통해 행복을 가꾸는 학교를 표방하는 경남 합천의 원경고등학교에서 마음공부 전일제 훈련을 하였습니다. 원경고등학교는 개교 때부터 아이들에게 지식보다 마음 사용법을 강조하여 줄곧 마음공부를 시행해 오면서 마음대조공부, 마음일기쓰기를 중요한 특성화 교과목으로 정착시켰습니다.

 

바로 이 마음공부가 원경고등학교가 내세우는 ‘대안’이었고, 이 마음공부라는 매력 있는 프로그램이 학부모가 아이들을 원경으로 보내는 큰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처지에서 보면 마음공부는 그리 매력적인 공부가 아닌 듯 합니다. 그것은 중학교 단계까지 받았던 아이들의 인성 교육이 대개 윤리나 도덕을 권위로 주입시키는 것으로, 내 마음을 습관이나 외부 자극으로부터 지키면서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마음공부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색깔도 소리도 냄새도 맛도 형상도 없는(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 ‘마음’이라는 것을 공부한다는 것이 아이들로서는 ‘생문자’와 같이 듣도 보도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마음공부를 지도하는 것이 때때로 소출 없는 농사 같기도 하여 맥이 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마음공부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자기 마음을 내팽개치기도 하고 어깃장을 놓기도 하지요.

 

학부모들도 마음공부가 좋아서 원경고등학교에 자식을 보내었는데, 아이들의 마음공부 실력이 일취월장하지 못하고, 도리어 마음공부를 싫어하기도 하니 실망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생겨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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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역할극 아,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겠네. ⓒ 정일관

▲ 마음공부 역할극 아,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겠네. ⓒ 정일관

게다가 마음공부는 대안으로 부족하니 생태주의를 대안으로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부모가 생겨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의 조화라는 부처님의 가르침)라, 그러한 생각도, 그러한 주장도 모두 다 마음의 작용일진대 마음을 살피고 챙기고 공부하는 것을 어찌 밀쳐둘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사람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마음을 사용해야 한다. 이 마음은 언제 어느 때나 가지고 있으면서 쓰고 있는 것이라 그 사용법을 잘 알고 바르게 사용하면 크게 환영받는 사람이 될 수 있지만 마음을 잘못 사용하면 세상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역설합니다. 또한 지식이나 재물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마음을 잘못 사용하면 그것이 다 죄를 짓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로 설득하기도 하지요.

 

역사상 위대한 성자들이 학문의 과정이 부족하여 학식을 풍부하게 갖추지 못하였고 대학을 다닌 경험이 없는 분들이라 궁극적으로 주지적인 분들이 아니지만, 오직 영성을 밝혀 인간의 바른 도리로써 후세 만대에 가르침을 전하신 분들이라, 우리가 성자의 삶을 체현하고자 한다면 마음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임을 끊임없이 새기는 작업을 할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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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역할극 갈등 상황의 과장된 표현 ⓒ 정일관

▲ 마음공부 역할극 갈등 상황의 과장된 표현 ⓒ 정일관

그래서 작년부터 아이들에게 마음공부 전일제 훈련으로 단순히 마음일기를 쓰고 발표하는 정적인 훈련을 택하지 않고 역할극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과 해결점을 표현하라고 했습니다. 역할극은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접하고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한 편의 극이 무대 위에서 전하는 메시지 전달력과 감동의 힘은 백 번의 설교보다도 강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각 반을 두개의 단으로 나누고 총 12개 단으로 구성한 뒤, 단 명칭과 단 구호를 정하고 주제를 토론을 통해 정하도록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단 이름과 구호를 매우 다양하게 만들어내었는데요, ‘경이법’(경계를 이기는 법)이나 ‘나이주이’(나도 이롭게 주변도 이롭게) 등 말을 줄인 이름도 있으며 ‘2MB’라는 풍자성 이름, ‘얘들아’, ‘피카츄’ 등 의미가 없는 이름 등 다양했습니다. 구호 역시 아이들의 창의력이 빛나는 구호가 기발하여 재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모여서 주제를 정하고 시나리오를 작성하며 배역을 정해서 연습을 하였고 학교에서는 마음일기를 쓰는 시간을 연습 시간으로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기숙사에서, 친구들 간이나 선후배 간, 교사와 학생 간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 등을 소재로 잡기도 하고, 술, 담배 등 학생들로서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기도 하였으며, 노점상 철거반원의 김밥 할머니 폭행 사건 같은 사회적인 관심거리를 소재로 하여 재구성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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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역할극 사람이 함께 사는데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갈등이 없기를 바라기보다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 정일관

▲ 마음공부 역할극 사람이 함께 사는데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갈등이 없기를 바라기보다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 정일관

그러나 그 과정이 수월치 않아서 아이들은 역할극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갈등이 되기도 하여 무기력하게 참여하지 않는 학생과 주도적으로 끌어가는 학생의 독선이 부딪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갈등도 잘 봉합하면서 여러 번의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의 한 부분을 적절히 묘사한 역할극을 하나씩 만들어나갔습니다.

 

5월 27일, 강당에 모인 12개 단들은 각각 단 이름과 구호를 선창하고 극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1학년 아이들은 매우 수줍은 모습으로 올챙이처럼 어설프게 연기를 하였고, 2학년 아이들은 기발하고 독특한 구성을 선보였습니다. 3학년 아이들은 시나리오도 탄탄하였고, 연기력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재미도 더하여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으뜸상을 받은 3학년 11단은 김밥 할머니 폭행 사건을 소재로 극을 구성하여 폭행한 철거반원이 마음을 멈추고 마음공부를 하였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임을 알렸습니다. 버금상을 받은 3학년 10단 아이들은 아침 등교 시간에 복장을 살피는 교문 지도를 하다가 일어날 수 있는 갈등 상황을 재미있는 내레이션으로 엮어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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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역할극 마음 공부가 안 될 때는, Baby one more time! ⓒ 정일관

▲ 마음공부 역할극 마음 공부가 안 될 때는, Baby one more time! ⓒ 정일관

아이들은 역할극 참가 소감문에서 역할극을 준비할 때 마음대로 되지 않음으로 해서 느꼈던 답답함이나 부끄러움, 그리고 무대에 오를 때 막 떨리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긴장감을 토로하였습니다. 흡연이나 친구들을 괴롭히는데 대한 반성도 많았으며, 특히 자신들이 선생님들을 평소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역할극을 하면서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마음공부 훈련은 3학년 학생들에 대한 후배들의 존경심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번 역할극을 통해 ‘마음’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경험하고 알게 되었을까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마음’을 한 번쯤 챙기고 살피고 더 나아가 잘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 큰 소득이겠지요. 마음공부는 한 판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하는 것이니, 다만 그 끈을 놓지 않고 가면 되는 것이겠지요. 마음공부는 곧 삶을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공부 역할극을 통해서 부쩍 커버린 아이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8.05.28 18:27 ⓒ 2008 OhmyNews
#원경 #마음공부 #역할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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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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