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40주기, 그가 스스로 생니를 뽑았던 까닭은

여름 문예지 '김수영 40주기' 특집 다뤄

등록 2008.05.29 11:19수정 2008.05.29 21:50
0
원고료로 응원
a

올해로 김수영 시인이 세상을 뜬 지 40년이 됐다. 사진은 김수영 시인의 미발표 유고 ⓒ 창비

올해로 김수영 시인이 세상을 뜬 지 40년이 됐다. 사진은 김수영 시인의 미발표 유고 ⓒ 창비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김수영의 '풀' 중에서

 

'풀'의 시인 김수영(1921~1968)이 세상을 뜬지 올해로 40주기를 맞았다. 미당 서정주와 함께 현대 시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작가로 꼽히는 김수영은 김경린, 박인환 등과 동인시집을 발간할 당시(1949년)만 해도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하는 모더니스트였지만, 1960년 4.19를 거치면서 현실비판과 저항정신에 기반한 '참여시인'으로 변모했다. 1968년 갑작스런 죽음으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시인은 '자유'를 속박하는 현실에 대한 뜨거운 비판을 쏟아냈다.

 

올해 시인의 40주기를 맞아 계간 <창작과비평>과 <문학동네>가 그의 문학과 삶을 재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창작과 비평>은 특집 '김수영 시인 40주기에 부쳐'라는 제목으로 김수영 미발표 유고 시와 일기를 공개했고, <문학동네>는 '시인을 찾아서- 김수영'이라는 기획으로 시인의 부인인 김현경 여사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희망사 사장에게 이십환을 선불을 받아가지고 '올-레오-마이신'을 사고 <하-파스>와 <애트랜․틕>을 사가지고 다방 '행초'에 와서 앉는다. 그러께 밤에 쓴 시 '나비의 무덤'이 안 호주머니에 그저 들어있다. 앉으나 서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친다. 좋은 단편이여, 나오너라." - 1955년 1월 5일(수) 김수영의 미발표 유고일기 중에서

 

a

김수영 시인 사후 40주기를 맞아 계간 <문학동네>와 <창작과비평>은 시인의 문학을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 컬처뉴스

김수영 시인 사후 40주기를 맞아 계간 <문학동네>와 <창작과비평>은 시인의 문학을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 컬처뉴스

계간 <창비> 여름호를 통해 발표된 김 시인의 미발표 시는 총 15편, 일기는 30여 편에 이른다. 모두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씨가 소장해오던 것으로, 발굴 당시 '연꽃', ''金日成萬歲''(김일성만세), '결별' 등 세 편은 부인 김씨가 원고지에 청서(淸書, 초고를 깨끗이 베껴 씀)한 형태로 보존돼 있었으며, 나머지 12편은 노트에 육필로 기록돼 있었다고 한다. 

 

생전에 김 시인은 한 작품을 끝낼 때면 "한 작품 끝났다"고 외치고 부인 김씨를 불러 청서를 시켰다고 한다. 부인 김씨는 시인이 청서를 시키면 "쌀을 안치다가도 불러가 펜을 들어야 했다"며 "시인이 '쉼표 찍어라, 한 칸 띄어라, 행갈이 해라'며 세심하게 주문하던 것이 기억난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김수영 시인의 미발표 유고를 해제한 김명인 문학평론가는 "김현경 여사 댁에서 흥분과 설렘 속에서 찾아낸 유고더미는 시인의 첫 시집 <달나라의 장난>의 편집원고 일습(전부)과 역시 원고지에 청서된 여러 편의 시와 산문 원고들, 각종 봉투와 광고지, 엽서, 심지어는 시멘트 포대 종이 등에 씌어진 시나 산문의 초고, 그리고 1954년 1월경에서 1961년 5월 4일 사이에 작성된 메모장 및 국반판 정도 크기의 공책 10여 권 들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이번에 발표된 메모장과 공책들에 대해 "일기, 단순한 메모, 시 초고, 수필, 소설을 위한 메모와 습작, 번역원고 및 번역을 위해 필사해둔 영문작품 등이 전부 포함되어 있어서 김수영의 시와 사유가 날것 그대로 소용돌이치는, 가히 김수영 문학의 '진본(珍本)'이라고 해도 좋을 귀중한 문학사적 자료들"이라고 평가했다.

 

덧붙여 "김수영 40주기를 앞두고 새로운 텍스트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 만큼 이제 김수영 연구는 기존 공간(公刊)된 자료들에 의존하는 안이함에서 벗어나 본격적이고 총체적인 연구의 단계로 도약할 시점을 맞이했다"고 밝혔다.

 

a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는 <문학동네> 인터뷰에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김수영을 이야기한다. ⓒ 문학동네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는 <문학동네> 인터뷰에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김수영을 이야기한다. ⓒ 문학동네

<문학동네>는 '시인을 찾아서 - 김수영 시인'이라는 기획으로 김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와 두 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담았다. 인터뷰에서 김 여사는 폭음을 즐기다가도 가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금차(禁茶), 금주, 금연을 결심하며 머리를 빡빡 깎던 모습, 거제도 포로수용소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 스스로 이를 뽑았던 시인의 이야기, 별거와 재결합 과정에서 보여준 독특한 사랑의 방식 등을 회고했다.

 

"한번 마셔야지 작심을 하면 폭주를 하는 편이지. 그런데 가끔 이 사람은 정신을 굉장히 차리는 사람이기도 하지. 긴장을 안 놓아요. 어떤 때는 머리는 빡빡 깎고 막 자학을 해. 내가 그때 메모한 걸 아직도 가지고 있어. 어디 보자, 여기 있네, 금차(禁茶), 시시하게 명동에 나가서 차 안 마시겠다는 거야, 금주(禁酒)…… 이런 식이야. 이런 걸 일기장에도 써놔." -p268

 

"포로생활 하면서 시간이라는 것을 견디기가 너무 힘이 드니까 이를 하나씩 뺀 거야. (…) 우리는 시간이 흐르지만 거기는 내일을 모르잖아. 반공포로와 이북 쪽에 넘어갈 포로들이 서로 암암리에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대낮에 테러를 일삼으니 어떻게 맨정신으로 견딜 수 있겠어. 자기에겐 너무너무 자극이 필요하더래. 뭐가 아프든지, 뭐가 쓰리든지, 뭔가 통증이 자기를 일으킬 것 같았다고 하더군. 이를 하나씩 빼가지고, 아래위가 다 틀니야." -p275

 

"일요일이었을 거야. 아홉시 반쯤 느즈막이 둘이 겸상을 해서 밥을 막 먹으려고 하는데 김시인이 딱 들어서. 나는 그 장면이 지금도 그렇게 생생할 수가 없어. 다른 사람 같으면 두들겨 패고 '친구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어쩌고저쩌고 할 거 아니야. 그런데 아무 소리가 없어. 딱 들어와서 가만히 서 있더니 나보고 가자고 그러데. 그 말 딱 한마디 했어. 내가 어떻게 일어나. 도저히 못 일어서지. 나중에는 세 사람 다 하도 가만히 있어서 밥알이 말라서 흔들거릴 정도였어." -p279  

 

김현경 여사는 인터뷰 말미에 '작은 소망'하나가 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전에 살았던 속리산 보은에 김수영 시인의 서재를 조촐하게 꾸미고 싶다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말리지만 김 시인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찾아오는 시인 후배들에게 술 한 잔 대접하면서 말이다.

 

그 밖에도 황현산 문학평론가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떤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김수영 시인의 문학적 힘과 가치를 다시 조명한 '김수영의 현대성 또는 현재성'을 <창비> 특집에 함께 실었으며, 문단 후배인 이문재 시인을 비롯해 이영준, 진은영, 장석원 문학평론가가 '내가 읽은 김수영'이라는 주제로 시인의 문학을 이야기한 글들이 <문학동네> 기획 '시인을 찾아서'에 함께 실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컬처뉴스>(http://www.culturenews.net)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2008.05.29 11:19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컬처뉴스>(http://www.culturenews.net)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김수영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김현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감정위원 가슴 벌벌 떨게 만든 전설의 고문서
  2. 2 "김건희 여사 접견 대기자들, 명품백 들고 서 있었다"
  3. 3 유시춘 탈탈 턴 고양지청의 경악할 특활비 오남용 실체
  4. 4 윤 대통령이 자화자찬 한 외교, 실상은 이렇다
  5. 5 그래픽 디자이너 찾습니다... "기본소득당 공고 맞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