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창고로 놀러가요

<서평>신현림의 시간창고로 가는 길을 읽고

등록 2008.06.06 12:25수정 2008.06.0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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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흘러가는 것 투성이인데 박물관은 흘러감을 멈춰 세워 우리네 삶과 그리움이 뭔가를 묻는다.'

 

이 글귀가 가슴 복판에 확 꽂혔다. 갑자기 박물관을 가고 싶어지고 발바닥이 간지러웠다. 시인 신현림이 쓴 박물관 기행 산문집 <시간 창고로 가는 길>(2001. 마음산책)에 나오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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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마음산책

책 ⓒ 마음산책

 

신현림 시인은 보물찾기 하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 보물을 찾았을 때 심정으로 글을 쓰나 보다. 박물관 기행이라 박물관 소개 중심으로 꾸며졌을 거라 예상했는데 자기 느낌과 사는 이야기에 박물관 견학을 곁들인 독특한 짜임이었다. 책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끌면서 시 같은 표현으로 자기 감상과 박물관 이야기를 버무리는 솜씨가 일품이다. 아래 표현을 읽어보시길.

 

왜 옛 가옥을 보면 슬픔도 따뜻해질까. 원래 정든 모습은 따뜻하고 애달프게 마련이라. 보름달이 조금씩 깎여 초승달이 되는 기분일 게야. - 강릉 선교장 박물관에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박물관이 신현림 시인을 만나자 꼬마 아이가 봄 하늘에 부는 비누방울처럼 기분 좋게 다가온다. 시인의 맛깔스러운 표현들과 생생한 느낌들이 더해지면서 신발 끈을 매게 한다. '이렇게 좋은 곳이 가까운 데 있었는데 몰랐다니'라는 탄식과 함께.

 

이러한 표현들은 박물관하면 재미없는 곳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박물관을 친근하게 알려주는 영리한 접근법이다. 생활에서 익숙지 않은 박물관, 소개까지 딱딱하다면 절로 책을 덮어버릴 것이다. 따뜻한 정서로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시인의 글재주는 어느새 박물관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에 코를 묻게 한다.

 

시인이 찍은 사진은 더 큰 울림을 주고 책의 가치를 높인다. 지은이는 글을 아껴 쓰려고 사진을 배웠다고 밝힌다. 대학원에서 공부한 사진들은 고심해서 아껴 쓴 글들과 어울리며 책을 빛낸다. 4쪽 정도의 짧은 글들과 3-4장의 사진들로 박물관을 반짝이게 하며 마음을 끌어당긴다.

 

하나 아쉬운 점은, 박물관 위치나  약도, 찾아 가는 길 같은 자세한 소개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에 박물관들 가는 방법을 간단히 모아서 적었는데 박물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 읽는 이들이 알아서 찾길 바란 걸까. 박물관에 대한 궁금증으로 마음에 바람은 잔뜩 불어넣어 빵빵해졌다가 막판에 김빠지는 기분이다. 신발끈을 묶는 것도 자신이 하는 것인 만큼 찾아가는 것은 읽는 이의 몫으로 남긴 것 같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한 첫 발길.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아름다움 속으로 떠난다는 지은이의 말처럼 곳곳에 숨어있는 보석 같은 박물관을 찾아봐야 겠다. 요즘처럼 좋은 날에는 시간 창고로 가는 발걸음마저 반짝일 거다.

2008.06.06 12:25 ⓒ 2008 OhmyNews

시간창고로 가는 길 - 박물관 기행 산문

신현림 글, 사진,
마음산책, 2002


#신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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