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이사부도 울릉도의 신비로움을 보았을까

[울릉도 도동에서 태하까지 해안일주 ①]

등록 2008.06.13 23:08수정 2008.06.14 12:15
0
원고료로 응원
a

선상에서 바라본 일출과 구름에 휩싸인 울릉도 포항에서 울릉도로 가는 독도페리호에서는 선상일출을 볼 수 있습니다. ⓒ 문일식


제주도와 같은 또 다른 화산섬, 울릉도…. 제주도는 맘만 먹으면 비행기라도 타고 갈 수 있지만, 울릉도는 오로지 뱃길로만 갈 수 있는 섬이기에 인내심을 가져야만 그 실체를 보여주는 새침데기같은 섬입니다. 묵호와 포항에서 쾌속선으로만 3시간을 달려야 만나는 섬이지만, 차라도 싣고 간다면 두 배 가까운 시간인 6시간 정도를 바다 위에서 보내야 합니다.

더구나 서울 같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묵호나 포항까지 가는 시간까지 합하면 울릉도 여행 자체는 여행에 대한 솟구치는 의지의 발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여행(6월 5일∼8일)은 포항에서 차를 싣고 가야 했기에 4시간 남짓을 달려 저 먼 포항까지 달려야 했고, 또다시 차를 배에 싣고 6시간 동안 바다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하루의 반을 울릉도 가는데 소비한 셈입니다.


망망대해 속 눈앞에 보이는 울릉도

'해 뜬다'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의자에 기댄 불편한 몸을 일으켜 세웁니다. 밤새 닫혀 있던 갑판이 열리고, 선상에서 일출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쾌청한 날씨를 예감하는 둥근 태양이 저 멀리 수평선 위에 둥실 거리고 있습니다. 밤새 어둠에 휩싸였을 울릉도도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망망대해를 떠돌던 구름은 울릉도에 발목을 잡힌 채 울릉도에 휘감겨 있습니다. 

중간산 지대는 긴창을 두른 듯 흰 구름이 띠를 길게 드리우고, 성인봉과 주변의 산봉우리는 투구를 쓴 듯 짙은 회색빛 구름을 휘감고 있습니다.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기키 위해 바닷길을 지나 이곳에 이르렀을 때 우산국을 지키던 우해왕의 혈기왕성한 모습이랄까? 함부로 범접하지 못할 위세였기에 커다란 목각사자를 이용해야 했던 이사부도 아마 이런 울릉도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봤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망망대해이건만 눈앞에 바라다 보이는 울릉도는 울릉도이기 이전에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육지가 보인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울릉도, 울릉도를 향해 애간장만 길게 드리워집니다. 첫발을 내딛기까지 그 후로 30분이 넘게 걸렸고, 드디어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습니다.


망향봉과 행남봉의 우람한 산세 사이로 깊게 드리워진 골짜기에 도동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독도 페리호에서 600여명의 사람이 쏟아져 나오자 밤새 외롭고 고요했던 울릉도는 그제서야 눈을 뜹니다. 6시도 채 안되는 이른 아침인데도 도동항 손님 맞을 채비로 부산하기만 합니다.

a

바다와 해안절벽 사이에 놓여진 울릉도 해안도로 울릉도 해안도로는 맑은 물빛과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절벽사이에 놓여져 섬목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 문일식


도동에서 시작된 해안일주코스

울릉도 첫날의 일정은 성인봉을 올라 나리분지로 내려오는 등산코스와 해안일주코스 중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날씨가 워낙 쾌청해서 성인봉 등반보다는 해안일주도로를 돌며 맑고 청량한 바다를 담는 게 낫다는 판단에 해안일주코스를 택하고, 성인봉을 거쳐 나리분지로 내려오는 일행을 나중에 만나길 기약한 뒤 도동항을 출발했습니다.

도동에서 시작된 해안일주는 울릉읍의 사동을 거쳐 서면의 남양·남서·태하를 지나 북면의 현포·천부에 이르는 40여km정도입니다. 구암에서 태하에 이르는 험준한 고갯길을 제외하면 해안을 따라 깨끗한 해안과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기암절벽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다만 울릉도의 동쪽 내수전과 섬목에 이르는 길은 워낙 험주한 탓에 도로가 개설되지 않았기 때문에 완벽한 일주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북적거리는 도동항을 빠져나오면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이내 한산해집니다. 급한 경사를 타고 올라 터널을 지난 뒤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금세 사동에 이릅니다. 멀리 가두봉 등대가 아스라이 보입니다.

사동 뒤편의 망향봉과 바다를 향해 혹처럼 불쑥 튀어나온 가두봉사이로는 큰 활 형태로 완만한 해안을 이루고 있습니다. 거슬리는 시야 없이 편안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습니다. 굵은 몽돌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해변으로 파도가 연신 들이칩니다.

a

섬백리향(왼쪽)과 섬초롱꽃은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꽃입니다. ⓒ 문일식



맑은 햇살이 드러낸 울릉도의 진가

해안절벽에는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모진 바람을 이겨낸 많은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섬백리향과 섬초롱꽃도 간간이 눈에 띕니다. 섬백리향 군락은 나리분지 일대에 울릉국화 군락과 함께 천연기념물 5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섬백리향은 울릉백리향이라 불리기도 하는 만큼 울릉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꿀풀과의 식물입니다. 그늘을 싫어하는 양지식물이어서 숲이 없는 곳에 군락을 이룹니다. 꽃향기가 무척 향기롭습니다. 꽃향기가 백 리를 갈 만큼 강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답습니다. 낮에는 향기가 거의 나지 않고 밤에 향기가 짙다고 합니다.

섬초롱꽃 역시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식물입니다. 이름도 예쁠 뿐 아니라 종모양으로 피어난 꽃에서 마치 차임벨같은 은은한 종소리가 들릴 듯 합니다.

가두봉 등대를 급하게 휘돌면 사동을 벗어나 남양이 시작되고, 통구미 몽돌해변을 지나 통구미마을에 이릅니다. 통구미는 거북이가 마을을 향해 기어가는 듯한 모양을 보고 거북이가 들어가는 통과 같다하여 붙여진 지명입니다. 구름이 걷히고 맑은 햇살이 울릉도를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울릉도의 진가를 여지없이 드러내 보여줍니다.

a

통구미의 거북바위와 향나무 자생지가 어울어진 풍경 ⓒ 문일식


구름의 거의 걷힌 후 푸른 하늘과 반갑게 내리쬐는 햇볕으로 해변은 특유의 빛깔을 발합니다. 거북바위는 사람의 눈에 따라 6-9마리로 보인다고 하는데,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거북바위와 산자락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비경에 넋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거북바위와 산자락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물론이고, 천연기념물 48호로 지정된 향나무 자생지에 있는 산자락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고, 녹색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색감에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a

뛰어들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던 통구미의 맑은 해변 ⓒ 문일식


바닥까지 들여다 보이는 맑고 영롱한 바다 물빛

거북바위와 향나무 자생지에서 뿜어내는 풍경은 푸른하늘과 투명한 맑은 바다와 함께 아름다운 삼박자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다 물빛이 어찌나 맑고 영롱한지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불끈 듭니다. 하늘이 맑지 않았다면 결코 볼 수 없는 물빛입니다.

바닥까지 들여다 보이는 투명함에 손으로 물빛을 어르고 한순간의 시원함을 맛보고자 발을 담그기가 미안할 정도입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산자락을 향하는 거북바위의 위용을 한껏 바라보고, 향나무 자생지가 있는 암벽을 따라 바닷가로 나섰습니다.

a

통구미터널의 입구 해안도로에는 모두 2개의 신호등이 있으며 반드시 신호를 지켜야 합니다. ⓒ 문일식


통구미부터는 바위를 뚫고 만든 5개의 터널이 있습니다. 통구미마을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통구미터널은 울릉도에서 최초로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 곳입니다. 울릉도에는 모두 통구미터널과 남통·남양터널 등 2곳에 신호등이 있는데 매우 특이합니다.

터널의 폭이 좁아 한쪽만 지나가도록 신호등을 설치한 것인데, 녹색·황색·적색의 불이 주기적으로 들어오며 특히 황색의 주기가 40초로 가장 깁니다. 이곳에서 신호위반을 하게 되면 자칫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더구나 울릉도 초행이라면 더더욱 알고 가야할 곳이기도 합니다.

한번의 신호로 두 개의 터널을 연속해서 통과해야하는 남통·남양터널을 지나면 남양에 이릅니다. 몇년 전 태풍 나비로 큰 피해를 입었던 곳이기도 한 이곳은 태풍의 피해를 조금이나마 막아보고자 방파제를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그 덕분에 울릉도에서도 내로라하는 남양 몽돌해변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비경 중의 하나였던 사자바위는 초라하고 옹색해 보입니다.

a

우산국 우해왕이 신라 이사부에게 투구를 벗어 항복한 뒤 변했다는 투구봉 ⓒ 문일식


이곳 사자바위와 투구봉에는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되는 아픈 전설이 숨어 있습니다. 신라 지증왕 때 지금의 강릉지역의 군주였던 이사부는 왕명을 받고 우산국 정벌에 나서게 됩니다. 신라에서 출발한 이사부의 군선은 이곳 남양에 도달했고, 해전에 익숙지 못한 신라군은 크게 패하게 됩니다. 2차로 나선 정벌에서 이사부는 꾀를 하나 냈습니다.

우산국 사람이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나무로 사자의 형상을 만든 뒤 뱃머리에 앉혀두고 사자를 풀어 모두 몰살시키겠다고 하니 괴이한 모습을 본 우산국 병사들은 혼비백산했고, 결국 우산국의 왕인 우해왕은 투구를 벗어 항복했다고 합니다. 우해왕이 벗어던진 투구는 바위로 변해 투구봉이 되었고 이사부가 만들었던 나무사자는 사자바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a

남서고분군의 전경 삼국시대의 고분으로 남양과 남서리 일대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보여주는 유적입니다. ⓒ 문일식


해안절경은 마치 띠를 두른 듯 여러 색깔이 이어지고

이곳 남양에서 태하령으로 이어지는 험한 5번군도를 따라가면 남서 고분군을 만나게 됩니다. 투구봉의 뒤편이 훤히 보이는 곳으로부터 50m 정도 오르면 작은 민가가 하나 나오는데 그 뒤편에 고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약초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곳인 듯한데, 산자락에 지어진데다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자못 적막하기까지 합니다.

약초밭에서 일하는 분에게 물었더니 집 뒤편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고 합니다. 모두 15기로 이루어진 고분은 모두 산록 경사면을 깎아 편평하게 기단을 쌓고, 돌덧널을 만든 뒤 돌로 봉분을 쌓아 만든 석총입니다. 삼국시대의 고분으로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려주는 유적입니다. 사람의 발길이 반가웠는지 미역취 등 산채를 한 아름 안겨주십니다.

남서터널과 구암터널까지 모두 5개의 터널을 지나면 또다시 길게 이어진 해안도로가 이어집니다. 아마도 잠시 숨을 고르라는 듯, 이내 수층교라 불리는, 울릉도에서도 특이한 고가도로를 만나게 됩니다. 뱀처럼 똬리를 틀며 올라가는 수층교는 태하령을 넘는 초입에 있습니다.

워낙에 험준한 지형이다 보니 길을 내는데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곳입니다. 수층교 끝자락에 차를 세워두고, 수층교로 내려와 바라보는 해안절경은 마치 띠를 두른 듯 다른 색깔을 띠고 있습니다. 길게 이어진 해안을 따라 해안도로가 이어지고, 울퉁불퉁 산자락도 무거운 몸짓으로 해안을 따라 갑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고갯길입니다. 예전에는 태하령을 넘어 태하와 현포·천부를 지났지만, 지금은 수층교를 지나 수층·삼막·태하터널 등 세개의 터널을 지나 편하게 태하로 갈 수 있습니다. 학포를 지나면 태하와 현포로 가는 삼거리가 나오고 일주를 잠시 멈추고 태하를 찾았습니다.

태하는 오래 전부터 우산국의 수도였다고 전해집니다. 울릉도 개척령이 떨어졌던 조선 고종때인 1882년 이후 가장 먼저 개척민이 이주했던 곳이기도 하고, 1907년 도동으로 옮기기 전까지 행정구역을 관장하던 곳입니다.

a

동남동녀를 모신 태하리의 성하신당 ⓒ 문일식


태하에는 조선 태종때 실시한 울릉도 수토정책(섬을 비우는 정책이 아닌 섬주민을 모두 육지로 이주시킨 뒤 주기적으로 관리를 파견해서 순찰하도록 한 정책)이 빚은 슬픈 전설이 내려옵니다. 조선 태종때 삼척 만호 김인우를 안무사로 삼아 울릉도의 주민들을 이주하게끔 했습니다.

울릉도 태하에 도착한 김인우는 순찰을 마친 뒤 잠을 청했는데, 해신이 현몽하여 떠날 때 동남동녀 한쌍을 섬에 두고 가라고 했고, 그 말을 듣지않고 출항하려 하자 파도가  계속 심해져 출항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동남동녀 한쌍을 골라 심부름을 보낸 사이에 배는 출항했고, 때마침 잔잔해진 바다를 따라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후 8년 뒤 수토관이 되어 다시 울릉도 태하에 이르니 예전에 두고왔던 소년소녀가 꼭 껴안은 채 백골이 되어 있었습니다. 수토관 김인우는 그 자리에 사당을 짓고 아이들을 넋을 위로하게 되었고, 이곳이 바로 지금도 남아 있는 성하신당입니다. 매년 음력 3월 1일에 제를 올리며 풍어를 기원하고, 처음 배를 띄울 때 이곳에서 제를 올린다고 합니다.

a

태하리의 황토굴 울릉도를 순찰을 마치고 다녀갔다는 증표로 사용된 황토 ⓒ 문일식


태하의 몽돌해안을 따라가면 큰 바위 절벽이 앞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절벽 아래에는 안으로 깊게 패인 굴이 있는데 입구에는 주황빛의 황토가 남아 있습니다. 울릉도에서 나는 유일한 황토로 황토굴이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 태종이후 수토정책을 유지하면서 주기적으로 수토관을 파견하게 되는데, 울릉도를 다녀왔다는 증표로 이곳 황토와 울릉도 향나무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울릉도 #해안도로 #도동 #통구미 #태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종영 '수사반장 1958'... 청년층이 호평한 이유
  2. 2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3. 3 '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4. 4 "개발도상국 대통령 기념사인가"... 윤 대통령 5·18기념사, 쏟아지는 혹평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