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길, 명품도시의 꽃을 피우다

유럽 명품도시 여행기 2 - 독일 하이델베르그와 슈투트가르트

등록 2008.06.18 11:03수정 2008.06.1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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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하이델베르그와 슈트트가르트 위치 ⓒ 이종민

독일에서는 두 종류의 길이 특히 눈에 띈다. 인간의 무한질주 욕망을 담은 고속도로와 그 욕망을 다스리기 위한 숲속의 길. 길은 문명의 상징이자 문화의 품격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아우토반이 최첨단 기술문명을 대변해주고 있다면 자연과 흔연하게 어우러진 숲길은 괴테나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숙련된 문화예술을 상기시켜준다.

숲이 승하면 원시로 이어지고 길이 되바라지면 삭막해진다. 길은 분명 편리함을 위한 것이지만 그것만 강조하면 문화도 생태도 사라진다. 삶의 질도 속도의 소음에 묻혀버리게 된다.

잠시 돌아본 독일에서는 적어도 이런 고민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하늘선(skyline)을 마음대로 유린하는 우리네 것과는 다르게 그곳의 고속도로는 주변의 숲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큰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철학자 칸트가 거닐었음직한 숲길이 정겹게 펼쳐진다.

괴테의 도시 프랑크푸르트. 일정에 밀려 그냥 잠만 잔 곳이 되었지만 신새벽 호텔 주위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의 품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멈추어라 순간이여! 그대는 진정 아름답구나!" 외치는 괴테, 그의 기념관을 바로 코앞에 두고도 들르지 못했지만 크게 상심하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리라.

그리고 꿈에 그리던 하이델베르크!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는 곳.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무대. 그곳에서도 품위와 정겨움을 함께 담은 길들이 우리를 반겼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과 잘 어울리는, 진짜 아름다운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어슬렁거릴 수 있는 고성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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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그 광장 아기지기한 골목길들이 만나는 곳에 정겨운 광장이 있다 ⓒ 이종민


정겨운 하우스맥주 집- 우리는 이곳에서 마리오 란자의 '음주의 노래'(Drinking Song)를 흥얼거리며 맥주를 즐겼다!-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아기자기한 골목길. 그 길들이 모이는 곳에는 여지없이 살가운 담화와 웃음소리가 넘치는 만남의 광장이 있고.

강 건너 숲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철학자의 길', 칸트가 산책을 하면 사람들이 시간을 맞추었다는 그 유명한 숲길은 건너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들 탄식의 부러움은 충분했다. 그 길에서 "사랑하고 또 사랑받은 나는 여기서 행복했노라"라 외치는 괴테를 만나고 "오래 전부터 난 그대를 사랑하고 있노라/ 기꺼이 그대를 어머니라 부르며 꾸밈없는 노래를 바치고 싶노라/ 그대, 내 아는 한/ 조국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여"라고 노래하는 횔더린 만난 것으로 충분히 행복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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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 슈투트가르트 로젠파크에서 만난 숲길 ⓒ 이종민


다음 날 새벽 슈투트가르트 숙소 주변의 산책은 우리들 시샘을 조금은 달래주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와는 너무 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폭풍 전 고요'임을 곧 사무치게 깨닫게 될 줄이야!

독일 남서부 산업지역 중심에 있는 슈투트가르트는 분지형 도시로 여름이면 열섬 현상이 특히 심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기된 것이 그뤼네 U 프로젝트. 바람길과 조망까지를 염두에 두고 8km에 달하는 녹지벨트를 조성하는 것. 9개의 공원을 연결하는 이 대규모 기획에서 강조한 것은 충분한 녹지의 확보와 다양하고 용이한 접근성.

도심을 가로지르는 이들 공원은 생태다리, 녹도, 계단 등 아기자기한 각종 길을 통해 시가지와 연결된다. 물론 공원 내에도 아름드리 나무 사이로 정겨운 산책로가 한없이 펼쳐져 있다. 우리네와는 그 규모, 특히 그 철학에서 너무도 다르다. 로젠파크의 그 싱그러운 숲과 잔디, 그리고 그 길들을 걷는 상쾌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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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투트가르트의 킬레스버그 공원 시민들이 푸른 공원 잔디밭에서 쉬는 모습이 한가롭다. ⓒ 이종민


킬레스베르그 공원의 이력은 특히 이채롭다. 1930년대까지는 채석장으로, 그 이후에는 폐기물처리장으로 활용되던 곳. 최신 생태공법을 통해 거듭난 이곳은 이제 수많은 시민들의 휴식처, 여가와 문화활동의 공간, 자연과 인간관계를 교육하고 사색하는 터가 되어 있었다. 도시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돛대 모양의 중앙전망대로 이어지는 다채로운 길을 걸으며,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디자인만이 아니구나! 다시 연수단원다운 깨달음을 뼈저리게 되새겨야 했다.

이 깨달음이 너무 무거워 원래 예정했던 독특하게 운영되는 창작의 산실 아카데미 슐로스 솔리튜드는 제대로 살필 수 없었다. 예술창작은 고독한 사색과 고민의 산물. 그러나 사회와의 소통과 참여도 불가피한 일. 이 '고독의 성'에 들러 이런 이중성이 어떻게 해소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었는데, 그 숲과 길 때문에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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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길 슈투트가르트 로젠파크에서 만난 또 다른 숲길 ⓒ 이종민


처음 이 도시에 들를 때 국제적인 컨벤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요즘 한참 열심이라는 얘기를 듣고 '하던 일이나 잘하지' 했었는데, 떠나면서는 '이 정도를 갖추었으니까 그렇지' 하고 그 가능성과 열정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었다.

독일의 숲은 독특하다. 대부분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그 역사가 길지도 않다. 늦은 산업화를 벌충이라도 하듯 서두르다보니 급격한 산림파괴 등의 몸살을 앓게 된다. 숲이 황폐화되는 만큼 살림살이도 각박해졌다.

그 뼈 아픈 반성 하에 대대적인 조림정책이 펼쳐진 게 한 세기 전. 급하다고 리기다소나무 같은 속성수를 심을 수는 없는 일. 생태환경을 십분 고려한 혼합림 정책을 통해 헤르만 헤세의 '검은 숲'(Schwarzwald)과 같은 숲들을 가꾸어왔다. 숲을 잃고 헤매다 회복된 숲에서 길을 찾은 것이다.

그들이라고 애초부터 이랬을까? 시행착오를 철저하게 뒤돌아보고 그 되풀이를 피해갔을 뿐이다. '지하수는 후손들의 것이다!'며 손을 대지 않는 '로하스'적 철학, 늦은 만큼 철저했던 이런 실천의 깨달음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더 늦은 산업화로 마음이 더 급한 우리가 되새겨야 할 부분이 아닐까? 품격의 예술도시가 조명과 간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되뇌며 다음 목적지 에스링겐을 향했다.

덧붙이는 글 | 이종민 기자는 전주전통문화도시조성위원장·전북대 교수입니다.
이기사는 전북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종민 기자는 전주전통문화도시조성위원장·전북대 교수입니다.
이기사는 전북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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