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살았는데 이주정착금 못 받아"

[현장르포] 서울 강동구 무허가 판자촌에 가다

등록 2008.06.18 18:11수정 2008.06.1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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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일동 서울 하늘 아래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허름하지만 상일동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에게는 평생 살아온 안락한 보금자리다. 녹슨 우편함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 강현숙

▲ 상일동 서울 하늘 아래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허름하지만 상일동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에게는 평생 살아온 안락한 보금자리다. 녹슨 우편함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 강현숙

한이 서린 상일동 산46번지

 

"강동구 상일동 무허가 판자촌은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곳입니다. 관심 갖는 사람도 없고 한평생 청춘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니. 우리보고 죽으란 소리인데 제발 비만 안 새고, 얼어 죽지 않게만 해달라는데…."

 

서울 강동구 상일동 산46번지 일대 주민들은 가슴속 설움과 절규를 쏟아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지만 상일동에서 한평생 자식 낳고 키우면서 정직하게 살아온 이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 온 것은 지난해. 다름 아닌 강동구청이 상일동에 명일근린공원 조성 3차 사업을 실시한다며 이주를 요구하면서 보상을 놓고 주민들과 구청 사이에 충돌이 시작됐다.

 

시유지에 집을 짓고 짧게는 수 년, 길게는 20~30년을 살아온 이곳 주민들은 "공원 조성 사업으로 갈 곳이 없어 하루 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며 이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강동구청은 무허가 판자촌 보상과 관련해 1차 42억, 2차 30억의 보상비 등을 지급했으며 지난 2007년 10월 31일부터 50억의 예산을 투입해 3차로 주민 이주 및 철거에 대한 보상을 추진하고 있다.

 

1~2차 이주 및 철거 작업이 완료된 가운데 현재 상일동 무허가 판자촌에는 50여 세대 주민들이 남아 근심으로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 주거 이전비 보상을 받고 이주를 준비하고 있는 세대도 있지만 9가구는 건물보상비와 50만원 정도의 이사비만 받고 떠나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1987년 5월경부터 거주하고 있는 주민 A씨는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에 1982년 4월 8일 이후에 건축된 무허가건축물이라는 사유로 이주대책 대상자에서 제외한 것은 부당하니 임대아파트를 공급해 주든지 아니면, 이주 정착금을 지급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권익위 "강동구청 토지보상법 위반"

 

이에 대해 권익위가 지난 11일 상일동의 명일 근린공원 조성사업에 편입되는 지역에서 지난 1987년부터 무허가 건축물을 소유하고 거주해 온 철거민에게도 이주정착금을 지급할 것을 시정권고했다. 권익위의 결정에 주민들은 실낱 같은 희망을 갖게 됐다. 

 

실제 강동구는 1982년 4월 8일 이전의 무허가 주택에 대해서만 이주대책을 수립·실시하도록 한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이하 서울시 정비조례)에 따라 1987년 무허가 건축물 소유자인 민원인에게는 국민주택이나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없으며, 대신 주거이전비를 지급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토지보상법)에 따르면 1989년 1월 24일 이전에 건축된 무허가건물의 소유자에게도 이주대책을 수립·실시하거나 이주정착금을 지급하도록 분명히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권익위는 그간 이주정착금을 지급한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1989년 1월 24일 이전 무허가건물의 소유자에게 이주정착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정당 보상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동구 "행정의 일관성...위법 아니다"

 

이같은 권익위의 시정권고에 강동구청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우선 서울시 정비조례에 근거해 1·2차 보상을 마무리했으며 서울시 그 어떤 곳에서도 이주정착금을 지급한 선례가 없다는 게 강동구청의 말이다.

 

강동구청 재무과의 한 관계자는 최근 권익위의 시정권고 보도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명일근린공원 조성사업은 서울시 사업비로 진행하는 것으로 서울시 조례에 근거해 타당성 있게 보상하면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사안인데 권익위가 최근 강동구청장이 명백하게 토지보상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보도는 실적을 위한 홍보성 보도다. 주민들을 위해 전세자금대출 등의 배려 등을 강구하는 강동구청의 노력은 배제했다. 오히려 권익위가 일을 망치고 있으며 강동구의 위상을 떨어뜨렸다."

 

법적기관이 아닌 권익위의 시정권고를 강동구청이 얼마만큼 수용할지 미지수다. 1982년 4월 8일 이전 무허가 주택에 대해서만 이주대책을 수립해 보상한 내용을 지금에 와서 변경하기엔 서울시 조례에도 어긋나고 행정의 일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강동구청은 난처한 상황이다.

 

주민 행정소송 제기 "끝까지 투쟁"

 

상일동 무허가 판자촌의 주거환경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열악하다. 서울 하늘 아래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여기서 주민들은 20~30년을 뿌리 내리고 살아왔으며 이제는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이들이 이곳을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됐다.

 

기댈 곳 없는 이곳 주민들은 강동구청이 주민 면담조차 꺼려한다며 섭섭한 마음을 토로한다. 행정소송을 제기한 주민도 있지만 소송비용 마련조차도 쉽지 않은 주민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이 같은 주민들의 처절한 목소리 말고도 상일동 무허가 판자촌 일대는 열기구 관리 부주의·누전 등으로 인한 화재에 노출돼 있어 주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3월 발생한 서초구 신원동 소재 화훼단지 비닐하우스 화재, 2006년 10월 발생한 송파구 장지동 화훼마을 주거용 비닐하우스(44개동) 화재 등 상일동 무허가 판자촌과 유사한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도로가 전무한 상태로 소방차량 진입이 곤란하고 소방용수 확보도 어려워 사전 점검 등의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다.

 

방역 한 번 제대로 못하며 열악하게 살아온 강동구 상일동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은 오늘도 몇 안 남은 허름한 집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며 긴 한숨만 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동·송파 주민의 대변지 서울동부신문(2008년 6월 18일 682호)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6.18 18:11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강동·송파 주민의 대변지 서울동부신문(2008년 6월 18일 682호)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상일동 #무허가 판자촌 #강동구 #명일근린공원 #권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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