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대한 전지구적 요구

[서평] 안토니오 네그리 <다중(mutitude)>

등록 2008.06.27 11:49수정 2008.06.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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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 세종서적

<다중> ⓒ 세종서적
"인류가 선(善)을 선호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보다, 그러한 도덕적 성향으로 말고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사건-혁명과 같은 사건-이 존재하느냐의 문제가 선행한다.칸트의 말에 따르면 이 (혁명이라는) 현상은 인간의 역사에서 더 이상 무시될 수 없다. 왜냐하면그 현상이 선을 향한 성향과 능력이 인간 본성 속에 실존함을 드러냈으며, 이 성향과 능력을 지금까지 어떠한 정치학도 사건들이 전개되는 동안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다중>에 인용된 니체의 문구다. 혁명은 보편적인 의미의 선(善)과 통하며, 혁명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선한 의지를 드러낸다. 인간이 선하다는 것은 혁명의 시간이 되어서야 명백하게 드러나며, 그건 어떤 정치학 교과서에 적혀 있지 않더라도 스스로 분명해진다. 혁명은 인간을 위한 선을 드러내는 축제이다. 반면 선하지 않은 인간에 대한 투쟁이다. 혁명은 선을 향한 인간의 실험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제시하는 분수령이다.

 

거리에서 촛불이 쉴 새 없이 타오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거리는 네온보다 환한 촛불로 눈이 부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어두운 세력의 공모자들이 물대포로, 곤봉으로, 소화기로 촛불을 끄려고 여념이 없다. 이 장관을 네그리가 봣다면 무엇이라고 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가끔씩 들었던 궁금증이다.

 

네그리는 코뮤니스트다. 한국 나이로 74세의 노인이지만 여전히 코뮤니스트이다. 코뮤니스트로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박제되지 않은, 활동하는 코뮤니스트다. <다중>은 그의 노작(勞作)이다. 2000년도 <제국>의 출간에 이어서 2004년도에 <다중>이 출간되었고, 한국에서는 사노맹 사건에 연루된 후 지금은 인문학적 실천을 하는 조정환의 번역으로 올해 출간되었다.

 

<다중>을 읽은 첫번째 소감은 500페이지 분량의 책에 참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때로는 파편처럼 부서지기 쉬운 지식들이 '다중'과 '제국'이라는 키워드를 향하여 일관되게 연결되어 있다. 저자의 사유들은 파도처럼 마구 밀려오다가 갑자기 그치기도 하면서 420여 페이지를 채운다. 파도같지만 전혀 산만하지 않은 사유의 힘이 <다중>의 강점이다.

 

네그리는 코뮤니스트이면서도 코뮤니즘을 비판하고, 다른 코뮤니스트들에게 비판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에 대한 이런 서술이 개량적인 논자에 대한 그것으로 읽히지 않으면 좋겠다. <다중>의 내용에서도 나타나지만 네그리의 사유는 굉장히 용인하거나 열린 폭이넓다. 사유가 왼쪽으로만 트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완고한 코뮤니스트들에게는 비판을 당한다.

 

<다중>을 읽다 보면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내용마저 일부 존재한다. 내용이 너무 관념의 세계로 빠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런 부분에서 내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은 왜 갑자기 그러한 입장의 변화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실천하는 코뮤니스트 이론가조차도 '자기검열'이라는 한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다. '제국'의 내부에 존재하면서 '제국'을 해부해야 하는 이론가가 현실적인 난관과 곤궁을 피해가며 이런 책을 쓰는 것은  '자기검열'이라는 어휘를 쓰기에는 존경스러운 면도 있다.

 

<다중>을 읽는다면 전체의 총체성을 깨는 독해가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한다. 정보론적 관점에서, 안토니오 네그리가 취합해 놓은 논리들과 팩트들을 뽑아내는 것도 좋은 독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전통적인 독해법도 좋다. 그런데, 1페이지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기를 한다면 꽤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만만한 책이 아니다.

2008.06.27 11:49 ⓒ 2008 OhmyNews

다중 - 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

안토니오 네그리 외 지음, 조정환 외 옮김,
세종서적, 2008


#네그리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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