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8일 새벽, 다시 광화문 네거리에 서다

등록 2008.06.29 20:40수정 2008.06.2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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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광화문의 밤은 여전히 소화기와 물대포가 만들어낸 뿌연 안개로 가득차 있다. 서울 시의회와 프레스 센터 사이를 두고 전경과 시민들이 벌써 두 시간이 넘도록 대치 중이다. 버스 위에 올라선 전경들이 '고시 철회'를 외치는 시민들을 향해 소화기와 물대포를 쏘아대고 있다.

시위대 중 누군가가 인근 건물의 소화전에 호스를 연결시켰는지 시민들의 손과 손을 거쳐
무차별 살포 되고 있는 물대포 쪽으로 향했다. 이어서 세찬 물줄기가 살수차의 물대포 쪽으로 시원스럽게 뿜어져 나갔다. 물과 물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시민들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방송 차량에선 시위를 독려하는 사회자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시위대들에게 알린다.

"시민 여러분, 방금 전에 전경들이 시위대를 향해서 소화기통을 던졌다고 합니다."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서 아령을 던졌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돌맹이도 던졌다고 합니다. 물대포에 최루액도 넣었다고 합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방송차 옆에 있던 남자 한 명이 '아령'을 높이 들어 보인다. 곳곳에서 우~ 하는 시민들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밤 11시40분 경. 불법 주차된 버스를 끌어내다

시위대 한쪽에선 벌써 몇 차례 전경 버스를 끌어내기 위해 밧줄로 견인을 시도하고 있었다. 체격이 건장한 남자들이 밧줄을 가운데두고 일렬로 늘어서 있다. 그 길이가 족히 백여미터는 된다. 시민들의 박수와 환호성을 등에 업은 가운데 몇 차례 줄을 당겼지만 버스는 앞뒤로 움직이기만 할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러분 부탁 한 가지 하겠습니다. 지금 밧줄을 당길 사람이 많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껏 밧줄을 끌던 남자분들이 많이 지쳐 계십니다. 체격이 좋은 남자 분들은 바로 교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서울 시의회 골목 쪽으로 체포조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체격이 좋은 남자분들은 그쪽으로 가셔서 체포조를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들이 밧줄 있는 쪽과 서울 시의회 골목 쪽으로 대거 이동한다.

"성언아, 이번엔 우리도 합세할까?"
"그라입시더."
"잘하고 오세요."

함께 있던 혜진 샘이다. 맨손으로 물에 젖은 밧줄을 잡고 있는데 누군가 면장갑을 건네준다. 장갑이 물에 젖은 탓에 쉽사리 들어가지 않는다. 손에 쥔 밧줄이 묵직하다. 방송차량에선 '님을 위한 행진곡'이 연거푸 흘러나온다. 밧줄을 잡은 손목에 붉은 힘줄이 서고 바짝 긴장감이 흐른다.

"여러분, 저기 앞에서 보이는 빨간 깃발이 신호를 주면 힘껏 당기세요."
"손 조심 하세요."

밧줄이 팽팽해지자 긴장감은 한층 깊어진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신호와 함께 으샤~ 으샤~ 여자들은 뒤에서서 밧줄을 당기는 남자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있는 힘껏 등을 받쳐준다. 으샤~ 으샤~ 버스는 왔다갔다 하기만 할 뿐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 번씩 끌어내기가 무위로 끝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거친 한숨이 후욱~후욱~ 튀어나온다.

"좇도, 뒤에다 뭘 묶어 놨는지 꿈쩍도 안 하네." 
"우리가 끌어당길 때마다 크레인 두 대가 함께 당기고 있으니 그렇지." 
"오매 징한 놈들."

새벽 0시20분 경, 거리로 벌떼처럼 쏟아져 나온 체포조와 맞선 시민들. 프레스 센터 안에서 성언, 혜진 샘과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거리에서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전경들이 불법 주차시킨 버스 중 한 대가 시위대들에 의해서 끌려 나오자 그 틈을 비집고 전경들 수백명이 순식간에 치고 들어온 모양이다.

꿈쩍도 않던 버스가 쉽게 움직인 걸 보니 일부러 틈을 노린 모양이다. 서울 시의회와 반대편 골목 쪽에 숨어있던 체포조들도 대거 거리로 투입되었다. 처음엔 천천히 밀리는가 싶더니 전경들의 폭력과 곤봉질로 인해 시민들은 정신없이 뒤로 밀려나가 시작했다. 다급한 듯 누군가 인도에 선 사람들에게 비명을 질렀다.

"거기 남자분들, 구경만 하지 말고 앞으로 붙으세요."
"이대로 가면 전부 뚫리고 말 겁니다."

어떻게 할까! 순간 겁이 났지만, 채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몸은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거리로 달려나갔다. 그곳은 한 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 시위대와 전경들이 한데 얽혀 있었다. 진압명령을 받은 전경들은 시민들을 향해서 사정없이 방패를 찍고 진압봉을 휘둘러댔다.

곤봉에 맞은 사람들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지고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사방에서 급하게 의료진을 외치는 소리. 하지만 참혹한 상황은 여기뿐만이 아니기에 이순간 공허한 메아리 뿐이다. 곤봉과 헬멧과 방패가 시민들의 비명 소리에 실려 공중으로 날아다녔다.  

그 참혹한 상황들을 목도하는 사이, 시민들을 가격하던 전경들 수십명이 거리 한복판에서 그들이 진압봉을 휘둘러대던 시민들에게 포위된 채 엎드려 있다. 흥분한 시위대 몇이 엎드려 있는 전경들을 향해서 마구 욕설을 내 뱉고 사정없이 발길질을 해댄다.   

"아저씨 하지마요."
"아, 씨팔 때리지 말라니까."
"좆도, 당신들도, 저 새끼들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봐! 그런 소리 나오나!"

사내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말리던 시민들을 향해서 욕지거리를 해댄다.

사태는 점점 긴박하게 돌아갔다. 전경들을 에워싼 수십명의 시민들이 스크럼을 짜고 흥분한 사내들을 저지한다. 얼굴을 온전히 드러낸 전경 한 명이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잃어버린 헬멧을 찾아 주위를 둘러본다.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일그러진 헬멧이 저 전경의 그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전경들은 점점 앞으로 밀고 나왔고 시위대들은 시청 방향으로 밀려났다. 잠시 시청 주변에서 전열을 정비하던 시위대는 이내 태평로를 지나 다시 광화문 쪽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어디선가 웅장한 트럼본 소리가 들린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진다. 초등학교때 부르던 '앞으로'라는 동요가 비장함을 더한다. 지금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은 달나라가 아니라 청와대다. 하지만 명박 산성에 가로 막힌 몇 백미터 앞의 청와대는 달나라보다 더 가기 어려운 곳이 되어버렸다.  

새벽 3시 경 더욱 굵어지는 빗발,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광화문에서 대치를 하고 있는 전경과 시위대, 빗발이 더욱 굵어진다.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다. 저녁도 먹지 않은 탓에 배가 고프다. 함께 참여했던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김밥과 어묵을 사왔다.

비를 맞으며 거리에서 먹는 어묵의 따뜻한 국물 맛이 헛헛한 속을 달래준다. 각 지역에서 올라온 촛불 참가단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새벽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이 보신각 앞에서 원을 만든 채 짧은 소감을 주고 받는다. 아는 분의 차량을 타고 집에 오는 길, 시계를 보니 다섯시가 되어간다.

"날도 다 새버렸는데 소주나 한 잔 하죠?"
"그럴까?"

감자탕에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간밤의 일을 돌아보니 꿈을 꾼듯하다. 안개를 만들어낸. 물대포와 소화기 탓일까? 밤샘 시위로 지친 몸 속으로 알 콜 몇잔이 들어가자 정신이 몽롱해진다. 버스를 내려서 집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검은 상복을 입은 사내들 몇이서 망자의 사진을 들고서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그 앞을 서성이고 있다.

조금더 내려가자 운구차를 비롯해서 장례 행렬의 차량들이 길게 이어진다. 뒤로 처지는 그 행렬을 보며 귓가엔 장송곡이 들리는 듯하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아니라, 장송곡이라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아니 우리들의 일그러진 님(?)의 하야를 위한 장송곡이라고.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민중의 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민중의 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촛불 시위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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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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