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가 가스충전소에서 일하는 까닭은?

[동영상] 단강 김종주 선생님을 찾아

등록 2008.06.30 08:55수정 2008.06.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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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단강 김종주 선생님이 가스충전원으로 일하고 있는 곳에 들러 붓글씨 작업과 일하는 장면을 동영상에 담았습니다. ⓒ 조도춘


기분 좋게 자주 들르는 가스충전소가 있다. 끝이 어디인지 모르게 치솟는 고유가를 생각하면 차와 이별하고 싶지만 대중교통의 시간과 노선이 맞지 않아 하는 수없이 승용차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스충전소에 들르면 가스충전뿐만 아니라 마음도 상쾌한 기분으로 충전할 수 있다. 단강 김종주(60) 선생님이 근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루 이곳을 찾는 차량만도 수백 대. "안녕하십니까." 지치는 기색도 없이 늘 웃는 표정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오늘은 여수항의 삶의 냄새가 물씬 풍기게 하는 김종안님의 시 '여수항'이 붙어있다.    

"선생님, 여기에다 글귀를 붙이는 사유라도 있습니까?"
"여기 오는 이들이 단 5분이지만 쉬어가면서 뭔가 느낌을 가져간다고 생각하니 행복해서요."

주인이 아닌 아르바이트로 가스충전일을 하면서도 밀려오는 운전자들이 잠시 피로를 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는 김 선생님. 정감이 묻어나는 독특한 필체로 오가는 운전자들에게 그만의 봉사서비스를 하고 있다.    

선생님을 만난 지는 1년이 넘었다. 매일 밥을 먹듯 가스충전소 역시 자주 가는 곳이다. 여수에 직장이 있어 매일 광양에서 직장까지 3년이 넘게 출퇴근하고 있다.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출퇴근길이라 자주 들려야 하는 곳이 가스충전소다.

오가는 길에 많은 가스충전소가 있어 연료 표시기가 바닥을 보일 때면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곳에나 들어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 가스충전소를 찾게 되었다. 연료주입기 옆 작은 사무실(부스) 유리창에 계절 따라 마음에 닿는 글귀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부스에 붙어있는 글귀에서 계절의 감각이 살아난다. 자주 바뀌는 포근한 글이 필자를 유혹한 것이다. 


하얀 창호지에 묵향이 나는 검은 붓글씨의 글귀들은 직장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풀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그 후로 연료 표시기에 맞춰 그 가스충전소에 자주 들르게 되었다. 연료가 바닥을 보이지 않으면 미리 들러 연료를 보충하면서까지 들르게 되었다.

27일은 조금 일찍 퇴근을 하는 날이라 차량에 가스충천을 할 겸 겸사겸사하는 마음으로 그 가스충전소에 들렀다. 운 좋게 김종주(60) 선생님이 연료주입기 옆 부수에 다른 글귀를 올리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주로 심야시간에 글 쓰는 작업을 하는데 오늘은 특별한 날인 것 같다. "글을 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선생님에게는 작업실이 따로 없다. 주유소 한쪽 휴게실이 그의 작업실이다.
      
도로가에 있는 가스충전소는 차량들의 소음으로 항상 시끄럽다. 저녁 9시에 근무를 교대하고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3시면 다시 일을 시작한다. 붓글씨 쓰는 작업은 차량이 뜸해지는 새벽 3시쯤에 주로 한다고 한다. 이때가 정신이 가장 맑아 붓 끝에 집중을 하기에 제일 좋다고 한다.

방해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들어선 그의 작업실에는 묵향이 가득하다. 주유소 휴게실을 작업실로 이용하지만 깊은 산중에서 느끼는 조용한 운치가 느껴진다. 선생님은 부스에 붙일 김종안님의 '여수항'의 일부를 그의 독특한 필체로 우려내고 있다.

예서체와 고체를 섞어서 쓴 글씨라고 한다. 선생님의 글씨에는 조용함이 느껴진다. 세련되지 않고 순박한 글자 속에서 선생님의 마음을 읽을 것만 같다. 차분하고 편안함이 느낌이  좋다.  

나른한
도시의 한낮을 깨우는
뱃고동 소리
금오열도와 거문도
백야수도를 오가는 여객선에는
섬사람들의 일용품과
또 그 무게만큼의
그리움이 실려
어머니의 품 같은
이 항구를 오간다.

여수항 중 / 김종안

여수를 찾는 사람들이 여기 있는 선생님의 글씨에서 또 다른 여수의 이미지를 담아간다고 한다. 바쁜 업무 때문에 한 작품이 오랫동안 부스에 붙어 있으면 종종 또 다른 작품을 요구하는 팬들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이제는 공인이 되어 그 사람들을 위해 노력을 한다고 한다.

30여 년을 서예 공부를 해오면서도 "아직도 배운다는 생각으로 글씨 속에 들어간다"는 김 선생님. 김 선생님은 "심오한 진짜 글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맑아진다. 거기에서 얻는 감흥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옛사람들의 '묵혼' '필적'을 따라 해보고 싶다"는 그는 전국서화 예술인협회 초대작가이며 호남미술대전, 전라남도 미술대전, 대한민국 서예대전 등에서 입선한 서예작가다. 그리고 가스충전소 아르바이트생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사는 u포터에도 송고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사는 u포터에도 송고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종주 #단강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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