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호수를 한꺼번에 만나는 환상적인 여행지

청초호를 따라가는 속초여행

등록 2008.07.02 09:49수정 2008.07.0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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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바다풍경 일렁이는 바다, 수평선, 그리고 나란하게 나있는 발자국 ⓒ 문일식


동해로 가는 길엔 항상 큰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긴 터널 몇개만 지나면 언제 왔냐 싶을 정도로 금세 동해에 도착하지만, 진고개나 대관령 옛길은 아직도 불편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진부에서 내려 월정사 입구를 지나 진고개로 넘어 속초로 향합니다. 고생을 사서 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구불구불 이어지며 힘겹게 오르고, 발바닥에 쥐날 정도로 브레이크를 밟으며 내려오는 길은 적절한 긴장감과 묘미를 줍니다.

주문진에서 7번국도를 타고 올라가다 주유소를 지나는데 리터당 1829원입니다. "와~~ 싸다"를 연발하며 주요소에 들어가 숨가쁘게 달려왔던 애마에게 무거운 포상을 내립니다.


"사장님, 여기 기름값이 왜이렇게 싸요?"
약간의 의구심을 섞어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 위로 더 올라가면 주유소가 하나 있는데 거기와 가격경쟁 하느라 기름값이 이래요. 아주 미치겠어요."
"그래도 속초나 고성 가는 사람들은 이 길로 많이 지나가는데 그 주유소보다는 훨씬 유리하지 않나요?"라고 다시 되묻자 그렇지도 않답니다.

자유로운 시장경제 원리가 선연히 보이긴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 서로 목을 죄고 있다는 생각에 괜히 안쓰러워집니다. 주유를 마치고 올라가다보니 주유소 사장이 얘기했던 그 주유소는 1830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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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에 있는 38선 휴게소 잠시 쉬기위해 들어섰던 38선 휴게소 ⓒ 문일식


잠시 휴식을 취할 겸 38선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북쪽으로 올라가는 국도에는 어김없이 있는 38선 휴게소. 바로 광복 직후 2차대전의 승자인 미국과 소련이 일본의 무장해제를 위해 만든 일시적인 군사분계선이었습니다. 이념을 달리했던 두 나라로 인해 결국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반으로 나눠집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될 때까지 정치적 경계선이 되고마는 안타까운 역사의 현장입니다. 양양의 38선은 이제는 공휴일에서 제외된 국군의 날이 정해진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10월 1일 3사단이 38선을 최초로 넘었고, 이를 기념하여 국군의 날이 제정되었다고 합니다.


쌍천교를 지나고서야 속초땅에 들어섭니다. 설악해맞이 공원을 지나고, 불야성을 이루는 대포항을 지나 속초해수욕장에 이르렀습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바다는 미친듯이 파도를 쏟아냅니다. 옅은 하늘색 바다에선 부드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연신 흰 포말을 해변으로 밀어내며, 자연의 위대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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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해수욕장에서 미역을 건지는 사람들 거친 파도에 떠밀려온 미역을 건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습니다 ⓒ 문일식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해변으로 떠밀려오는 미역을 건져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지긋이 바다를 바라보다 흰 포말 서서히 물러갈 때쯤 잽싸게 바다로 향합니다. 미역을 줍다가 파도에 휩쓸려 죽은 사람이 있다할 정도인데도 사람들의 신경은 온통 바다에 쏠려 있습니다. 미역을 건지는 재미를 누리는 사람도, 미역 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도 그렇게 해변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속초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청초호에 이르렀습니다. 청초호는 해류, 조류, 하천 등 자연현상에 의해 운반된 토사가 바다를 차단하면서 만들어진 석호입니다. 속초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청초호는 인근에 있는 영랑호와 함께 나란히 있다는 뜻으로 쌍성호라 불리기도 합니다.

그 옛날 양양에 사또가 부임을 하면 청초호에서 환영연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숯불을 피워 물에 띄우고, 배를 띄워 풍악을 울리며 즐겼는데, 사또를 즐겁게 하기위해 호수 주변에서는 불꽃놀이도 벌어졌다고 합니다. 논뫼호 불꽃놀이로 알려진 이 불꽃놀이를 보기위해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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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호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멀리 속초시내와 설악산이 보이는 청초호에서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고 있습니다. ⓒ 문일식


청초호는 중앙동, 금호동, 청학동, 교동, 조양동, 청호동을 한꺼번에 감싸고 있습니다. 그중에 청초호의 가장끝자락은 청호동입니다. 그중 청호동의 끝자락이자 청초호의 입구쯤 되는 곳에는 '아바이마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모래톱으로 이뤄진 곳이라 사람이 살지 않던 곳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북쪽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전쟁이 끝나면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국군의 주둔지에 거주했고 그곳에 마을이 형성된 것입니다. 고향을 그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한국전쟁이 끝났지만 끝내 고향에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은 50여년이 넘게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젠가 갈 수 있는 고향을 그리면서….

청호동에서 바라보는 청초호에선 한가한 정취가 그대로 묻어납니다. 주홍빛 청호대교는 큰 아치를 그리며 머리 위로 지나갑니다. 호수 위에 떠 있는 고깃배들은 잔잔한 파동을 그리며 서 있고, 청초호 너머 속초시내의 도시빛이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속초시내 뒤편으로 우람하게 서 있는 설악산은 구름을 한껏 두르고,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전어를 낚는다는 부부의 한가한 낚시질 속에는 부부의 선한 인연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아바이마을은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바이마을도 뜨고, 아바이순대도 뜨고, 심지어는 갯배도 명물로 자리잡았습니다. 한류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는 오래된 가을동화의 한장면이 추억을 되살리고, 아바이마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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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중앙동과 아바이마을을 이어주는 갯배 속초시내와 가장 가깝게 이어주는 아바이마을의 교통수단... 갯배 ⓒ 문일식


청호동과 중앙동을 바로 이어주는 갯배는 오랜 친구만 같습니다. 단돈 200원으로 바다를 건넙니다. 귓전을 때리는 기적소리도 없고, 사람들의 소란함도 없는 차분함 속에 갯배는 말없이 오갑니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쇠줄을 끌어당깁니다. 끌어주는 분이 있지만, 여기서만큼은 너도 나도 선장입니다.

아바이 마을이 생겨난 지도 50년이 훨씬 넘은 지금 고향을 그리던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고향을 그리며 먹었던 아바이순대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별미입니다. 아바이마을을 나서기 전 아바이순대를 먹기위해 허름한 식당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가자미식해가 덤으로 올라온 순대와 함께 같이 먹으면 맛있을 거라는 덤덤한 주인아주머니의 말이 스쳐지납니다. 아~ 소주가 한 잔 어울렸으면 좋았을 텐데…. 소주 한 잔을 머릿속에 띄워 놓고 묵직한 아바이순대를 입으로 연신 털어 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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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순대와 가자미식혜 아바이마을에 들른다면 한 번쯤 먹어봐야할 아바이순대 ⓒ 문일식


아바이 마을의 풍경은 여느 시골풍경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분주한 아주머니의 움직임,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꼬마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들, 스산함 마저도 느껴지는 손님없는 횟집들…. 벽 사이 조그만 화단에 피어난 원색의 꽃들은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이 잔잔히 박혀 있습니다. 골목을 지나며 퍼져나오는 행상의 마이크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아바이마을 끝자락의 해변은 더욱 한적합니다. 파도를 따라 외로움이 깊게 밀려오는 곳입니다. 간간히 파도를 마주하고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고, 해변에 주저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바다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해변의 풍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고운 모래와 푸른 바다와 하늘이 그나마 밀려오는 외로움을 손사래치며 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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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마을의 아이들 아바이마을 풍경은 일상 그대로의 풍경입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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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등대에서 바라본 북향의 바다 속초등대를 오르는 나무데크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입니다. ⓒ 문일식


청초호를 돌아 속초 최대의 항구인 동명항에 이르면 요동치는 바다를 맘껏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영금정은 속초 앞바다의 너른 바위 위에 세워진 것으로 해돋이정자라고 합니다. 원래 영금정은 사방이 절벽을 이룬 석산이었고, 파도가 석산에 부딛치면서 내는 소리가 마치 신령스런 거문고소리 같다고 해서 지어졌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속초항을 건설하면서 석재로 쓰기위해 영금정 석산을 깨서 사용하는 통에 지금은 신묘한 거문고 소리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구름다리를 지나 해돋이 정자에 이르면 거대하고 전광석화같은 파도가 사방으로 암반을 들이치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영금정과 가까운 곳에는 밤마다 바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속초등대가 높은 산자락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난 2006년 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단장한 속초등대는 가파른 철계단과 다소 완만한 나무데크를 통해 오를 수 있습니다. 힘들게 올라간 만큼 전망대에 올라서면 그만큼의 보상을 받고도 남습니다.

청초호 주변으로 속초시내가 한 눈에 바라다 보이고, 흰 포말을 머금은 푸른 바다의 역동적인 모습은 보는 내내 가슴을 크게 틔워 줍니다. 굽어보는 영금정의 풍경은 영금정에서 바라보는 바다풍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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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바다 위에 영금정이 떠 있습니다.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곳에 영금정이 있습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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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마을과 인접한 한적한 바다 아바이마을 앞에 위치한 작은 바닷가는 사색하기 좋은 해변입니다. ⓒ 문일식

덧붙이는 글 | 6월 23일-24일 다녀왔습니다. 이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6월 23일-24일 다녀왔습니다. 이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속초해수욕장 #아바이마을 #청초호 #영금정 #속초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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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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