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터지는 이주노동자 부상 방치

부상자 방치한 출입국단속반...출입국관리소측 "단속 없었다"

등록 2008.07.03 13:06수정 2008.07.0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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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했던 기억도 세월이 지나면 잊기 마련이다. 그래서 혹자는 사람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잊을 만하면 터지는 사건들을 보면서,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주노동자 인권 현실에 할 말을 잊는다.

 

2005년 8월 경기 화성에 소재한 핸드폰 케이스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던 인도네시아인 토니(Fathoni·33)는 출입국 단속이 있던 날, 피하라는 업체부장 지시로 4m 높이 창문에서 뛰어내렸다가 왼쪽 복숭아뼈 아래가 으스러지고 오른발이 삐는 사고를 당했었다.

 

사고 당시 토니를 쫒아왔던 출입국 직원은 다리를 다쳐 피가 흐르는 그를 도로에 앉혀 놓고 "너 불법이지? 회사 전화번호 알아?"라고 물었고, 회사 전화번호를 모른다는 토니의 답변에 출입국 직원은 토니의 웃옷을 벗겨 왼쪽 발목을 지혈해 주고는 사라졌었다. 당시 토니는 1시간여 간 길바닥에서 도움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자, 결국 친구에게 전화한 뒤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적절하지 않았던 응급처치의 영향으로 세균에 감염되어 몇 번의 수술과 절단의 위기까지 넘겨야 했던 토니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던 어제(2일), 출입국 단속으로 크게 다친 사람이 있으니 도와 달라는 모 병원의 연락을 받았다.

 

경기 오산에 소재한 S산업에서 근무하던 나이지리아인 마이크는 출입국 단속이 있던 지난달 26일, 단속반을 피하다 왼팔이 부러지고 머리를 크게 다쳐 입원중이다. 현재 그는 왼팔은 깁스를 하여 감염이나 후유증에 대한 걱정은 덜었으나, 머리와 눈 등은 치료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한다.

 

마이크는 사고 후 중환자실 문제로 병원을 세 곳이나 거쳐 현재 용인 S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사측에서 사고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아 병원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고 있다.

 

사고 당시 마이크를 쫒아왔던 출입국 직원들은 마이크가 다친 것을 확인했는데, 앰뷸런스가 나타나자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관할지역 출입국관리사무소측은 "우리 사무소는 당일 해당 지역에 대한 단속이 없었다"면서 해당 사건과 직접 연관이 없음을 밝혔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과정에 기본적인 인권조차 무시되는 현실이야 한두 번 봐 온 일도 아니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나 몰라라'하고 발길을 돌린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노라면 '과연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싶어진다.

 

엄정한 법집행을 요구하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방법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 부상자를 방치한 이 사건처럼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벌써 몇 년째 기본적인 인권조차 무시되기가 일쑤이고, 관할 구역을 벗어난 출입국의 실적 위주의 단속으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오늘도 생사를 넘나드는 숨바꼭질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2008.07.03 13:06 ⓒ 2008 OhmyNews
#이주노동자 #단속 #출입국관리사무소 #미등록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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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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